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일현 중국 정법대 교수 "中 입장, 중국대사에 부여된 정당한 임무 수행한 것"
"바이든 부통령 때는 항의조차 안 했으면서, 지금은 내정간섭? 내부 불만"
"한중관계 실무책임자들 똑같은 발언…中 내부서 조율 끝나고 전략 대응 중"
"韓 대응전략 바꾼 듯…정부와 민간의 분리대응, 양면전략"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8일 저녁 성북구 중국대사관저에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만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문일현 중국 정법대 교수는 12일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나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는 등의 발언을 한 것을 계기로 한중 양국이 '대사 초치' 공방을 벌인 것과 관련해 "이번 베팅 발언은 싱 대사의 개인적인 의견도 있었겠지만 상당 부분 고도로 계산됐고 의도됐던 발언"이라고 분석했다.
문 교수는 이날 오전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싱 대사의 발언의 단어 하나하나는 모두 중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취지로 이같이 밝혔다.
문 교수는 "2013년 미 바이든 당시 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의 반대편에 베팅하는 것은 결코 좋은 베팅이 아니다'라고 얘기한 것은 아무런 항의조차 안 했으면서 똑같은 용어를 중국이 사용하니까 왜 내정간섭이라고 얘기하느냐 하는 게 중국 외교부 내부 불만"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2013년 부통령 신분으로 방한했을 때도 박근혜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미국의 반대편에 베팅하는 것은 절대 좋은 베팅이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싱 대사의 논란의 발언에 대해 장호진 한국 외교부 1차관은 9일 싱 대사를 불러 항의했고, 다음날 즉시 눙룽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는 정재호 주중대사를 중국 외교부로 불러 심각한 우려와 불만을 표했다. 다만 중국은 '초치' 대신 '회동을 약속하고 만난다'는 의미인 '웨젠'(約見) 형식이었다고 발표했다.
문 교수는 "웨젠은 약속을 해서 만난다는 뜻으로 항의나 불만을 전달하기 위해 부른다는 점은 초치와 같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초치보다는 수위 면에서 한 단계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일반적으로 초치 했을 경우 중국 외교부 입장만 전달되고 끝난다. 10분 내지 20분이면 끝나는 건데 40~50분 걸렸다고 하는 얘기는 정재호 대사가 거기에 대해 뭔가 반박하지 않았느냐 그런 얘기들이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중국 당국의 입장은 이재명 대표를 만난 것도 그렇고 그 자리에서 중국의 입장을 설명한 것도 중국대사에게 부여된 정당한 임무를 수행한 것이라는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문 교수는 싱 대사나 중국 외교부 대변인, 류진쑹 외교부 아주사 사장(아시아 담당국장) 등 한중관계를 최전방에서 다루는 실무책임자들의 발언을 놓고 볼 때 중국 내부에선 이미 조율이 끝났고 나름의 전략을 갖고 대응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 교수는 "이 사람들이 지금 한중 양국 관계에 대한 평가나 표현을 보면 거의 똑같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류진쑹 아주사 사장에서부터 외교부 대변인 그리고 대사에 이르기까지 양국관계가 난관에 봉착했고 도전을 받고 있다는 평가도 그렇고, 그 책임은 중국에 있지 않다는 책임 소재에 대한 표현도 세 사람 모두 똑같다"고 지적했다.
다만 "(중국이) 웨젠이라는 한 단계 낮은 수위로 대사를 부르고, 우리는 차관이 불렀지만 중국은 차관보가 불렀기 때문에 이걸 확전시키지 않고 장기화시키지 않겠다고 하는 뜻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국민의힘에서 싱 대사를 외교상 기피 인물로 지정하고 추방해야 한다는 주장에 나오는 데 대해 "중국과 단교를 각오하지 않고선 할 수 없는 조치들"이라며 "한국 정부가 과연 한중단교라는 최악의 상황을 각오하고서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그 점은 상상하기 어렵다. 한국도 그렇게까지는 확대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에 지금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하지 않을까"라고 답했다.
또 문 교수는 중국이 한중관계 문제점의 원인으로 △한국이 대만 문제의 레드라인을 건너가는 것 아니냐 하는 우려 △압도적인 친미노선으로 동북아 외교의 힘의 균형이 깨진 점 △한미일 공조 강화로 북한을 빌미로 중국을 겨냥한다는 불만 △경제적 탈중국 선언 등 네 가지를 꼽는다고 설명했다.
또 중국이 한국을 대하는 대응전략이 바뀐 것으로 본다며 "정부에 대해서는 강경하게 나가되 민간에 대해서는 온건하게 대응하는 이른바 정부와 민간의 분리대응, 양면전략으로 본다"며 "과거 사드 때 정부와 민간을 무차별적 보복을 가함으로써 한국 내 반중감정이 극도로 고조됐다는 게 중국 스스로 반성하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에는 민간과 재계에 대해서는 유연한 태도를 취하고, 중국이 한국에 얼마나 필요한가를 이들 민간채널을 통해 강조하면서 문화라든가 청소년 교류라든가 관광 한류에서 일정 부분 유연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싱 대사가 최근 라디오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해 인터뷰한 점에 대해서도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라며 "한국 정부를 상대로는 아무리 얘기해도 안 되니까 중국의 입장을 민간을 상대로 직접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겠다, 이런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