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에 반도체 생산기반을 마련하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CHIPS) 법이 높은 제조원가와 불황기에 접어든 산업주기로 성공 여부가 불투명해 보인다.
CHIPS 법은 업계가 아시아 지역으로 이전한 이유를 도외시하고 반도체 제조의 30%를 미국 땅에서, 20%를 유럽으로 다시 되돌리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인텔 최고경영자 팻 겔싱어(Pat Gelsinger)는 “아시아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것이 30~40% 저렴하겠지만 CHIPS 법을 통해 경쟁의 장을 평준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겔싱어의 말을 해석하자면 반도체 법이 미국에 공장이 있는 인텔과 아시아 지역에 생산시설을 갖춘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미국이나 유럽에 공장을 건설함으로써 생산 비용을 증가시켜 경쟁을 가능하도록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TSMC 창업자인 모리스 창(Morris Chang)은 여러 차례 “미국의 제조원가가 너무 높아 경쟁이 어렵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다시 말해 미국에 생산시설을 갖춘 제조업체는 아시아만큼 효율적인 칩 제조가 어렵다는 주장이다.
엔비디아, 퀄컴, AMD, 브로드콤은 물론 인텔도 FPGA 및 GPU 칩을 TSMC에서 생산하고 있다. 이는 아시아 지역 외에서는 경제성과 함께 최첨단 제품을 생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장만 지어진다고 기업들의 경쟁력이 살아날지는 의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반도체 공급망에서 핵심적인 부문인 패키징과 관련된 문제 또한 해결되어야만 성공적인 공급이 가능하다는 점도 문제다. 인텔이 이기종 컴퓨팅을 위한 3D 패키징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지만, 기존 성숙한 노드에서 제조되는 전원관리 칩이나 디스플레이 드라이버와 같은 칩의 패키징은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는 배제되어 있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기존 성숙한 노드를 미국으로 되가져 오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고 있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기존 노드 제품의 성공 여부는 제조원가에 중대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미국으로 이전하려는 기업을 찾기는 쉽지 않다.
설령 찾아낸다 하더라도 만성적인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결국 시장에서 퇴출되는 운명을 맞을 것이 뻔하다.
특히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반도체 호황과 불황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겔싱어는 지난달 말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반도체 시장이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라며 “지난 2년의 호황은 코로나로 발생한 수요와 그 수요를 충당하려는 제조업체의 대응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시장이 급속히 냉각되는 상황에서 미국은 중국의 첨단기술에 대한 접근을 막기 위해 장비와 첨단 칩의 수출을 금지했다. 그 영향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물론 미국 기업들에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어플라이드 머트리얼즈의 4분기 수익은 1억5천만 달러~4억 달러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램 리서치의 경우도 내년 수익이 25억 달러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발표했다. KLA은 아직 수치를 발표하지 않았지만 상당한 영향이 나타날 것이라는 관측이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업계가 2022년 장비에 지출할 금액은 보수적으로 잡아도 9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고 이 중 25%인 220억 달러를 중국이 차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내년에는 140억 달러가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중국에 대한 칩 판매가 금지된 회사들의 매출 손실과 칩 제조사의 매출 손실을 감안할 때 현재로서는 CHIPS 법이 의도했던 고용 측면에서 오히려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수익의 10~20%가 줄어들면 정리해고에 나서는 장비업계의 관행으로 미뤄 곧 정리해고도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인텔은 이미 대규모 해고를 발표했으며 나머지 업계도 뒤따를 가능성이 크다.
겔싱어가 인터뷰에서 주장한 것처럼 장기적인 성장(호황)주기도 있겠지만 단기적인 불황 주기도 피할 수 없다. CHIPS 법에 따른 520억 달러의 지원금을 제외하면 반도체 산업의 일반적인 사이클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 공장 건설로 인한 원가상승에 불황기에 접어든 산업주기를 극복하는 것이 CHIPS 법의 성공 여부를 가를 수 있는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