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미로(美路)인가, 미로(迷路)인가

1990년대 교양방송 TV에서 「밥 로스」가 진행한 〈그림을 그립시다〉라는 프로는 당시 세상의 눈길을 끌어모았다. 작가는 아름다운 풍경화 한 점을 30여분 만에 그렸다. '내가 원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림을 그린다'라는 그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다'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와 함께 그림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아름다운, 미학(美學)이란 말은 18세기 독일의 철학자 알렉산더 바움가르텐이 창안한 이후 '아름다움의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 예술이다'라는 등식이 한동안 자리 잡았다. '정말 아름다움의 구현이 예술의 목표인가?'라는 데 있어 《예술의 이유》에서 저자 「미셸 옹프레」는 이를 부정한다. 그는 '예술가는 미(美)의 이상을 구현하는 자가 아니라 작품에 의미를 실어 전달하는 자'라고 정의한다.

제주도의 어느 미술관이었다. "배가 싣고 있는 것을 강은 알지 못한다(What does the vessel contain that river does not, 수보드 굽타/Subodh Gupta, 인도 출신의 현대예술가)"라는 작품을 만났다. 실물 모형의 배는 약간 기울어진 채 놓여있다. 주전자와 식기에, 자전거, 부서진 의자며 창틀, 이런저런 잡동사니들이 너저분하게 실려있다. 누런 마대도 눈에 들어왔다. 마대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배가 알 리 없다.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이야기를 하는 작가의 속셈은 무엇일까.

「마우리치오 카텔난」의 〈바나나〉가 국내에서도 유명세를 치렀다. 올해 리움미술관에 등장했다. 작품명 〈코미디언〉이다. 벽에 바나나를 테이프로 붙여놓았다. 12만 달러에 거래된 적도 있다. 누군가는 마르셀 뒤샹의 변기에 버금가는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작품을 본다고 바나나를 먹은 것처럼 허기를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작품 제목인 〈코미디언〉을 만난 것처럼 아주 우습지도 않다. '도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의문을 더한다.

마르셀 뒤샹의 〈샘〉은 예술작품 인식에 대한 일대 전환기를 가져왔다 그가 한 것이라고는 레디메이드 제품에 자신의 사인이 들어간 것이 전부(?)였다. 뒤샹의 〈샘〉(남성용 소변기를 뒤집어 놓고 작품명으로 칭함)은 전시회를 주관한 협회로부터 전시 불가 판정을 받았다. 이유인즉슨, "〈샘〉은 본래의 자리에 있으면 매우 유용한 물건이겠지만, 미술 전시회는 그 본래의 자리가 아니며 어떤 정의에 의해서도 예술작품이라 할 수 없다. 이것은 예술이라 부를 수 없다"

뒤샹은 협회의 입장에 정면으로 맞섰다. "예술가가 선택하는 것이 예술이다"라며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세상은 뒤샹의 변기를 예술작품으로 자리매김하였으며 그의 영향력은 미술사조에도 지대한 반향을 불러왔다. '뒤샹의 행위는 일종의 쿠데타였다. 이 성공적인 미학적 쿠데타로 예술가가 어떤 개념을 품고 있느냐가 중요하지 어떻게 구현했느냐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예술의 이유》, 미셸 옹프레)

〈2023 Frieze Seoul〉 행사가 9월에 강남 코엑스 전시장에서 열렸다. 이번 프리즈 작품 중 「피에르 위그」라는 프랑스 작가의 〈Role Announcer와의 만남은 이색적 경험이었다. 퍼포먼스라고 하는 행위예술이란다. 궁금했다. 주변을 보니 그냥 지나치는 사람도 있었지만, 망설이는 사람도 보였다. 동행자 중 한 사람이 먼저 나섰다. 샹들리에 조명 아래에 나비넥타이를 맨 신사가 이름을 묻는다. "서 OO"이라고 하니 신사는 복명복창하듯 큰소리로 외친다. "서 O O". 끝이다. 눈에 보이는 건 이게 다다. 내 차례다. 신사는 이름을 물었다. "탐"이라고 답했다. 순간 아래위를 훑어보며 난감해하는 표정을 짓는다.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서둘러 "존 폰 노이만"이라고 소리쳤다.

'엥? 「존 폰 노이만」은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저명한 물리학자이자 수학자가 아니었던가.' '나와 아니, 탐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이지?' '이게 무얼 의미하는 것인가?', '예술이란 도대체 뭔가?'라는 생각이 툭 튀어나왔다.

다가가면 갈수록 미술(ART)에 대한 친근함은 의문에 의문을 더한다. 예술가는 누구이며,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의 경계는? 그 구분은 누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예술가가 품고 있는 개념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예술이란….

'예술은 자신의 목소리로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데이비드 호크만)이며,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로버트 라우젠버그)다. 나아가 '돈을 버는 것이 예술이며, 훌륭한 사업이야말로 가장 뛰어난 예술'(앤디 워홀)이며 마침내 '모든 게 다 예술이고, 모든 사람이 다 예술가'(요셉 보이스)가 되었다. "과학은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설명하고, 종교는 설명해서는 안 되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며, 예술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어령)이라면 예술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 자체가 부질없어도 보인다.

시간이 흐를수록 궁금증은 쌓여만 간다.
"존경하는 관장님, 미술의 영역은 풀리지 않는 매듭처럼 혼란스러울 지경입니다. 프랑스의 68운동 당시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라는 선언은 메시지의 무게만큼이나 언어유희(言語遊戲)를 떠올리게 됩니다.
무엇이 작품이고 누가 작가인지도 모호합니다. 작품에 대한 가치 평가도요. 어떤(전위예술 등) 경우는, 작가와 관객 간에 소통이 아니라 갈등 조장을 의도 내지 즐기는 것인가 싶기도 합니다. '이제 미술(ART)은 죽었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옳고 그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고 따지지도 않습니다. 'ART는 소통과 갈등이 공존하고, 살든지 죽든지 내버려 두어야 한다'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신처럼 창조하고, 왕처럼 명령하고, 노예처럼 일하라'라는 브랑쿠시의 신념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버겁고 난감합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두운 밤 헤매던 길에서 마치 북극성을 찾은 듯, 분간할 수 없는 미로(迷路)에서 한줄기 불빛이 심장에 적중했다.
"주의를 기울여 깊이 생각하면 결국 모순(矛盾)과 만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리고 박리(剝離)가 일어나지요. 사조(思潮)를 공부할 땐 그것에 얽매이지만, 공부하고 나면 그 안에 있는 모순과 마주하고, 집착(執着)이 떨어져 나갑니다. 우리는 이런 과정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심상용 서울대 미술관장)

◆ 글쓴이 : 김종봉 세무법인 더택스 대표세무사
[약력] 현) 가천대학교 겸임교수 / 현) (사)대한바둑협회 임원(이사), 현)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 모금분과실행위원회 위원, 서울청 국선세무대리인, 중부청 국세심사위원, 법무법인 율촌(조세그룹 팀장), 행정자치부 지방세정책포럼위원 / 가천대학교 경영학 박사 / 국립세무대학 총동문회 수석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