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공화국, 법치주의를 위협하다

연설이 끝나고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야당 의원들에 대해 "대통령 연설이 끝나자마자 퇴장을 안 하고 남아서 기다린 점에 대해서 여당 원내대표로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권 원내대표는 또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대해서도 "의회를 존중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역력히 드러난 하루가 아니었나 생각한다"며 "의회주의자의 의회를 존중하는 모습이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잠시 고개를 돌려 윤 대통령의 인사, 특히 대통령실을 채우고 있는 검찰 위주의 인사를 돌아보면 의회주의를 떠 받치고 있는 법치주의가 위협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자아낸다.

법치란 법의 지배로 행정이 법률에 근거해 이뤄져야 하는 국가 운영 원리를 말한다. 법률의 제정권이 대의기관인 의회의 중심 역할이라는 점에서 의회주의와 법치주의는 밀접한 상관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 인권 유린 간첩조작 사건의 책임자 이시원 전 검사, 공직기강비서관 임명 

가장 먼저 논란이 된 인사 중 한 명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을 담당했던 이시원 전 검사를 대통령 비서실 공직기강비서관으로 발탁한 사례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변호인단은 지난 6일 성명을 통해 이시원 전 검사의 공직기강비서관 임명을 철회하라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해당 사건은 무고한 시민을 간첩으로 만들기 위해 수사기관이 외국의 공문서를 위조해 법원을 기망하려 했던 헌정사상 초유의 국가 범죄행위"라며 "이 전 검사는 당시 검사를 지휘하고 책임지는 담당 검사였다"고 설명했다.

유우성씨 측은 이 인사에 대해 "참으로 뻔뻔한 검찰의 제식구 감싸기"라는 평가를 내놨다.

특히 변호인단은 "증거 조작의 진상이 밝혀진 뒤 국정원 수사관들은 실형이 선고됐지만, 정작 수사 책임자이자 수사관들을 지휘했던 이시원 전 검사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며 "검찰 과거사위원회 진상조사를 통해 '검사가 출입경 기록의 가공행위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후에도 다시 한번 불기소 처분됐다"고 덧붙였다.

한편 유우성씨는 이런 조작 사건으로 인해 간첩으로 처벌받을 뻔 했음에도 검찰의 보복 기소로 장기간 재판을 받았고, 최근에야 대법원의 공소권남용 판결이 확정되면서 오랜 재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변호인단은 밝혔다.

이 단체는 "유씨는 언제 다시 자신과 가족들의 신변에 위험이 닥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하루하루 불안에 떨며 살아가고 있다"며 "이 전 검사는 조작된 증거로 유씨와 여동생, 아버지까지 간첩으로 만들려고 했으면서도 아직까지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도 이시원 전 검사의 공직기강비서관 임명에 대해 "정말 공포 그 자체일 따름"이라며 수준 이하의 인사 정리가 협치의 시작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 성 비위자로 징계 처분, 윤재순 총무비서관 임명

또 다른 인사 논란이 불거진 윤재순 총무비서관 임명 역시 특히 민감한 성 비위 전력이라는 점에서 인사검증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윤재순 전 대검 운영지원과장은 검찰 근무 시절 2차례나 성 비위로 내부 감찰을 받고 징계성 처분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 대검 운영지원과장을 지낸 윤재순 총무비서관은 대선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파견돼 윤 당선인을 보좌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이 윤재순 전 과장의 성 비위 전력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개연성이 크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문재인 정부 마지막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낸 이병군 전 비서관은 16일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과 윤재순 총부비서관의 임명에 대해 "공안사건 조작으로 중징계를 받았다거나 성 비위로 경고를 받았다거나 등의 사안은 저희 검증 기준으로 비서관이 아니라 행정관으로도 임명되기 어려운 사례라고 판단된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전 정부의 기준에서 행정관으로 임명되기도 어려운 성 비위 전력자를 비서관으로 임명하고도 윤석열 대통령은 "문제 될 게 없다"며 경질 의사가 없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16일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윤 비서관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참모들에게 얘기했다"며 "(성추행도) 최근 일이라면 당연히 그만두게 하겠지만, 10~20년 전 일이고, 경미하다보니 경고로 끝난 문제"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 '게리티 원칙' 논란 한동훈 후보자

한동훈 법무부장관 후보자는 검사이기 전에 국민이다. 따라서 국민으로서의 기본적인 인권에 관한 사항은 법에 의한 보호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 점에서 한 후보자가 검언 유착 의혹의 수사 과정에서 자신의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끝내 제공하지 않는 일은 법의 보호 아래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검사장급 검사로서 수사 일선에서 오랬동안 수사를 담당한 검사이며, 지금은 만약 임명된다면 법무 행정을 총괄하게 되는 법무부장관 후보자다.

따라서 자신의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끝내 제공하지 않는 일이 법무부장관으로서 앞으로 법무행정을 이끌어 나갈 때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우려가 제기된다.

'직업윤리와 양심'이 충돌할 경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지에 대한 미국의 사례가 게리티 원칙으로 나타났다.

한겨레 박용현 논설위원이 지적한 이 사례에 대해 한동훈 후보자는 청문회에 나와 박용현 논설위원이 잘못 이해하고 말한 것처럼 반박한 바 있다.

박 논설위원의 설명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과거에 법 집행관들이 범죄 혐의를 받을 때 진술을 하도록 강제하고 만약 진술을 하지 않으면 파면에 처하는 법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을 헌법상 권리와 배치됐다. 이럴 경우 비위 혐의를 받으면서도 입을 다무는 법 집행관을 계속 신뢰해 그 임무를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 연방 대법원이 고안해 낸 해결책이 바로 게리티 원칙이다.

즉 공직자가 직무와 관련된 비위 혐의로 조사받을 때 강요된 진술은 형사처벌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보장을 해주는 대신 진술을 계속 거부하거나 진술 내용 상 비위가 드러날 경우에는 파면 등 행정적 징계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한동훈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그건 그 보도가 잘못 인용한 거예요. 한겨레의 보도가 '게러티 룰'을 잘못 인용한 것이거든요. 게러티 룰이, 아니 그건 이미 있는 룰이고요, 아니 미국에서 그러면 예를 들어서 징계로 겁줘가지고, 증거를(진술을) 이끌어내거나, 예를 들어서 진술 안 한다고 공직자를 자른다든가 그런 룰이 있을 리가 있겠습니까"라며 박용현 논설위원의 인용이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박용현 논설위원은 게리티 원칙을 잘못 이해한 것은 한 후보자라고 재반박했다.

박 위원은 "게리티 원칙을 알리고 공직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미국 인터넷 사이트를 보면 여러 가지 상황별로 게리티 원칙에 따른 권리와 의무가 어떤 식으로 적용되는지 예시하고 있다"며 그 사례 중 하나를 소개했다.

한 공직자가 마약 판매 혐의로 상부의 조사를 받는다. 그는 조사에 협조하라는 명령과 함께 진술하지 않으면 해고될 것이라는 통보도 받는다.

그럼에도 그는 묵비권을 주장하며 진술을 거부한다.

그는 결국 명령 불복종으로 파면된다. 이는 합법적이다. 그는 진술을 강요받은 순간부터 이후 진술을 해도 그것이 형사처벌의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는 특권을 누리게 되는 대신, 진술을 계속 거부할 권리는 사라진다.

박 논설위원은 "한 후보자가 말한 '진술을 안 한다고 자르는 룰', 그것이 실제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박 위원은 이어 "한 후보자가 국내에선 낯선 게리티 원칙을 자세히 몰랐을 수는 있다. 그러나 모르는 사안에 대해 공적인 석상에서 왜곡된 발언을 해 국민을 호도한 행위는 잘못"이라며 "법을 다루는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자질 부족"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미국에 이런 룰이 존재하는 이유, 즉 법을 집행하는 공직자가 진실을 감춰서는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는 점에 비춰볼 때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감춘 행위 역시 (공직자의 태도로서) 부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 위원은 "우리나라에는 아직 이런 룰이 없기 때문에 법적으로 징계 대상이 되지는 않겠지만 공직자 윤리에 비춰 고위 공직자가 되는 데는 결격 사유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 논설위원은 이밖에도 한 후보자는 법원의 판결을 무시하는 태도도 보였다며 "한 후보자가 검언유착 의혹으로 감찰과 수사를 받을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대통령이 측근(한동훈 검사)을 보호하기 위해 부당 개입했다가 징계를 받았고 이에 대해 법원은 징계가 정당하다고 판결한 바 있다"고 윤 대통령의 검찰총장 시절 징계 사건을 설명했다.

그런데 한 후보자는 청문회 과정에서 이 징계에 대해 질문하는 과정에서 "징계 자체가 대단히 부당한 것이라는 판단은 이미 '사회적으로 판단 내리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박 논설위원은 "엄연히 법원의 판결이 난 사안을 '사회적 판단'이라는 추상적 근거로 부정한 것"이라며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서 대단히 부적절한 인식"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법원 판결에 대해서도 비판할 수는 있지만 법치를 책임지는 장관이 이렇게 주관적인 잣대로 법원 판결을 재단한다면 법치는 뿌리부터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는 나타냈다.

또 한 후보자는 민형배 무소속 의원이 "유우성 대북 송금 사건 아시죠"라고 묻는 질문에 "그런 사건이 있었던 것 정도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민 의원이 "서면 답변에서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고 해놓고, 그런 사건이 있었던 것 정도로 알고 있다고 답변하면 되느냐"고 핀잔을 주자, 한 후보자는 "제가 한 사건이 아니니까, 제가 들어서 알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라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민 의원이 "아니 이런 중요한 사건을 그렇게 표현하면 됩니까?"라고 추궁하는 장면이 청문회에서 연출됐다.

이에 대해서도 박용현 논설위원은 "근래 검찰이 저지른 가장 큰 잘못 중에 하나인 간첩 조작 사건을 마치 남의 일처럼 말한다"고 비판하면서 "사건 당시 그 자신도 검찰의 주요 일원이었고, 장차 검찰 사무를 관장하는 법무부 장관이 되겠다는 사람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 후보자는 자신이 직접 수사한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했다고 해명했는데, 궤변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 후보자가 청문회 과정에서 조국 전 장관 딸의 일기장을 압수한 사실에 대해 '일기장이 아닌 일정표'라고 한 발언에 대해서도 "교묘한 말장난"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박 논설위원은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대통령실 인사를 두고 '검찰 천하'라고 부를 만하다며 "인사기획관에 복두규 전 대검찰청 사무국장, 인사비서관에 이원모 전 검사, 공직기강비서관에 이시원 전 수원지검 부장검사, 법률비서관에 주진우 전 서울동부지검 부장검사, 총무비서관에 윤재순 전 대검 운영지원과장, 부속실장에 강의구 전 검찰총장 비서관"을 임명해 마치 검찰청을 옮겨다 놓은 듯 하다고 꼬집었다.

박 위원은 이런 상황에서 한동훈 후보자의 법무부 장관 임명에 대한 우려는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다며 "한 후보자는 고발 사주 사건 이후 축소된 대검찰청의 정보 기능을 다시 강화하겠다는 뜻도 밝혔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발 사주는 대검 정보 부서가 특정 정당과 결탁해 선거에 개입함으로써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뿌리째 흔들어버린 사건"이라며 "이런 행위가 벌어진 정보 부서를 다시 강화하겠다는 것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최소한의 성찰도 없는 태도"라고 비판했다.

법치주의를 앞세운 검찰 공화국의 우려가 현실화 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한동훈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임명은 이런 논란에 화룡점정이 될 공산이 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