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자택서 권총·폭발물 여러개 제조
윤 대통령, 아키에 여사에게 조전 보내 애도 표명
기시다 "아베, 오랜 시간 함께 한 좋은 친구"
◆…베트남 다낭에서 열리는 APEC 경제지도자 회의에 참석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사진:로이터통신
일본 최장수 총리인 아베 신조 전 총리가 향년 67세로 총선 유세 도중 사제총에 맞아 숨을 거둔 것으로 공식 확인됐다. 현재 일본 열도는 충격에 휩싸였다.
일본 NHK 등 언론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8일 일본 서부 나라현 나라시에서 거리 유세를 하던 중 총을 맞고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으나 끝내 숨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로 추정되는 남성이 일본 서부 나라현 가시하라의 한 병원에 도착하면서 들것에 실려 가고 있다. 사진:로이터통신
소방당국 관계자는 아베 전 총리가 구급차에 이송되던 초기에는 의식이 있었으나 이후 의식을 잃고 심정지 상태가 됐다고 전했다.
병원 의료진은 오른쪽 경부와 왼쪽 쇄골 부위에서 출혈이 확인됐고 심장혈관 지혈술, 수혈 등을 시행했지만 오후 5시 3분에 사망했다고 전했다.
◆ 각국 지도자 애도 표명
아베 총리의 피격 사망 소식을 전해들은 세계 각국 지도자들은 일제히 충격에 빠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저녁 아베 전 총리의 유족인 아키에 여사에게 조전을 보냈다. 윤 대통령은 조전에서 “일본 헌정 사상 최장수 총리이자 존경받는 정치가를 잃은 유가족과 일본 국민에게 애도와 위로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아베 전 총리를 '절친'이라고 지칭하며 "엄청난 충격"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도 "(미국이) 깊이 슬퍼하고 깊이 우려하고 있다"며 "그와 그의 가족 그리고 일본 국민과 함께 생각하고 기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소셜미디어에 "충격적 뉴스"라며 "그의 가족 그리고 일본 국민과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아베 전 총리 피격 현장 자료:로이터통신
앞서 아베 전 총리는 이날 오전 11시 30분경 나라시 야마토 사이다이 지역에서 유세 연설을 시작한 지 1분여만에 총탄에 맞아 쓰러졌다.
당시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의 말에 따르면 연설하는 아베 전 총리 뒤편으로 한 남자가 다가왔으며 두 번째 총탄에 아베 전 총리가 쓰러졌다고 했다. 그 후 보안요원들이 회색 티셔츠와 베이지색 바지를 입은 한 남자와 씨름하는 것이 목격되었다고 전했다.
현장에 있던 사업가 이치카와 마코토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큰 굉음 소리와 함께 연기가 났다"면서 "총은 텔레비전 카메라 크기"라고 말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선거운동 중 총을 맞고 쓰러졌다. 사진:로이터통신
교도통신은 아베 총리가 흰색 셔츠에 피를 흘리며 가드레일 옆에 얼굴을 대고 누워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 사람들이 아베 총리 주위에 몰려들었고, 한 사람은 심장 마사지를 하고 있었다. NHK는 병원을 향해 기차를 타고 가는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의 모습을 생중계로 보여줬다.
총격 직후 경찰은 현장에서 야마가미 데쓰야(41세)를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해 조사중이다. 용의자는 3년 동안 해상자위대 자위관으로 복무하다 2006년에 전역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저격한 용의자 야마가미 데쓰야가 나라현 야마토 사이다이지 역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사진:로이터통신
NHK는 야마가미 데쓰야 자택에서 여러 폭발물들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용의자는 경찰 조사에서 "지금까지 권총이나 폭발물 여러 개를 제조하고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용의자는 JR나라역 인근 8층 맨션 건물에 거주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 정부는 사건 직후 총리관저에 대책실을 설치하고 사건 규명 및 대책 마련에 나섰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64)가 8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와 관련해 취재진에게 설명하던 도중 잠시 발언을 멈추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날 오후 총리관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어떻게든 목숨을 구해달라고 기도했으나 기도도 헛되게 이런 소식을 접하게 돼 진심으로 유감이다. 할 말을 잃었다"고 밝혔다.
기시다 총리는 아베 전 총리에 대해 "탁월할 리더십과 실행력으로 엄격한 내외 정세에 직면한 우리나라를 이끌었다"며 "아베 내각을 지지하던 한 각료로서 오랜 시간을 함께한 좋은 친구였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 근간인 선거가 치러지고 있는 가운데 일어난 비겁한 만행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며 개탄했다.
일본은 오는 10일 참의원(상원) 선거를 앞두고 정계 유력 인사들이 선거 유세를 해왔으나 이날 아베의 총격 소식에 주요 정치인들은 유세를 중단했다.
◆ 최장수 총리 재임한 우익 상징적 정치인
두 차례에 걸쳐 총리를 지낸 아베 전 총리는 일본 우익의 상징적인 정치인이다. 2006년과 2020년 건강 악화를 이유로 총리직에서 두 번 물러났으나 퇴임 후에도 자민당 최대 파벌인 아베파를 이끌며 막강한 영향력을 유지했다. 지난해 9월 실시된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기시다 후미오가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아베가 결선 투표에서 기시다를 밀어줬기 때문이라는 정설이다.
정치 명문가 출신의 아베 전 총리는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손자다.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는 외무상을 지냈으며 친동생인 기시 노부오는 현재 방위상이다.
◆…일본 자위대 행사 참석한 아베 총리 사진:연합뉴스
극우 성향의 아베 전 총리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면서 한국 등 주변국의 강한 반발을 샀으며 2015년 종전 70주년 담화에서는 참전에 대해 “전후세대가 더 이상 사죄할 필요가 없다”고 밝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아베 전 총리는 2기 집권 당시 잃어버린 20년을 회복하겠다면서 ‘아베노믹스(아베+경제정책)’를 내세웠다. 아베노믹스는 ‘금융완화’ ‘재정지출확대’ ‘성장전략(구조개혁)’ 등 이른바 3개의 화살에 기초한 아베 정부의 경제정책을 말한다.
평가는 엇갈렸다. 기업들의 수익성, 실업률 하락, 주가 상승으로 경제성장은 회복됐으나 반면 국가채무비율은 급증하고 민간 투자도 크게 늘지 않아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