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조정.. 판결인 듯 판결 아닌 판결 같은 판결

최근 한 고객이 계약상대방과 다툼이 생겨 민사소송을 거쳐 ｢강제조정결정(조정을 갈음하는 결정)｣을 통해 최종적으로 당초 계약이 해제되었다. 이를 근거로 국세기본법 제45조의2 제2항 제1호('소송에 대한 판결(판결과 같은 효력을 가지는 화해나 그 밖의 행위를 포함한다)')에 의해 후발적 사유에 의한 경정청구에 이르렀다.

경정 청구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서울행정법원의 "행정소송에서의 ｢조정권고｣는 소송에 의한 '확정판결'에 해당하지 않는다"라는 취지의 판례(서울행정법원 2023.01.20. 선고 2021구합83178 판결)를 접했다. ｢조정권고｣는 무엇이고 ｢강제조정결정(조정을 갈음하는 결정)｣과 달리 취급되어야 할 특별한 사정은 도대체 무엇인가? 고개가 갸우뚱거려졌다.

'확정판결'에 해당하는지는 조세법에서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확정판결'인 경우에는 나의 고객처럼 후발적 사유에 의한 경정청구 대상이 된다. 아닌 경우라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억울한 사정이 생길 수 있다. 한편으로는 국세부과제척기간(국세기본법 제26조의2 제6항 제1호) 적용시 확정판결에 해당하는지에 따라 과세권의 명운이 갈린다.

즉, '확정판결' 여부에 따라 납세자 권익 청구권과 과세당국의 과세권 유지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냥 지나치기엔 왠지 불편하다.

시간을 조금 내어 따져보았다. ｢강제조정결정(조정을 갈음하는 결정)｣은 민사조정법 제30조에 근거한다. 판사가 직권으로 조정 결정을 할 수 있으며, 2주일 이내에 이의신청하지 않으면,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민사조정법 제34조 제4항)이 발생하고, 이는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민사소송법 제220조)을 가지게 된다.

나의 고객의 결정문에도 "이 결정서 정본을 송달받은 날부터 2주일 이내에 이의를 신청하지 아니하면, 이 결정은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을 가지며, 재판상 화해는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있습니다"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다.

행정소송에서의 ｢조정권고｣는 판사가 행정청과 원고에게 조정권고안을 마련하여 제시하면 쌍방이 수용하게 될 경우 합의에 의해 분쟁을 해결하게 되는 방식이다. 어느 일방이라도 수용 의사가 없는 경우에는 일반적인 소송절차대로 진행된다. ｢강제조정결정(조정을 갈음하는 결정)｣은 판사가 직권으로 조정결정하는 것이다. 반면, ｢조정권고｣는 판사의 권고로서 수용의 강제성이 없다.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조정권고｣의 태생적 한계가 있다.

혹자는 민사소송법상의 법원의 화해권고 조항을 근거로 행정소송에서도 준용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한다. 하기야 프랑스 행정법원법에는 "당사자를 화해시키는 것도 법관의 의무이다"라는 조항이 있다고 들었다.

한동일 교수는 《로마법 수업》에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이상이 담겨있는 고대 로마법과 제도의 가장 큰 특징으로 '절충'과 '조율'을 꼽았다. 법관의 거부하기 어려운 책무로 여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별론으로 한다. '이해당사자간 다툼에 법원이 나서서 원활한 해결을 도모하는 조정을 권하는 사회가 잘못된 것인가? 판사는 옳고 그름만을 판단해야 하고 ｢조정권고｣는 행정권을 침해하는 행위인가?' 라는 의문이 생겼다.

서울행정법원에서 ｢조정권고｣ 후 소취하 건수가 전체 사건 중 10%를 상회하고 있다. 2000년 3,286건 중 317건(9.68%), 2010년 7,829건 중 1,174건(15.00%), 2020년 8,080건 중 816건(10.10%)이다. 실무상 다수의 사건이 ｢조정권고｣에 의해 사건이 종결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여전히 법원과 또 다른 사법기관 또는 법률가들 사이에서는 논쟁거리다.

과거 여러 차례 행정사건의 조정제도에 대한 실정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행정소송법 개정 작업이 진행되었다. 대법원이 긍정적 입법 태도라면 법무부는 견해를 달리했던 모양이다. 제도를 비판함에 있어 유익하고 좋은 점들은 제외하고 나쁜 점들만 열거하고 폐단들만 지적하는 것은 불공정하기도 하고 모양새도 빠져 보인다.

"한 가지 법을 세우면 한 가지 폐단이 생기는 것은 고금의 통환(通患)"(조선왕조실록 세종조)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관련 사안은 조세법 등 다른 법률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 자기 멋대로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라는 말에 딴지라도 걸어야 할 판이다. 법적 근거가 미약하다는 논쟁만 지속할 것인지 묻고도 싶다.

법원의 판사가 이해당사자간 분쟁을 조기 해결하기 위해 조정을 권하는 사회가 시비의 대상이 되는 것이 마뜩잖다. 케케묵은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키케로의 ≪법률론≫에서 "모든 법률은, '시민의 안녕과 국가의 안전과 인간들의 평온하고 행복한 생활'을 위해 창안된 것"이라고 했다. 나아가 원래 "법률이란 인간들의 재능으로 생각해 낸 것이 아니며, 양심과 이성, 여론에 부합하는 법만이 참다운 법"이라고 했다. 이를 토대로 로마는 '절충'과 '조율'로서 법을 실현해 나갔던 셈이다.

다수의 국민은 ｢강제조정결정(조정을 갈음하는 결정)｣과 ｢조정권고｣ 모두 법원에서 판사에 의해 이해당사자를 상대로 합의를 끌어내는 판결의 과정 중 하나로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 ｢조정권고｣가 확정판결의 효력을 갖지 못한다는 지적에는 판사의 권고행위와 이후의 조정 절차에 정당성이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나아가 권한 남용이라는 사족이 달릴 여지도 있다.

'판결인 듯 판결 아닌 판결 같은 판결'처럼 찜찜함이 남는 것은 나만의 생각인가.

◆ 글쓴이 : 김종봉 세무법인 더택스 대표세무사
[약력] 서울청 국선세무대리인, 중부청 국세심사위원, 가천대학교 겸임교수, 법무법인 율촌(조세그룹 팀장), 행정자치부 지방세정책포럼위원 / 가천대학교 경영학 박사 / 국립세무대학 3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