⑱미처분이익잉여금. 무조건 처리해야 하는 세금폭탄일까?

'미처분이익잉여금=세금폭탄'이라는 자극적인 문구를 강조하며 이를 해결해 준다는 솔루션이 성행하고 있다. 미처분이익잉여금을 당장 처리하지 않으면 나중에 주식을 양도, 증여하거나 가업을 승계할 때 과도한 세금을 부담해야 하고, 만약 이를 해결하지 않고 법인을 청산하는 경우 배당소득세/건강보험료 폭탄을 떠안아야 한다며 이를 해결해 주는 조건으로 고액의 보험 계약을 요구하고 있다.

미처분이익잉여금이 증가할수록 주식 가치도 상승하므로 주식의 양도, 증여 및 가업승계 시 세금 증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폐업 후 법인 청산 시 주주가 분배 받는 이익잉여금은 의제배당에 해당하므로, 이에 대한 배당소득세 및 건강보험료를 부담해야 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이유로 미처분이익잉여금 관리가 필요한 것은 맞다. 필자 또한 미처분이익잉여금 관리가 필요한 기업을 대상으로 다양한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 다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미처분이익잉여금 관리가 필요한 기업은 어떤 기업인가?라는 것이다. 미처분이익잉여금 규모가 큰 기업은 무조건 이를 처분해야 하는 걸까?

정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미처분이익잉여금 관리가 필요한 기업은 과도한 미처분이익잉여금이 존재하는 기업이다. 다만 과도한 미처분이익잉여금은 단순하게 잉여금 규모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업종, 현금흐름, 자산·부채의 구성 등 기업의 전반적인 현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잉여금 과다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의 실제 상담 사례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A 법인(제조업)의 202x년 말 현재 자본 총액은 100억이며 자본금 1억, 미처분이익잉여금 99억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순하게 자본 현황만 놓고 보면 누가 봐도 미처분이익잉여금 과다 법인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 법인은 몇 년 전에 고액 보험을 계약하는 조건으로 관련 컨설팅을 진행했던 상태였다. 하지만 계약 전에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도 않았고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 필자에게 전문적인 상담을 의뢰하였다. 상담 결과는? 해당 법인의 미처분이익잉여금은 전혀 과도하지 않았으며, 당연히 잉여금 처분은 필요하지 않았다. 남들처럼 세금 폭탄만 강조하고, 고객의 이익이 아닌 본인의 이익만 따졌다면 고액 계약을 따낼 수도 있었지만 필자는 컨설팅을 진행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해당 법인의 미처분이익잉여금은 과도하지 않은 걸까?

해답은 재무상태표에 숨어 있다. 재무상태표는 자산, 부채 및 자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자산=부채+자본으로서 이를 재구성하면 자본=자산-부채이다.

자산, 부채를 무시하고 판단하면 자본금 1%, 미처분이익잉여금 99%로 구성된, 불필요한 잉여금이 넘쳐 나는 법인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본 항목을 자산과 부채로 재구성한 결과는?
자산 150억 원 중 50억 원은 부채 상환에 필요하기 때문에 잉여금 처분에 사용할 수 없다. 나머지 자산 100억 중 95억 원은 법인 운영에 반드시 필요한 공장, 창고라서 처분할 수 없다. 결국 남는 자산은 5억 원인데 이 자산도 처분할 수 없다. 왜냐면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여유자금은 일정 수준 보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해당 법인의 경우 장부에 계상하지 않은 임원 퇴직금 추계액이 4억 원이었기 때문에 5억 원 중 4억 원은 미래의 퇴직금 지급을 위해 보유해야 한다. 최종적으로 남는 자산은 1억 원이다. 사업 운영자금으로 쓰기에도 부족한 금액이다. 추가 대출 20억 원을 받지 않는 이상, 법인에는 잉여금 20억 원을 처분하기 위한 재원이 없다. 불필요한 잉여금이 넘쳐 나는 것처럼 보였던 법인이 오히려 여유자금이 더 필요한 법인이었던 것이고, 미처분이익잉여금 99억 원의 실질은 공장, 창고로서 사업에 반드시 필요한 잉여금이었던 것이다.

해당 법인도 세금폭탄이 두려워서 몇 년 전에 상당 규모의 이익잉여금을 처분하는 컨설팅을 진행했었다. 하지만 실상에 맞지 않는 무리한 컨설팅을 진행한 후 발생한 현금흐름 문제로 인해, 결국 부동산 담보 대출을 추가로 받고 상당한 이자비용을 부담하게 되었다.

자본 항목만 들이대고 세금폭탄만 강조하는 말 때문에 불필요한 지방처럼 보였던 미처분이익잉여금이 사실은 이 법인의 근간을 지탱하는 뼈대이자 근육이었고, 비전문가의 잘못된 컨설팅 때문에 멀쩡한 뼈대와 근육을 손상시키고 불필요한 이자비용만 부담하게 된 것이다.

미래의 세금을 미리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상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사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면서까지 미처분이익잉여금을 처분해야 할까? 누구를 위한 컨설팅인 것인가?

코끼리 다리만 만지고 코끼리를 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게다가 코끼리의 다리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자의 컨설팅은 사기에 가깝다. 기업의 회계, 세무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전문 회계사, 세무사도 신중하게 진행하는 업무를 비전문가가 함부로 진행할 성격의 것이 아니다. 병원에서는 이를 '불법 시술'이라고 부른다. 의사가 아닌 자에게 소중한 내 생명을 맡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소중한 내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비전문가의 불법 시술은 내 기업의 생명을 해친다.

미처분이익잉여금은 법인의 지방이다. 하지만 지방은 비만이 아니다. 필요 이상의 과도한 지방이 비만이다. 법인 오너라면 반드시 미처분이익잉여금 관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적정한 관리를 통해 불필요한 세금 부담을 회피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대상은 필요 이상의 과도한 잉여금이 되어야 하며, 세무 전문가의 사전 진단으로 판단하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