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채권 아무나 변제해도 문제 없다?...이해할 수 없는 논리"
"강제동원은 인권 침해 성격...제3자가 당사자 의사에 반할 수 없다"
"진상규명위원회에 신고한 사람 약 22만명...44조원 배상금 필요"
"2007년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피해자 구제 필요로 개인 청구권 존재"
◆…최봉태 변호사(좌)와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우) 사진:KBS라디오 '열린토론' 방송 캡처
정부가 지난 6일 발표한 제3자 변제 방식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해법안을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제 3자 변제' 방식을 제시했지만 피해자 측은 법률적으로 피해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다면 제3자 변제가 불가능하다면서 정부안의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정부는 민법 469조를 근거해 일본 기업의 배상금을 '제3자'인 우리나라 재단이 '대신' 갚는 방식을 제시했다. 민법 제469조 제1항에 따르면 채무의 변제는 '제3자'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제3자'에 대한 해석이다. 대법원은 '제3자'에 대해 채무자와 '법률상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으로 돈을 갚지 않는 채무자때문에 자신까지 법적 문제가 생기게 된 경우가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최봉태 변호사는 8일 KBS라디오 '열린토론'에서 "민법 조항에 규정되어 있는 법정 채권을 아무나 변제해도 문제가 없다고 한다면 법을 하는 입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논리"라며 "외교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를 보지 말고 법률적인 문제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변호사는 "일제 피해자 문제는 단순한 금전 문제가 아닌 인간의 존엄과 인권 침해로 발생했던 문제와 관련된 인권적인 성격이기 때문에 제3자가 당사자 의사에 반해서 할 수 없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이어 "민법 469조 제2항(이해관계없는 제3자는 채무자(일본 가해 기업)의 의사에 반하여 변제하지 못한다)에서 돈을 받을 권리가 있는 채권자의 의견에 대해서는 적혀 있지 않다는 법률 해석이 있는데 해당 조항이 만들어진 이유는 채무자를 보호해 주기 위해서다. 가령 악덕 사채업자들이 채무자 대신 빚을 채권자에 갚아주고 노예로 끌고 가는 그런 상황들의 발생을 막기 위해서다"고 부연했다.
만약 제469조 제2항을 적용한다해도 채무자인 일본 기업들이 한국 대법원의 판결 자체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채무자의 의사'를 따지기도 어렵다. 최 변호사는 "일본 기업들이 한국정부를 통해서 갚아달라고 이야기한 적이 전혀 없다"고 일축하면서 오히려 채무자(일본 가해 기업)의 의사에 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가 채무를 대신 갚아주고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을 상대로 엄청난 구상권(타인을 대신해 채무를 변제한 사람이 주채무자에게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있기 때문에 채무자(일본 가해 기업) 입장에서는 반대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면서 "지금은 한국 정부가 구상권 행사를 마치 안 할 것처럼 보이지만 과연 우리 국민들 정서상으로 구상권을 행사하지 않는 재단이라든지 정부를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겠냐"고 반문했다.
이어 최 변호사는 한국 정부가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일제 피해자 15명에게 우선 순위로 약 40억원을 지급한다면 다른 피해자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지금 일제 피해자만 있는 게 아니다. 진상규명위원회에 신고한 사람이 약 22만명이다. 1인당 2억원 정도 지급한다면 약 44조원이 들어간다"면서 "이때문에 일제 피해자 15명에게 약 40억원을 지급하고 이 문제를 끝낼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되면 피해자들 사이에서도 엄청난 분열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핵심 쟁점인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이 소멸했는지'에 대해 최 변호사는 "개인 청구권은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개인 청구권 처리 법적 의미에 대해서 논란이 있을 때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법원"이라며 "2007년도 4월 27일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로 개인 청구권이 존재한다"고 단언했다.
이어 "일본 최고재판소에서는 식민지 합법이고 불법을 떠나서 피해자들이 피해를 입은 부분에 대해서는 구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식민지 지배가 합법이기 때문에 한국인 피의자들에 대해서는 청구권이 소멸돼서 아무것도 하지 마라 이런 판결을 한 것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실제로 지난 2007년 일본 도쿄고등재판소의 화해 권고에 따라 니시마츠 건설은 중국 피해자 전원에게 배상금을 지급한 데 이어 2016년 미쓰비시 머티리얼즈는 2차대전 중국 강제 징용 노동자들에게 1인당 1만5000달러를 배상한 바 있다.
또 그는 "일본기업들은 중국인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살아 있는 처분권을 소멸시키기 위해서 기금도 만들어 사죄하고 있다. 또 일본정부가 원폭 피해자들에게 매달 약 40만원~50만원씩 보상을 하고 있다"고 구체적인 사례도 언급했다.
그러면서 전쟁에 가담해 군수물자 제조 등으로 이익을 봤고 1965년 한일협정 이후에도 대규모 계약을 따내 막대한 이득을 취했음에도 일본 전범기업들은 정작 한국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그 어떤 책임을 진 적이 없다고 비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