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 공직생활 3대 히트곡
"평생을 공직자로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거나 보람 있는 성과는 무엇입니까?" 간혹 받는 질문이다. 50년 가까이 공직에 몸담으며 쉼 없이 일했고 많은 성과를 창출했지만 대표 히트곡 하나를 꼭 집어 답하기가 쉽지 않다.
대체적으로 질문자나 장소에 따라 상황에 맞게 대답하곤 하지만 3가지 성과는 대체로 언급한다. ①국세청장 시절(2003~2005년) 도입했던 접대비실명제 ②건설교통부장관 때(2007년) 집값 안정을 위해 시행했던 분양가 상한제와 원가공개제 그리고 ③광주광역시장 시절(2018~2022년)에 한국 경제의 체질을 바꾸고 일자리 창출을 위해 성공시켰던 광주형 일자리가 그것이다.
이들 정책의 공통점은 기존의 제도와 관행에서 과감히 벗어나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혁신적인 조치여서 많은 저항과 갈등 그리고 비난을 극복해야 했고, 시행 후에는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스스로도 50년 공직생활의 3대 히트곡이라고 칭할 만큼 애정이 가고 보람과 자긍심을 갖는다.
특히 접대비실명제는 한때 내 별명이자 트레이드마크가 될 정도로 20년전 도입 당시만 해도 매우 사회적 파장이 컸던 조치였다. 과거 우리 사회는 연고와 청탁을 바탕으로 한 건전하지 못한 접대문화가 비리와 부패의 온상이었고 혁신을 가로막는 장해요인이었다.
앞으로 7차례에 걸쳐 왜 나는 그토록 접대비실명제 시행에 매달렸는지 그 혁신의 과정을 되짚어보며, 지금 우리사회가 가야할 이정표를 찾아보고자 한다.
2. 운명처럼 다가온 국세청장 자리
2003년 2월25일, 변화를 갈망하는 많은 국민들의 기대를 안고 참여정부가 출범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인 3월3일, 노무현대통령은 차관급인사에서 나를 첫 국세청장으로 발탁했다. 청와대로부터 사전에 어떤 언질도 없었고 인사이동에 대한 연락이 전혀 없었던 터라 당사자인 나는 언론 발표를 통해 그 내용을 처음 접했다. 기대도 안했던 국세청장 자리는 내게 그렇게 운명처럼 조용히 다가왔다.
대통령과 일면식도 없고 참여정부 인사들과 어떤 인연도 없는 나를 왜 임명했을까? 당시 정찬용 인사수석은 세금에 대한 '전문성'과 관세청장 시절 보여준 '개혁성'을 발탁이유로 발표했지만, 구체적인 임명배경은 알 수 없었다.
나는 이틀 전 노무현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서 나름 그 이유를 찾았다. "몇몇 권력기관은 그 동안 정권을 위해 봉사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이들 권력기관은 국민을 위한 기관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참여정부는 더 이상 '권력기관'에 의존하지 않을 것입니다."
노 대통령은 이미 당선자 시절에 국정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경찰청장 등 소위 '빅4' 기관장의 국회 인사청문회와 관련해 일부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강행' 함으로써 권력기관 중립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준 바 있다.
국세청장으로서 내게 맡겨진 시대적 소명은 분명했다. 바로 권력기관으로 인식되던 국세청을 국민의 봉사기관으로 '혁신'하는 것이었다. 내가 국세청장으로 임명될 당시 국세청 여건은 참으로 어려웠다. 세풍사건과 언론사 세무조사 등의 여파로 국세행정의 중립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크게 훼손되어 있었고, 세금 부조리도 큰 문제였다. 그런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국세청장에 대한 국회인사청문회제도까지 도입된 것이다.
나는 처음 열린 국세청장 인사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하고, 2003년 3월 24일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던 그날부터 바로 국세행정의 패러다임과 시스템을 바꾸는 강도 높은 세정혁신에 착수했다. 취임 3일 만에 혁신적인 직원들로 '세정혁신추진기획단'을 출범시켰다. 보름만인 4월8일에는 각계각층의 외부 전문가 30명으로 구성된 '세정혁신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첫 회의를 개최하여 세정혁신의 목표와 방향 그리고 혁신과제를 확정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시작된 개혁의 걸음들이었다.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와 내가 세정혁신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이에 대해 친 시장 · 친 기업이어야 할 국세청이 시민운동가를 공동위원장으로 선임한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말이 많았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국세행정에 대한 국민의 바람이 가을 햇살처럼 맑고 투명하게 있는 그대로 전달되려면 이해관계가 적은 NGO출신이 적임자라고 판단했다. 특히 박변호사는 절제와 중용의 도리를 잘 아는 분이라서 국민과 국세청의 가교역할을 잘해줄 수 있는 적임자로 판단했다.
그러나 보수성이 강한 조직에 15년 만에 외부출신 청장이 취임하고 전면적인 혁신을 추진하자 과거 연고에 의해 세금이나 인사문제를 해결해왔던 기득권층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여기에 접대비실명제까지 추진하자 청장이 곧 바뀔 것이라는 루머도 유포되고, 여러 가지 음해와 모함이 오가기도 했다. 혁신의 길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였다.
그럼에도 세정혁신에 대한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과 대다수 국세청 공무원들의 도움으로 나는 2년이라는 짧은 재임기간 동안에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과세자료 양성화를 위해 세계 최초로 도입한 현금영수증제도 시행, 20년 이상 유지되어온 특별세무조사 폐지를 비롯한 투명한 세무조사시스템 확립, 납세자들에게 자긍심을 드리기 위한 세금포인트제·모범성실납세자 ·고액납세기념탑 제도 도입, 청탁과 로비가 통하지 않는 '전자희망인사시스템' 구축, 열병처럼 번지던 부동산투기와의 전쟁, 접대비실명제 등등... 무엇보다도 값진 변화는 권력기관으로 인식되던 국세청이 국민의 봉사기관으로 새롭게 거듭났다는 점이다.
이러한 세정혁신 성과 중 가장 힘들었던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많은 저항과 비난을 감내해야 했던 접대비실명제 시행이었다.
<다음 회에서는 접대비실명제 도입배경에 대한 얘기가 이어집니다>
"평생을 공직자로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거나 보람 있는 성과는 무엇입니까?" 간혹 받는 질문이다. 50년 가까이 공직에 몸담으며 쉼 없이 일했고 많은 성과를 창출했지만 대표 히트곡 하나를 꼭 집어 답하기가 쉽지 않다.
대체적으로 질문자나 장소에 따라 상황에 맞게 대답하곤 하지만 3가지 성과는 대체로 언급한다. ①국세청장 시절(2003~2005년) 도입했던 접대비실명제 ②건설교통부장관 때(2007년) 집값 안정을 위해 시행했던 분양가 상한제와 원가공개제 그리고 ③광주광역시장 시절(2018~2022년)에 한국 경제의 체질을 바꾸고 일자리 창출을 위해 성공시켰던 광주형 일자리가 그것이다.
이들 정책의 공통점은 기존의 제도와 관행에서 과감히 벗어나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혁신적인 조치여서 많은 저항과 갈등 그리고 비난을 극복해야 했고, 시행 후에는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스스로도 50년 공직생활의 3대 히트곡이라고 칭할 만큼 애정이 가고 보람과 자긍심을 갖는다.
특히 접대비실명제는 한때 내 별명이자 트레이드마크가 될 정도로 20년전 도입 당시만 해도 매우 사회적 파장이 컸던 조치였다. 과거 우리 사회는 연고와 청탁을 바탕으로 한 건전하지 못한 접대문화가 비리와 부패의 온상이었고 혁신을 가로막는 장해요인이었다.
앞으로 7차례에 걸쳐 왜 나는 그토록 접대비실명제 시행에 매달렸는지 그 혁신의 과정을 되짚어보며, 지금 우리사회가 가야할 이정표를 찾아보고자 한다.
2. 운명처럼 다가온 국세청장 자리
2003년 2월25일, 변화를 갈망하는 많은 국민들의 기대를 안고 참여정부가 출범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인 3월3일, 노무현대통령은 차관급인사에서 나를 첫 국세청장으로 발탁했다. 청와대로부터 사전에 어떤 언질도 없었고 인사이동에 대한 연락이 전혀 없었던 터라 당사자인 나는 언론 발표를 통해 그 내용을 처음 접했다. 기대도 안했던 국세청장 자리는 내게 그렇게 운명처럼 조용히 다가왔다.
대통령과 일면식도 없고 참여정부 인사들과 어떤 인연도 없는 나를 왜 임명했을까? 당시 정찬용 인사수석은 세금에 대한 '전문성'과 관세청장 시절 보여준 '개혁성'을 발탁이유로 발표했지만, 구체적인 임명배경은 알 수 없었다.
나는 이틀 전 노무현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서 나름 그 이유를 찾았다. "몇몇 권력기관은 그 동안 정권을 위해 봉사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이들 권력기관은 국민을 위한 기관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참여정부는 더 이상 '권력기관'에 의존하지 않을 것입니다."
노 대통령은 이미 당선자 시절에 국정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경찰청장 등 소위 '빅4' 기관장의 국회 인사청문회와 관련해 일부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강행' 함으로써 권력기관 중립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준 바 있다.
국세청장으로서 내게 맡겨진 시대적 소명은 분명했다. 바로 권력기관으로 인식되던 국세청을 국민의 봉사기관으로 '혁신'하는 것이었다. 내가 국세청장으로 임명될 당시 국세청 여건은 참으로 어려웠다. 세풍사건과 언론사 세무조사 등의 여파로 국세행정의 중립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크게 훼손되어 있었고, 세금 부조리도 큰 문제였다. 그런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국세청장에 대한 국회인사청문회제도까지 도입된 것이다.
나는 처음 열린 국세청장 인사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하고, 2003년 3월 24일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던 그날부터 바로 국세행정의 패러다임과 시스템을 바꾸는 강도 높은 세정혁신에 착수했다. 취임 3일 만에 혁신적인 직원들로 '세정혁신추진기획단'을 출범시켰다. 보름만인 4월8일에는 각계각층의 외부 전문가 30명으로 구성된 '세정혁신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첫 회의를 개최하여 세정혁신의 목표와 방향 그리고 혁신과제를 확정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시작된 개혁의 걸음들이었다.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와 내가 세정혁신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이에 대해 친 시장 · 친 기업이어야 할 국세청이 시민운동가를 공동위원장으로 선임한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말이 많았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국세행정에 대한 국민의 바람이 가을 햇살처럼 맑고 투명하게 있는 그대로 전달되려면 이해관계가 적은 NGO출신이 적임자라고 판단했다. 특히 박변호사는 절제와 중용의 도리를 잘 아는 분이라서 국민과 국세청의 가교역할을 잘해줄 수 있는 적임자로 판단했다.
그러나 보수성이 강한 조직에 15년 만에 외부출신 청장이 취임하고 전면적인 혁신을 추진하자 과거 연고에 의해 세금이나 인사문제를 해결해왔던 기득권층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여기에 접대비실명제까지 추진하자 청장이 곧 바뀔 것이라는 루머도 유포되고, 여러 가지 음해와 모함이 오가기도 했다. 혁신의 길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였다.
그럼에도 세정혁신에 대한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과 대다수 국세청 공무원들의 도움으로 나는 2년이라는 짧은 재임기간 동안에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과세자료 양성화를 위해 세계 최초로 도입한 현금영수증제도 시행, 20년 이상 유지되어온 특별세무조사 폐지를 비롯한 투명한 세무조사시스템 확립, 납세자들에게 자긍심을 드리기 위한 세금포인트제·모범성실납세자 ·고액납세기념탑 제도 도입, 청탁과 로비가 통하지 않는 '전자희망인사시스템' 구축, 열병처럼 번지던 부동산투기와의 전쟁, 접대비실명제 등등... 무엇보다도 값진 변화는 권력기관으로 인식되던 국세청이 국민의 봉사기관으로 새롭게 거듭났다는 점이다.
이러한 세정혁신 성과 중 가장 힘들었던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많은 저항과 비난을 감내해야 했던 접대비실명제 시행이었다.
<다음 회에서는 접대비실명제 도입배경에 대한 얘기가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