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4군데에서 8발 단거리 미사실 발사… 한미 확장억제 무력화
정세현, "근본적으로 핵·미사일 쓰지 않도록 하는 게 정책돼야"
미국에 대북 확장억제 요구하면, 미국의 대중국 압박에 동원될 위험
◆…지난달 25일 한미 연합 훈련 중 지대지 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다 <사진 로이터>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8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와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북한식 셈법, 북한식 대화법"이라며 "지난 25일 단거리, 중거리,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은 한국, 일본, 미국을 겨냥한 것이고, 이번에 4군데에서 8발을 쏜 것은 한미의 대북 미사일 방어망을 완전히 교란시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정 전 장관은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군데에서 이동식 발사대를 이용해 쏘아대면 남한에서 대응하기가 어렵다"면서 이같은 분석을 내놨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이 3축 체계를 말하는데, 3축 체계라는 것도 이렇게 정신없이 사방에서 날아오는 것에 대응할 수 있는 그런 방어 체계가 아니"라며 "한미 확장억제라고 하는 것도 무용지물까지는 아니지만, 사실상 무력화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 속담에 열 사람이 도둑 한 명을 못 지킨다는 말이 있는데, 그렇듯이 어디서 날아올 줄 알겠느냐"며 이같이 비유해 말했다.
정 전 장관은 이번에 북한의 도발에 대해 "6월 2일부터 4일까지 사흘 동안 오키나와 쪽에서 한미 해상 연합훈련이 항공모함, 순양함, 구축함 등이 다 동원된 굉장히 큰 훈련을 했는데, 그 훈련이 계속되는 동안은 쥐죽은 듯이 조용히 있다가 끝나자마자 그 이튿날 오전 9시에 8발을 쏘았다"며 북한의 원래 대응이 그렇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하는데 우리 쪽에서 대응한 것을 보니, 그 다음날 새벽 동해상에 8발을 쐈다. 한국이 7발을 쏘고, 미국이 1발을 쏘았는데, 확장억제를 부탁했으니 미국이 쏴 줘야 하는데 이걸 보고 확장억제의 실체가 저런 것인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북한의 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바로 위치 추적을 하거나 속도를 계산해서 대응을 해야 하는데, 하룻밤을 자고 나서 새벽에 쏘면 뭐 하는 것이냐"며 "그건 사후약방문도 아니"라고 평가했다.
정세현 전 장관은 우리가 동해상에 쏜 8발이 북한에 위협을 줘서 억지 능력을 보여줘야 하는데, 북한에서는 이런 식의 대응에 대해 아마 속으로 콧방귀를 뀌고 있을 것이라며 "북쪽에서는 20시간이 지나서 대응하는 것을 보고 '우리가 앞으로 마음대로 가지고 놀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결국 (북한에게) 끌려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尹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도 엄정하고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했는데, 그건 말에 불과한 것이고, 엄정 대처하려면 즉시 때렸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세현 "근본적으로 북한이 핵이나 미사일 쏘지 않도록 만드는 게 정책"
그는 특히 "근본적으로 북한이 더 이상 핵이나 미사일을 쏘지 않도록 만드는 게 정책이 돼야 한다"면서 "미국 국무부에서도 북한의 핵실험이 임박했다고 하면서 엄정 대처를 하겠다고 큰소리를 치던데, 미국도 핵실험을 한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이어 "유엔 대북 제재도 어렵게 되지 않았느냐"며 "중국과 러시아가 상임이사국으로 협조하지 않으면 대북 제재 결의안이 통과 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그는 "그러면 결국 남는 것은 미국의 단독 제재, 그리고 기껏해야 일본, 한국 또는 유럽의 몇 나라 끌어들이는 것밖에 없는데, 유엔에 중국, 러시아까지 가담한 대북 제재에 대해서도 북한이 굴복하지 않고 계속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고도화시켜 왔는데, 미국이 지금 핵실험 후에 취할 조치도 별로 대책이 아니라고 본다"고 회의적인 전망을 내놨다.
정 전 장관은 "어제는 F-35A라고 하는 탐지가 안 되는 스텔스 전투기 20대를 동원해 서해상으로 비행을 하면서 북한을 감시 내지 위협했다"면서 "그런다고 해서 북한이 준비가 다 끝난 7차 핵실험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한미 연합훈련이라든지, 확장억제라는 명분으로 B-1B같은 정찰기가 뜨고 폭격기가 뜨고 하면 그때는 숨죽이고 가만히 있다가 그거 끝나고 난 뒤에 계속 또 미사일 쏘아대고 핵실험을 하면서 횟수를 거듭할수록 북한의 핵 능력과 미사일 능력은 고도화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숨바꼭질하듯이 한미 대 북한의 군사적 행동이 계속 주거니 받거니 하면 결과적으로 남는 것은 북한의 핵 능력의 고도화밖에 없다며 "최종적으로 북한은 고도화된 핵 능력을 미국과의 협상에서 쓸 것이고, 그럴 경우에는 대가를 크게 받아낼 수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그게 북한의 셈법이라고 덧붙였다.
정 전 장관은 "또 하나 다른 셈법은 미국이 계속 미적거리면서 확장억제만 계속 이어나가고, 또 한국 정부도 근본적인 대책은 세우지 않고 그냥 한미동맹만 강조하는 동안에 협상이 시작이 안되면 북한은 나중에 고도화 된 핵 능력과 미사일 능력을 미국과 사이가 나쁜 나라한테 팔려고 할 것"이라며 '핵확산 전략'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 미국이 놀라서 북한과 핵 억제 협상을 하려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럴 경우 핵 확산 지경에 이르러서 미국이 그걸 막기위해 동분서주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정 전 장관은 과거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에서는 모두 대북 정책의 목표가 뚜렷하게 있었는데,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이 무엇인지 분명치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언중유골이라고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의 붕괴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이면서 계속 압박을 해 나가겠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윤석열 정부도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연장선상에서 '북한의 붕괴를 내심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다"며 "그런 의심을 해도 충분할 만큼 대북 정책의 그림이 안 나와 있다"고 꼬집었다.
정 전 장관은 '현 정부가 취해야 할 첫 번째 스텝이 뭐냐'는 질문에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전제하면서 "지금 미국한테 확장억제를 부탁해서 같이 움직이는데, 이게 다 공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만큼 미국이 돈을 들여야 되고, 그러면 미국은 그것을 벌충하려고 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우크라이나 지원하는데 한국이 더 군수물자라든지, 무기를 지원하라는 요구가 나올 수도 있고, 또 중국을 압박해 들어가는 IPEF(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웍)에서 한국이 좀 더 적극적인, 말하자면 선봉장 노릇을 하라는 요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일본과 손잡고 중국을 압박해 들어가는 데 있어서 미국이 한국에게 더 적극적 역할을 요구할 때, 미국한테 대북 압박 차원에서 신세를 졌으니 미국이 중국을 압박해 들어갈 때 우리가 역할을 안 할 수가 있겠느냐"며 "그런데 그럴 경우 중국에서 돌아오는 경제적 보복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느냐"고 우려했다.
미국이 막아주겠다고 하지만 무슨 수로 막을 거냐며 "지금 한중 경제협력, 한중 무역이 우리 대외 무역의 4분의 1 수준이고, 이걸 토대로 우리가 G10까지 올라왔는데, 그것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북한을 군사적으로 압박하려다가 오히려 우리가 경제적으로 엄청난 손해를 감당할 수밖에 없는 그런 일은 그만하라"고 충고했다.
이어 "북한이 기죽지도 않고, 윤석열 대통령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버르장머리도 안 고쳐지고, 오히려 나쁜 버르장머리만 더 늘 것"이라며 근본적으로 북한이 핵이나 미사일을 쓰지 않도록 만드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