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봉 세무법인 더택스 대표세무사
칼럼 속에는 가수 훈세의 노래 "그냥 산다"가 등장한다. 유튜브에서 우연찮게 듣게 된 노래다. 노랫말 중에서 "나는 되는대로 그냥 산다. 어떤 걱정이라도 할수록 커져 나. 나는 가는 대로 그냥 간다. 가야 할 길이라고 믿으면 될 테니~"라는 음률에 꽂혔다.
새로 산 책의 첫 페이지를 여는 기분이랄까. 그렇게 만났다. 아직 서른이 안 된, 요즘 말로 MZ 세대를 뛰어넘은 잘파세대의 젊은이다. 먼저와 기다리고 있었다. 자리가 비좁게 느껴지는 풍채지만, 똘망한 눈빛과 청순한 인상의 호감형이다. 유튜브에서 들었던 미성의 남자 목소리와는 달리 대화 속의 그는 평범한 톤이다. 나이에 비해 진중해 보인다고 느낄 즈음, 시선이 반소매 차림의 양팔에서 멈췄다. 그림과 글자로 새겨진 문신이 눈에 훅 들어왔다. 가슴에는 거미 문신이 있다고 했다.
따분한 분위기에 아이스 브레이크로 등장한 것이 소맥(소주+맥주)이다. 몇 잔이 오고 가자 '삼촌'으로 불러도 되겠냐고 묻는다. "그래, 이제부터 삼촌이다." 호칭이 정리되는 순간 각자의 마음속 허들이 하나둘씩 사라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뜻밖이다.
나이도 그렇고 세무사와 가수라는 직업도 그렇다. 도대체 어울릴 만한 구석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음악에 관한한 청맹과니 수준인데. 게다가 치유 불능에 가까운 음치다. 따분한 중년의 시간에 색다른 분야의 젊은이와의 만남이라니.
실용음악을 전공한 그의 손을 거친 작품이 현재 60여 곡에 이른다는 혈기왕성한 뮤지션이다. 아버지가 무척 엄하셨다는 데도 원망보다는 오늘의 그가 있게 해준 동력이 되었다고 말한다. 시간을 공유할수록 잘파세대라는 이름의 세대 나누기가 무료하게 느껴졌다. 저작권료는 아직 소득이라고 하기에도 보잘것없다. 교회 행사 때마다 피아노 연주를 하고 받는 수입으로 생활비에 충당하는 사회 초년생이다.
피가 끓을 젊은이지만, 사랑보다는 음악 활동에 열정을 쏟아붓고 있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했다. 젊은 친구들의 공통 관심 사항처럼 들려서 새삼스럽거나 특별할 정도는 아니었다. 돈 벌어서 무얼 할 거냐고 물었다. 고급 승용차를 사겠단다. 순간 놀라기는 했지만,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왜 고급 승용차인지 묻지 않았다.
근래에 생긴 소소한 변화 중 하나다. 책에서나 대화 중에 미처 생각지 못한 공감 가는 이야기, 넷플릭스 등 OTT 덕분이기도 하지만- 영화나 유튜브를 보다가 느낌이 새로운 장면이 등장하면 화면을 일시 정지하고 핸드폰의 똑똑 노트에 옮겨적는 버릇이 생겼다.
우리의 대화는 고급 승용차가 등장하면서 일시 정지됐다. 그리고 제법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탁자 밑으로 내려놓은 핸드폰에서 살며시 똑똑 노트를 열었다. "인간은 사랑을 왜 원할까요?, 유통기한도 짧고 고통스러울 뿐인데요." "사랑하면 죽을 만큼 기분이 좋거든요." (영화 『The Mirror has Two Faces』에 나오는 대사)
돈을 벌어 고급 승용차를 갖고 싶어 하는 훈세의 로망은 어느 누군가의 죽을 만큼 기분 좋은 바로 그 사랑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은 또 다른 장면으로 이어졌다. "가난한 사람들은 굶주림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배를 채우지만, 부유한 사람들은 다르다. 인정받고 싶은 허기, 보여주고 싶은 허기를 위해 배를 채우는 경우가 있다." (영화 『Hunger』에서)
누군가한테서 들었던 이야기가 일시 정지 해제 버튼이 되었다. "돈은 달리는 말과 같아서 잘 못 사용하면 사람이 다칠 수 있습니다. 말에서 떨어지면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는 것처럼요." 싫은 표정 하나 없이 훈세는 묵묵히 듣고 있었다.
세상은 그를 무명 가수라고 할지 모르지만, 나에겐 라이징 스타다.
페라리 운전석에서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을 떠올려 본다. 가수 훈세를 아시나요!
◆ 글쓴이 : 김종봉 세무법인 더택스 대표세무사
[약력] 현) 가천대학교 겸임교수 / 현) (사)대한바둑협회 임원(이사), 현)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 모금분과실행위원회 위원, 서울청 국선세무대리인, 중부청 국세심사위원, 법무법인 율촌(조세그룹 팀장), 행정자치부 지방세정책포럼위원 / 가천대학교 경영학 박사 / 국립세무대학 총동문회 수석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