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물가 둔화 속도 더딜 듯…경기·금융안정 고려 통화정책 운용"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외신기자클럽 초청 기자간담회 개최

"국가별 통화정책이 차별화…통화정책 커뮤니케이션 어려움이 가중될 것"

"韓, 누적된 비용인상압력 뒤늦게 반영 물가둔화 속도 주요국에 비해 더딜 듯"

"물가 중점을 두면서 경기 및 금융안정과의 trade-off도 면밀하게 고려할 것"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8일 "올해는 물가에 중점을 두면서도 경기 및 금융안정과의 trade-off도 면밀하게 고려해야 하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날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국프레스센터 18층 SFCC 라운지에서 열린 외신기자클럽 기자간담회 모두발언을 통해 "올해 유가 수준이 낮아지더라도 한국의 경우 그간 누적된 비용인상압력이 금년중 뒤늦게 반영되면서 소비자물가지수(headline inflation)의 둔화 속도가 주요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딜 수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지난해 한국과 주요국의 통화정책 운용 여건의 공통점으로 ▲예상치 못한 높은 인플레이션 ▲달러화의 강세 ▲높은 레버리지 수준 하에서의 통화긴축 등을 꼽았다.

이 총재는 "물가의 경우 금융위기(GFC) 이후의 저물가 기조가 끝나고 글로벌 고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났다"며 "미국과 유로지역의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수십년만의 최고치인 연 8%대 수준을 나타냈다. 한국도 5.1%로 외환위기 때 1998년 7.5%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높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미 연준이 금리를 빠르게 인상함에 따라 달러화 강세가 두드러졌다"며 "특히 한국과 같은 에너지 수입국에서는 유가가 크게 오른 상황에서 환율까지 급등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더 가중됐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지난 십여년간의 저금리 환경에서 나라마다 부채의 종류와 구조는 다르지만 전 세계적으로 레버리지 수준이 크게 높아졌다"면서 "이에 글로벌 통화 긴축이 맞물리면서 금융안정 면에서의 취약성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이 총재는 또한 "전세계적으로 고물가는 공통적인 현상이었지만 높은 인플레이션을 초래한 요인은 국가별로 달랐다"며 공통점 내에서도 한국만의 특수성, 즉 세 가지 차이점을 지적했다.

이 총재는 "유로지역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가격 급등에 따른 공급측 요인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더 컸던 반면 미국의 경우 팬데믹 회복과정에서 늘어난 재정지출, 노동시장의 구조 변화 등으로 물가압력이 더 크게 나타났다"면서 "한국의 경우 수요, 공급 요인의 기여도가 양 지역의 중간 정도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외환시장의 경우 지난해 8월까지 원화는 달러인덱스변화폭과 유사한 정도로 절하되었던 반면 8월 중순부터 10월말까지는 달러화 강세 속도보다 더 빠르게 절하됐다"면서 "이는 중국의 경기둔화 및 일본 엔화가치의 가팔라진 절하 등에 주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레버리지와 관련해서는 상대적으로 보면 한국의 기업, 정부 및 대외 부문 부채는 현재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닌데 반해 가계부채는 그렇지가 않다"며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비중은 105%로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에 해당하며 저금리 환경 및 팬데믹 하에서 빠르게 증가했다"고 우려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 총재는 한국의 가계부채에 대해 "단기적으로는 금융시스템 불안을 초래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은행들은 자본이 충분하고 가계여신의 상당 부분은 엄격한 DTI, LTV 규제를 받는 부동산을 담보로 하고 있으며 이들 자산의 건전성은 상당히 높은 편이기 때문"이라며 "다만 한국의 가계부채 구조는 통화정책 결정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의 단기부채 및 변동금리 비중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라고 우려했다.

이 총재는 "올해는 국가별로 통화정책이 차별화되는 가운데 통화정책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한 해가 될 것"이라며 "한국의 headline inflation 둔화 흐름은 지난해 국제유가 급등의 영향이 CPI에 뒤늦게 반영(pass-through)되면서 주요국과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지난해 유로지역의 전기·가스요금 등 에너지요금 상승률이 40%를 상회한 반면 한국에서는 13%에 그쳤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이에 따라 올해 유가 수준이 작년보다 낮아지더라도 한국의 경우 그간 누적된 비용인상압력이 금년중 전기·가스요금 등에 뒤늦게 반영되면서 headline inflation의 둔화 속도가 주요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지난해에는 5% 이상의 고물가 상황이 지속되면서 물가에 중점을 두었다면 올해는 물가에 중점을 두면서도 경기 및 금융안정과의 trade-off도 면밀하게 고려해야 하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행은 이러한 정책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앞으로 통화정책을 보다 정교하게 운용해 나갈 것이며 시장과의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도 적극 노력하겠다"고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