◆…김종봉 세무법인 더택스 대표세무사
최근 주말을 이용해 단체로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아트페어(SHAF)를 다녀온 내게 묻는다. 이리저리 채워서 즐거움을 더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두거나 차라리 비워 두는 것을 좋아하는 흔히 '여백의 미'가 좋다는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 않게 스쳐 지나갔을 여행(?)이라는 말이 그날따라 새롭게 다가왔다. 이틀간 다섯 곳의 미술관 투어다. 하루 세 시간을 넘나드는 강행군이었다. 중노동이 따로 없다.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작품을 만났다. 그런데 대부분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냈을 리 없다. 그림 앞에 서면 마음속 의문 보따리가 열린다. 두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이게 뭐지?'라는 궁금증부터 생긴다. 추상화는 물론이고 구상화라고 하여 다르지 않다. 형상은 확연하게 드러나는데도 머릿속은 오리무중이다. 일행 중 누군가가 흘린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아 그 모든 것이 나 이거나 그 모든 것이 내가 아닐 수 있다.'라는 말을 주워 담는다.
예술작품이 있는 미술관이나 갤러리, 옥션 등을 가더라도, 사람마다 목적이 다르다. 체험 방식이나 태도도 다르다. 떨어지는 사과를 보며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이 있지만, 아무리 많은 사과나무가 있어도 모두가 뉴턴처럼 생각하지는 못한다. 사과 저 너머의 세상을 알아낸다는 것은 말 그대로 넘사벽이다.
작품 감상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일반적으로 많은 작품이 전시된 장소에서 좋은 작품을 선별해서 관람하는 방법이랄까요. 먼저 작품 유형을 세 가지 정도로 분류해 봅니다. 첫 번째 유형으로는 기법에 근거한 작품, 두 번째는 시각적 특징이 두드러진 작품, 세 번째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작가의 정신세계나 시대적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는 작품을 찾는 것입니다. 그런 작품을 만난다면 소중한 체험이 될 것입니다"(심상용 서울대 미술관장) 어떤 작품이 좋은지에 대한 선택은 각자의 몫으로 돌렸다. 취향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단다.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지만, 현장에서 직접 좋은 작품을 찾아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초상화(portrait) 작품 앞에 섰다. 제법 오래 머물렀다. 자연스레 작가와 작품에 관한 이야기가 오간다.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의 「사보아 쎄 푸브와/아는 것이 힘이다」와 '신디 셔먼(Cindy Sherman)'의 흑백사진으로 구성된 「무비 스타 시리즈」 그리고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의 「담배를 문 자화상」 등을 마주했다. 관객은 멀리서 가까이서 측면에서 살피듯 본다. 안경을 썼다 벗기도 한다. 눈에 담는 것만으로 아쉬운 작품 앞에서는 핸드폰을 누른다. 던지는 메시지의 무게를 아마추어로서 감당해 내기 쉽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피사체인 나는 본래의 나와 다른 나(이쁘거나 우아하거나 멋있거나 근엄하거나 등)로 포장하려 들기도 한다. 반면, 작가는 가능한 한 섬세하게 내면의 아이덴티티를 포착하여 작품 속에 전신사조(傳神寫照, 사람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전해 줌)를 담아 내려 한다. 작가마다 각자의 목소리로 말한다. 부조리한 사회를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내어 문제에 대한 공감과 동의를 작품으로 매수한 셈이다. 어떤 장면은 끔찍한듯하면서 격식이 있다.
작가의 품속으로 낯선 이방인이 야생마처럼 달려들어도 순한 양처럼 맞이해준다. 지나가더라도 붙들지 않는다. 좋아하든, 싫어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반기지도 나대지도 않지만, 그 자리에서 기다려 준다. 작품 속에 숨겨 놓은 것은 누구나 훔쳐도 된다. 품에 안고 돌아가는 관객의 미소를 보라.
"응, 이번 여행은 소풍이었지."
인생이 여행(旅行)이라고 한다면 여행은 곧 소풍(逍風)이다. 소풍, 소풍, 소풍은 바람에 거닐 듯 발걸음을 떼면 시작된다. 이번 상하이 소풍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황푸강 따라 동방명주의 탑과 초고층 용 모양 빌딩(상하이 센터)이 어우러진 상하이 와이탄(bund) 광경에 홀렸기 때문이 아니다. 신이 인간에게 타는 갈증을 풀어주기 위해 물을 선물했다고 한다면, 답답하고 외로운 인간에게 정서적 갈증을 풀어주기 위해 그림을 선물한 것은 아니었을까.
인생 여행의 끝은 애초 출발한 곳으로 되돌아감으로써 완성된다고들 한다. <귀천(歸天)>의 시인 천상병은 노래한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그리고 '아름다웠던 것'을 전해주기 위해서 우리의 소풍은 계속되어야 한다.
"우리 함께 소풍 갑시다"
◆ 글쓴이 : 김종봉 세무법인 더택스 대표세무사
[약력] 현) 가천대학교 겸임교수 / 현) (사)대한바둑협회 임원(이사), 현)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 모금분과실행위원회 위원, 서울청 국선세무대리인, 중부청 국세심사위원, 법무법인 율촌(조세그룹 팀장), 행정자치부 지방세정책포럼위원 / 가천대학교 경영학 박사 / 국립세무대학 총동문회 수석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