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사용 법제화… "담대한 구상 거부 재확인"
정세현, "대통령실 안보실 교체, 대북 정책 변화 필요"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주유네스코 대사 임명장 수여식을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유엔연설에서 다시 밝힐 것으로 알려진 '담대한 구상' 대신 북한의 비핵화 협상을 시작할 단초를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14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와 "윤 대통령이 오는 20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담대한 구상을 다시 되풀이하는 대신 북한 비핵화의 단초를 시작할 협상을 제안하는 내용을 포함시켜야 한다"며 대북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고 선언할 경우를 전제로 대규모 식량 공급 프로그램을 포함한 여섯 가지 대북 지원 방안을 담은 '담대한 구상'을 대북 정책의 기조로 제시한 바 있다.
정 전 장관은 최근 북한이 핵 무력 법제화까지 선언하게 된 배경에 대해 "4년 전 문재인-트럼프 대통령 시절 남북 정상회담도 하고, 북미 정상회담을 할 때까지만 해도 북한은 핵을 포기하는 대신 그 대가로 '북미 수교'와 '평화협정'을 받아내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실제 싱가포르에서 북-미 간 합의를 했고, 그 전에 4.27 판문점 회담에서 '미국이 종전하고, 불가침만 보장해 주면 왜 핵을 갖고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겠느냐?' 하는 게 북한의 입장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미국과 남한에 정권이 바뀐 뒤에 비핵화를 위한 북미 수교와 평화협정 체결은 사라지고, 무조건 북한더러 핵을 먼저 포기하라고 하면서 핵을 먼저 포기하면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주겠다. 예를 들면 담대한 구상 같은 것을 실현하겠다고 입장이 바뀐 것에 대해, 그리고 미국에서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서 트럼프 때와 달리 '트럼프 정책은 뭐든지 안 한다'고 하는 입장에서 오바마 때와 같은 전략적 인내로 정책 방향이 바뀌면서 북한의 입장에 변화가 온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특히 "금년 8월에 했던 을지프리덤실드(UFS) 훈련에 (김정은) 참수 작전까지 한다고 하니 아마 오금이 저리고, 간이 떨렸을 것"이라며 북한의 핵 무력 법제화 배경에는 이런 환경 변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윤석열 정부에서는 북한의 핵을 포기시키기 위해 압박과 제재를 가하고 있다면서 "만약 북한이 군사적으로 도발을 하면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이용해 확장억제를 더 강화해 나가는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아마 16일 날 워싱턴에서 차관급 한미 확장억제 회담을 할 것"이라며 "확장억제라는 것은 미군이 갖고 있는 전략 자산을 북한의 군사 도발, 군사적 행동을 사전에 억제하기 위해서 한반도 주변에 배치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한으로서는 확장억제하다가 결국 북한을 공격해 들어 올 가능성을 염려했을 것"이라며 "결국 미국과의 협상을 포기하고, 비핵화 협상은 절대 없다고 선언하고 오히려 미국과 사이가 나빠진 중국과 러시아에 붙어서 사실상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그런 수순을 밟으려고 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에서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결과적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포기하고 비확산 차원에서 북핵 위기를 관리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그는 "문 대통령 시절에는 러시아와 중국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비핵화 정책에 협조를 했었는데, 윤석열 정부 들어서서 한미 관계만 중시하고, 한중 관계와 한러 관계에 대해 상대적으로 가볍게 생각하고 움직이다보니 중국, 러시아도 이렇게 되면 북한을 도와주는 것이 낫겠다고 하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
이어 "핵을 포기하면 이것 저것 해 주겠다는 여섯 가지 프로그램(담대한 구상)을 내놨지만,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을 지금 분명히 했기 때문에 이번 유엔총회에서 윤 대통령이 다시 담대한 구상을 설명하기 보다는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을 시작할 수 있는 단초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등 보수 정부에서는 북한을 압박과 제재를 통해서 북한 체제를 붕괴시킬 수 있고, 임기 중에 통일이 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있었는데, 윤석열 대통령 역시 임기 내에 압박과 제재를 통해 북한이 붕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을 수 있다며 그러니까 그 의도를 북한에서도 간파하고 담대한 구상에 대해서는 사흘 만에 김여정이 나서서 과감하게 거절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북한이 핵 사용 조건에 대해 제시한 다섯 가지 내용이 "북한에 대해 공격이 이뤄지거나, 가령 최고 지도부에 대한 공격이 감행됐을 경우, 또 그 공격이 임박했다고 판단될 경우 등인데, 바로 임박했다고 판단될 경우라는 대목이 굉장히 위험스러운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말했던 선제타격이 사실상 북한에서 김정은을 위해할 어떤 공작이나 작전을 벌일 가능성이 있을 경우, 그것이 임박했다고 판단되면 선제적으로 핵을 쓰겠다는 것 아니냐"며 이 부분이 위험스러운 점이라고 지적했다.
정 전 장관은 때문에 윤 대통령이 이번 유엔총회에 가서 "미국이 북한 체제를 붕괴시키려고 할 경우 중국, 러시아가 막아주는 보호막이 돼 준다는 전제로 핵을 포기하라는 식의 협상을 시작할 수 있는 단초를 윤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에 포함시키는 것이 좋겠다"며 "그러다 보면 2003년 8월에 시작했던 베이징 6자회담과 같은 회담을 다시 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 6자회담은 2003년 8월에 시작해서 미국, 일본, 한국과 북한, 중국, 러시아 등 여섯 나라가 베이징에서 만나 2년에 걸친 회담 결과 2005년 9월 19일, 9.19 공동성명을 만들어 냈다.
그는 "미국과 협의를 해 가면서, 미국이 싫어하는 중국과 러시아를 끌여들어서 협상을 진행하려면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진짜 북한을 다뤄봤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대통령실 안보실의 교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북한은 이날 노동신문 논설을 통해 "미제의 달콤한 사탕발림과 압력에 못 이겨 자립의 길을 포기한 결과, 경제가 파산되고 남의 손에서 놀아나는 나라들의 운명은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제국주의의 포악성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MBC는 이날 북한 노동신문 논설 내용을 전하면서 "국제사회의 제재에 굴복하지 말고 자력갱생에 주력해야 한다는 뜻으로, 비핵화 협상에 응하면 경제지원을 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담대한 구상'을 거듭 거부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보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