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 "대통령의 중요 덕목은 인내심"
대통령, 노동자들의 인내심도 헤아릴 수 있어야
◆…노동절(근로자의 날)을 맞은 지난 1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노동개악 저지! 윤석열 정권 심판! 5.1총궐기 2023 세계노동절 기념대회'에 참가한 한 시민이 손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 곽명곤 기자]
그렇다면 윤 대통령의 인내심은 선택적인 것인가, 그런 의구심이 문득 들었다.
대통령이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도통 인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민주노총을 '공산당 근거지'라고 생각했는지 국정원·경찰 등 국가권력을 앞세워 '폭격'한다거나, 건설노조원들을 '건폭(건설현장 폭력배)'으로 매도하며 적대시한다거나, 한국노총의 회계장부를 문제 삼아 정부 보조금을 회수하는 일들이 모두 이번 정권에서 일어난 일이다. 집권 1년 차 대통령이 참다가 참다가 마침내 선택한 일들일까?
대통령의 인내심을 '노동조합'에서 '노동'으로 범위를 넓혀서 살펴봤다. 윤석열 대통령의 근로자의 날 기념사가 눈에 띄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근로자의 날을 맞아 자신의 SNS에 "오늘은 133번째 근로자의 날입니다"로 시작되는 글을 게재했다. 그런데 대통령은 해당 게시글에서 '근로자'라는 단어를 네 번 사용하면서, '노동자'라는 단어는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노동자라는 단어 사용을 자제하는 모습은 대통령의 인내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정의에 따르면, '노동'은 "사람이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노력을 들이는 행위"로서 일하는 사람을 능동적 주체로 조명하고 있다. 반면 '근로'는 "부지런히 일함"이라고 규정됨으로써 사람을 일에 귀속되는 주체로 전락시킨다.
대통령의 '인내가 담긴 메시지'는 노동절 집회에 참여한 노동자들을 한순간에 근로자로 둔갑시켰다.
노동 분야에서만큼은 갈피를 잡기 어려운 대통령의 인내심. 이것을 나름대로 이해하는 데는 '윤석열노믹스'라는 저서를 출간한 언론사의 지난 2022년 신년사설 기사가 큰 도움이 됐다.
대한민국은 이미 선진국이라며 "국민소득 5만달러 앞당기자"고 주장하는 내용들이었다. 이윽고 1970년대 수많은 '난장이'들의 인내심을 시험케 한 '낙수효과'가, 2020년대에 'Y노믹스'라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고려한 듯한 이름으로 탈바꿈해 재등장하게 된다.
그러면서 정부와 여당은 지난 2022년 연말에 세계경제 등을 고려해 "2027년까지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를 열겠다"고 쐐기를 박았다. 현 정부의 '2020년대 난장이 때려잡기' 기저에는 '경제 성장 만능주의'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짐작만 해볼 뿐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대통령은 자신이 인내하는 것처럼 노동자들도 인내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까?
경제 성장에 골몰한 대통령이 '노동 유연화'를 주문하자 정부는 '주 최대 69시간 근로시간 개편안'이라는 대책을 내놓았다. 정작 정책 골자가 될 '휴식권 보장'에 대해서는 "노사합의"라며 그 책임을 떠넘긴, 설익은 정책이었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은 참았다.
대통령이 "우리는 MZ노조가 아니다"라고 밝힌 'MZ노조 아닌 MZ노조' 사람들을 호명해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할 때도, 노동자들은 인내했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30번도 넘게 언급하면서 정작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서는 간첩·비리·폭력조직 등의 이미지로서 탄압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노동자들은 참고 있을 것이다.
요즈음 어떤 노동자들은 '노동자 1년 하면서 느낀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인내심'이라고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난 2일, 건설노동자였던 한 집안의 가장이 정부의 노동조합 탄압 기조에 생때같은 아내와 딸을 남겨둔 채 분신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이러한 극단적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어떤 인내의 시간을 거쳤을지, 그리고 남은 가족들은 얼마나 길고 깊고 아린 인고의 시간을 갖게 될지, 그런 부분들을 대통령이 헤아려 봐야 하지 않을까.
대통령 스스로가 밝힌 인내심이란 덕목이 '선택적 덕목'으로 전락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