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안 두고 野 정면충돌 "무리수" vs "대의원제의 정상화"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회가 차기 당대표와 최고위원 선출 시 대의원을 배제하고 권리당원 비중을 높이는 '대의원 권한 폐지'를 최종 혁신안으로 발표하자 당내 계파갈등은 격화하고 있다. 혁신안 발표 하루 만에 비명계와 친명계는 정면 충돌했다.

고민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의원제 폐지는 총선에는 전혀 적용사항이 없고 오로지 전당대회, 즉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곳에만 적용된다"며 "내년 총선이 끝나고 해야 할 일을 굳이 지금으로 당겨야 할 시급성이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고 최고위원은 "전당대회 룰은 당헌 25조의 비율이 정해져 있어 수정하기 위해서는 당헌을 개정해야 하고 중앙위를 소집해야 한다"며 "저희 지도부조차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이 선출해야 할 총선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고, 국민의 민생과 관련된 시급성을 다투는 것도 아닌 일로 오로지 민주당 대표와 지도부를 선출하기 위해 이런 무리수를 두어야 하는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또 "민주당은 5월8일 22대 국회의원선거 후보자 선출 규정에 관한 특별당규를 제정한 바 있다"며 "혁신위는 민주당의 시스템 공천을 완전히 무시해 버리는 발표를 한 셈이 돼버렸다"고 비판했다.

비명계가 주축인 친문(親文) 의원 모임인 '민주주의 4.0'도 성명서를 내고 "대의원제도는 직접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고 당이 어려운 지역의 의견 반영도 고려되어야 한다는 이유에서 운영해 왔는데, 대의원제도 자체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혁신안은 당내민주주의 원칙만 강조하며 당 조직체계나 대의기관 등이 어떤 상황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발표됐다"고 지적했다.

또 "당 지도부 선출에서 대의원 표의 반영 비율 30% 폐지를 제일 큰 혁신과제로 제안했는데, 과연 이것이 국민 눈높이에서 가장 시급한 혁신안이라고 할 수 있겠나"라고 되물었다.

당내 최대 의원모임으로 알려진 '더좋은미래'도 이날 입장문을 내고 "전당대회 대의원 투표 반영 여부와 비중 등은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주제다. 하지만 이는 일년 뒤 개최되는 전당대회 문제"라며 "국민적 관심 사안도 국민이 바라는 민주당 혁신의 핵심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점에서 혁신위가 제안한 전당대회 대의원 투표 반영 여부와 그 비중에 관한 사안은 총선 이후 전당대회 준비위 차원에서 국민여론과 당내 의견을 수렴해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며 "이 사안에 대해서는 총선 전 더 이상 논의를 진행하지 말 것을 지도부와 의총에 제안한다"고 강조했다.

양소영 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장도 이날 BBS 라디오에서 "대의원 폐지가 혁신의 아젠다로 나오는 것은 지금의 상황에서 그런(친명 지도부의 새 전당대회 개최) 우려를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양 위원장은 "대의원제 무력화해 놓은 상황은 큰 문제"라며 "대의원제가 없어진다고 해서 정당이 혁신 쪽으로 좋아진다는 보장은 어느 곳에도 없다"고 일갈했다. 또 "혁신안 공천 룰이 그대로 적용되면 평가 주체가 당이 돼 특정 집단을 학살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친명계 의원 및 친명계 성향을 띠는 더민주전국혁신위 등 단체는 두 팔 벌려 환영의 뜻을 표했다.

서은숙 최고위원은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단체나 조직을 혁신할 때 반대와 저항의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혁신의 과정은 혼란스러워 보일 수밖에 없다"며 "정당은 지향하는 이념과 철학의 기초 위에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는 탑을 쌓아야 한다"며 혁신안에 찬성했다.

서 최고위원은 "'민주주의', '차별받지 않는 동등한 권리', 우리 당이 지향하고 나아가야 할 가치"라며 "민주당의 혁신안은 이 기준에 의하여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혁신은 존재할 수 없다. 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혁신을 거부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 낡은 존재로 만드는 길이란 걸 우리 함께 자각했으면 좋겠다"고 힘을 실었다.

친명계로 분류되는 김용민 의원은 이날 SBS라디오에서 대의원제 무력화가 '개딸' 등 강성 지지층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당권 장악을 하기 위한 것이란 비판에 "당 국회의원이 당원들과 싸우자는 얘기라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며 "당원들을 폄하하는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김 의원은 "당대표를 뽑는데 왜 대의기구인 대의원들한테 60표, 70표의 가치를 주느냐, 이거 평등선거에 반한다"며 "당원들이 240, 250만명이고 권리당원도 지금 110만명이 넘는다. 이분들이 다 강성이고 다 일방적으로 특정인의 지지를 하면서 특정인이 하자는 대로 한다? 그렇지 않다"고 반박했다.

또 "대의원제의 배신이라고 하는데 국민의 대표, 당원의 대표를 뽑아놨더니 뽑아준 사람과 전혀 다르게 별도로 자기만의 생각을 가지고 정치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이 최근 중요한 선거를 다 졌다. 결국 대표성을 상실한 것 아니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서영교 의원도 이날 MBC라디오에서 "혁신위가 약 50일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각계각층을 만나서 의견을 수렴해서 이 안을 내놓은 이상 의미 있게 평가한다"고 호평했다.

다만 "최고위에서는 등가성 폭을 좀 줄여나가는 건 괜찮겠다, 정도까진 얘기했다"면서도 대의원제 가중치를 없애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고 봤다.

서 의원은 "국민의힘은 대의원의 가중치가 없다. 국힘당은 권리당원의 당원들의 투표로 하다 보니 전광훈과 같은 사람의 입김이 최고위원을 뽑거나 당대표를 뽑는데 좌우지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부정적인 경향도 있다"고 지적했다.

더민주전국혁신회의 등 당원 단체도 이날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당원이 답한다'는 기자회견 열어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김용민, 양이원영 의원도 참석했다.

김 의원은 "대의원제 폐지가 아닌 대의원제의 정상화"라며 "대의원 제도는 대의기구이기 때문에 특정 사안에 대해서 혹은 정책에 대해서 심의하고 의결하는 기구다. 당대표 선거할 때 투표만 하는 기구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대의원 제도를 원래 취지에 맞게 심의하고 의결하는 그런 기구로 만들자라는 것이 혁신안의 핵심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재명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혁신안은 혁신위의 제안이기 때문에 당내 논의를 거쳐 합당한 결과를 만들어내도록 하겠다"고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이어 '당내 반발이 크다'며 입장을 묻자 즉답을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