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기준금리 연 3.50%로 동결…경기침체 우려·정책공조 강화

한국 12개월 연속 무역적자 우려…물가안정보다 경기지원
부동산 침체 장기화에 부동산PF 시장 고려
정부와 금융당국과 정책 공조 강화
전문가 “물가상승률 진정되지 않은 상황…금리인상 했어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23일 기준금리를 연 3.50%로 동결했다. 물가상승률이 다소 올랐지만 강한 경기침체를 우려해 속도조절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정부와 금융당국과의 정책 공조를 강화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한은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은 본부에서 금통위 본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3.50%로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2월 기준금리가 동결되면서 2021년 8월 이후 열 차례에 걸쳐 총 3.00%p 올랐던 기준금리 인상 행렬은 잠시 멈췄다.

대외적으로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기조 장기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환율이 급등하는 등 금융시장, 외환시장의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는 모습이며 대내적으로는 1월 물가상승률이 소폭 상승한 5.2%로 나타났고 2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4.0%를 기록하는 등 물가 불안이 우려되고 있어 기준금리 인상 여부와 인상 폭에 시장의 관심이 집중돼왔다.

금통위의 이번 결정은 물가안정보다는 경제상황을 우선 고려한 판단으로 풀이된다. 해외기관들은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지난해 10월 전망치 대비 상향 조정하고 미국, 중국 등 경제성장률을 상향 조정했다. 반면 한국의 경우에는 하향 조정했다.

2월 1~20일 한국의 무역수지는 59억9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국제 에너지 가격 인상 여파에 주요 수출품목인 반도체 부진의 영향이 컸다. 이대로라면 지난해 3월 이후 12개월 연속 적자가 유력한 상황이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한양대학교 겸임교수)은 “세계경제는 마일드한 경기침체라고 볼 수 있는데 한국경제는 유독 좀 더 강한 경기침체라고 할 수 있다”며 “금통위원들은 강한 경기침체는 막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동결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금통위 결정은 금융시장의 불안 해소를 위한 선제적 대응으로도 해석된다. 장기화되고 있는 부동산시장의 침체와 그로 인한 부동산 PF 시장 불확실성을 낮추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금리인상이 부동산시장의 폭락 흐름의 장기화를 유발할 경우 한국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채권시장은 작년 10월 불안전성이 정점을 찍은 이후 다소 해소되고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이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건설사 PF 시장으로 최근 미분양주택이 급격히 늘면서 건설사의 자금마련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게다가 미분양주택이 증가할수록 건설사들의 투자 역시 어려울 수 있다는 판단에 금통위는 금융불안정 해소를 위한 대응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김 실장은 “부동산시장이 바닥을 찍고 반등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는데 기준금리 인상으로 다시 꺾일 수도 있다는 우려에 동결 결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거시경제에 위협이 될 가능성을 배제하는 데 보다 중점을 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금통위의 기준금리 동결은 정부, 금융당국과의 정책 공조를 강화한 결정으로도 해석된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과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 금융수장들은 시중은행들의 성과급 잔치를 강하게 질책했다. 이에 은행들은 앞 다퉈 금리를 인하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경우 정부, 금융당국의 의도와는 다른 혼선을 초래할 수 있어 금리동결을 결정한 것이 아니냐고 시장은 분석하고 있다.

김 실장은 “서민들이 가장 크게 체감하는 부분은 주택담보대출금리, 전세자금대출금리이다”면서 “금리가 서민에 과한 부담이 된다는 말은 실제로 보면 부동산과 연관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시장에서는 한은의 동결 결정에 대한 아쉽다는 반응도 존재한다. 물가상승률이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난 1월 한국의 물가상승률은 5.2%로 전월대비 상승했다. 게다가 최근 환율은 미국의 긴축기조 장기화 우려에 급등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 실장은 “이 정도의 높은 금리로 물가를 잡기에는 충분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지만 수입물가가 다시 올라갈 가능성이 있어 자칫 물가를 잡는데 실기할 수도 있다”며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격차는 이미 벌어져 있는 상태로 이번 동결 결정으로 인해 추가적인 금리 격차가 예견되고 있다”며 “물가상승률이 진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강달러까지 겹친다면 한국경제에 굉장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정부, 금융당국 등이 서민에게 금리가 과한 부담이 된다는 발언을 했지만 이는 결국 부동산시장이 폭락함에 따른 정치적 발언으로 해석하는 의견도 있다”며 “물가에 더 주안점을 두었다면 금리인상을 했을 것이다. 이번 결정은 한은이 독립적이지 않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