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편,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정치는 이른바 민주주의의 위기로 인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반지성주의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5월 10일 취임사 중 일부다. 이날 취임사에서 가장 강조한 단어는 '자유'였다.
일부에서는 윤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자유라는 단어는 무려 35번 등장했지만, 통합 메시지는 없었다고 꼬집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우리나라의 사회적 위기 원인으로 '다양한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공동체의 결속력 부족과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정치권의 기능 부재의 가장 큰 원인을 반지성주의'로 진단하고 있다.
사회 문제의 원인과 진단, 그 해법을 제시하는 취임사에서 반지성주의라는 다소 추상적인 진단과 그의 해결 방안으로 합리주의와 지성주의를 제시했다.
그리고 약 5개월이 지난 후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위기 원인 중 하나로 손꼽히는 '노사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할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선임했다.
김 전 지사에 대한 경사노위 위원장 선임은 과거 극우적 발언과 태극기부대 집회에서 쏟아낸 반노동 발언 등으로 이미 노측의 반대가 극심한 상황이었다.
이런 논란 속에 김 위원장은 지난 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김일성주의자"라고 한 발언과 함께 과거 윤건영 민주당 의원에 대해 '종북 본성이 있다'고 한 발언에 대해서도 '그런 측면이 있다'며 자신의 발언을 굽히지 않아 결국 국정감사가 파행되기에 이르렀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날 국정감사에서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과거 김문수 위원장의 발언 중 '경기도립병원의 낮은 경쟁력은 노조 때문', '쌍용차 노조는 자살 특공대', '노조는 머리부터 세탁해야', '민주노총은 김정은 기쁨조' 등 막말을 언급하며 "윤석열 정부에서 사회적 첫 대화가 발을 떼기 위해서는 민주노총에 대한 사과가 선행돼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김 위원장은 "과한 부분 있었으면 사과를 드린다"면서도 "사과가 안 될 부분도 말씀하셔서, 무조건 사과하라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해 자신의 생각을 여전히 굽히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김 전 지사의 이런 발언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는 지난 50년대 미국에서 불었던 매카시즘을 소환하기도 했다.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 J.R.매카시의 이름에서 나온 '매카시즘'은 매카시 의원이 1950년 2월 "국무성 안에는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연설을 기화로 수년에 걸쳐 매카시가 상원의 '비미(非美)활동특별조사위원회'를 무대로 하여 행한, 공산주의자 적발 추방의 선풍을 말한다.
미국 정계 뿐 아니라 사회전반에 당시 동서 냉전이라는 세계사의 흐름 속에 반공주의를 무기로 유력한 정치가나 지식인들이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됐고, 심각한 사회적인 후유증을 남겼다.
이런 매카시즘은 특히 반지성주의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곤 한다.
김문수 위원장의 이런 극우(?)적인 발언이 매카시 선풍을 떠오르게 한다는 점에서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 강조했던 '반지성주의'가 오버랩 되는 기이한 순간이다.
윤 대통령은 14일 출근길에 '김문수 경사노위 위원장의 강성 발언이 노사정 대타협을 실현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 전 지사는 노동현장을 잘 아는 분"이며 "노동운동가들과 네트워크도 갖고 있다"며 옹호하고 나섰다.
이런 대통령의 인식에 대해 야당과 노동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원내대변인은 "윤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해임하지 않으면, 김 위원장의 발언이 곧 윤 대통령의 발언임을 인정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며 해임을 촉구했다.
정의당의 김희서 대변인 역시 "김 위원장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며 "김문수 위원장의 반노동, 반민주적 언행은 한두 번의 실수가 아니라 국회의원 시절부터 경기도지사, 태극기 부대 활동부터 최근 유튜브 활동에 이르기까지 정치권에 있는 내내 반복돼 왔다"고 지적했다.
김 대변인은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태도를 바꿀 의지가 전무하다는 것"이라며 "김 위원장은 '노동현장'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 '구시대적 노동관에 아직도 사로잡힌' 시대에 뒤처진 사람이며, '진영과 무관하게 네트워크'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반노동, 반민주, 극우적 네트워크'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에 대한 인사가 "소통과 협력이라는 시대정신, 경사노위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지적하면서 "윤 대통령은 그만 오기를 접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또한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은 이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와 김문수 위원장이 경총을 방문한 자리에서 '노란봉투법'에 대해 헌법의 노동권도 중요하지만, 재산권도 중요하고 소유권을 침해하면 공산주의라는 발언을 한 것과 관련해 "노란봉투법은 노조원들의 쟁의행위에 대해 막대한 손해배상소송으로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활동을 탄압하고, 노조원들의 개인 삶마저 파괴한다"고 지적했다.
양 위원장은 이어 "사측의 손해배상소송 때문에 목숨을 스스로 끊은 노동자들이 있는 정도"라며 "이것을 공산주의라고 하면 손배 때문에 노동자들을 죽이는 지금의 현실은 도대체 무슨 주의라고 할 것인지 되묻고 싶다"고 탄식했다.
이어지는 윤 대통령의 취임사다.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고 타협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진실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합리주의와 지성주의입니다"
윤 대통령은 최근 해외 순방 과정에서 비속어 논란에 휩싸이면서도 문제를 언론으로 돌리면서 상황을 모면하려고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민 여론도 싸늘하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20% 후반대에서 30% 초반대를 왔다갔다하며 반등을 못하는 모양새다.
반지성주의를 우리 사회의 위기 원인으로 진단한 윤 대통령 스스로 반지성주의에 빠진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다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