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회사 주가하락, 의결권 박탈 문제
신주인수권, 주식매수청구권으로 주주가치 제고
“신주인수권 기준 모호해”...“동시상장 금지 안돼”
금융위, 기업지배구조보고서 가이드라인 개정
◆…물적분할 개요. 금융위원회 제공
LG화학의 LG에너지솔루션 ‘쪼개기 상장’ 이후 물적분할 규제를 둘러싼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분할 자회사 상장을 제한하고 모회사 주주 보호책을 제도화하겠다고 공약해 투자자들의 기대를 모았다. 일각에서는 직접적인 규제가 아닌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제언도 나온다.
물적분할은 존속법인(모회사)이 신설법인(자회사) 주식을 100% 소유하는 기업분할 방식으로, 핵심사업 부문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고 자금조달을 원활히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시가총액 70조원의 LG화학에서 분사한 LG에너지솔루션은 약 100조원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자회사 동시상장에 모회사 주가 하락, 주주가치 훼손
반면 물적분할 후 LG화학의 시총은 30조원대로 쪼그라들었다. 모회사 주주 입장에서 보면 물적분할로 주가가 하락하고 기업가치가 훼손돼 ‘팥 없는 찐빵’이 된 셈이다. 김수연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자회사의 규모가 클수록 모회사 주가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다”며 “모회사는 인큐베이팅의 역할을 담당하고 신사업은 빠져나간다는 면에서 주가에 부담을 준다”고 봤다.
자회사 상장에 모회사 주주의 의사가 반영되기 어려운 점도 지적됐다. 이승웅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모회사의 주주에게는 자회사에 대한 의결권이 사실상 사라져 상장 등 경영상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없게 된다”며 “모자회사가 동시상장하면 디스카운트(할인)가 불가피해 주주가치 훼손으로 이어진다”고 봤다.
◆…자본시장연구원 제공
쪼개기 상장은 모회사와 자회사의 기업가치를 모두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10~2021년 신규상장기업 788개 중 모회사가 있는 자회사 157개를 분석한 결과 동시상장 모회사의 기업가치 비율은 자회사의 57%에 그쳤다. 동시상장 자회사의 기업가치도 일반 신규상장 기업의 90% 이하 수준이었다.
남길남 자본연 선임연구위원은 “모자기업의 동시상장은 신규상장시장과 기존 상장시장의 질을 모두 떨어뜨려 기업가치 측면에서 부정적 효과가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물적분할된 자회사가 기업공개(IPO)를 ‘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다. 안상희 한국ESG연구소 책임투자센터장은 “자회사의 기업공개는 모회사 주주의 지분가치 희석의 우려가 있다”며 “자회사가 100% 비상장법인으로 남아있더라도 모회사의 지배권(임원선임권, 정관변경권 등)이 제대로 반영되기 어렵다는 점도 주주권익에 부정적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모회사 주주에 신주인수권, 주식매수청구권 부여해야”
모회사 소액주주의 권익 보호를 위한 방안으로는 ▲자회사 상장 시 신주인수권 부여 ▲공모주 우선 배정 ▲주식매수청구권 부여 등이 거론된다.
윤석열 당선인은 대선공약을 통해 자회사 공모주 청약 시 모회사 주주에게 일정 비율을 공모가로 청약하는 방식으로 신주인수권을 부여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정비하겠다고 제시했다.
신주인수권을 부여하는 방안은 상법을 개정해야 하며, 공모주 우선 배정은 자본시장법과 금융투자협회 규정(증권인수업무 규정) 개정이 필요하다.
물적분할에 반대하는 모회사 주주에게는 보유 주식을 적정가격으로 회사에 되팔 수 있는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할 수 있다. 이 방안은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개정하면 된다.
남길남 연구위원은 “주식매수청구권은 물적분할 시 기업가치 하락을 예상한 반대주주에 대한 이해조정 방안이 될 수 있다”며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주식에 참여할 수 있는 주식매수청구권도 하나의 방안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천창민 서울과기대 경영학과 교수 역시 “물적분할 문제는 ‘소수 주주에 대한 불공정’이 핵심”이라며 “모회사 주주에게 신주인수권과 주식매수청구권 중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상희 센터장은 주식매수청구권과 함께 자기주식 소각을 통한 주주환원을 제언했다. 그는 “주식매수청구권은 주주권익 훼손 우려를 희석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요건”이라며 “또 일정 수준의 자기주식을 소각해 발행주식 수를 감소시키는 것이 기업의 장기적인 밸류에이션을 개선할 것”이라고 봤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러한 요구들을 반영해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자본시장법 일부개정안 2건과 상법 일부개정안 1건을 대표 발의했다. 물적분할된 자회사가 상장할 경우 모회사 주주에게 50% 이상을 우선 배정하고, 반대주주에게는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이 담겼다.
상법 개정안에서는 ‘이사의 충실 의무’에 명시된 ‘회사를 위해’ 문구를 ‘주주의 비례적 이익과 회사를 위해’로 수정했다. 이사가 회사뿐만 아니라 소액주주의 이익까지 고려해 의사결정을 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용우 의원은 “올 상반기 물적분할을 예고한 코스닥 기업이 증가해 소액주주 보호를 위한 제도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라며 “소액주주 보호가 윤석열 당선인의 주요 공약이기도 한 만큼 해당 법안에 대해 적극적인 논의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물적분할 금지는 안돼...기업 지배구조 개편해야”
다만 신주인수권, 주식매수청구권 등 소액주주 보호 방안에 한계가 존재하며 근본적으로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승웅 연구원은 “신주인수권을 부여하는 것은 주주가치 훼손을 일부 축소할 뿐 궁극적인 해결방안은 아니다”라며 “모회사 주주가 증자에 참여하기 위해 추가적인 자금이 필요하고 기존 지분율과 비교했을 때 자회사에 대한 지분율이 감소하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신주인수권 부여에 있어서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이재혁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2본부장은 “어느 시점에, 어느 정도를 보유한 주주에게 신주인수권을 부여해야 할지가 모호하다”라며 “또 모회사 주주에게 50%를 우선배정하는 경우 공모물량이 30% 수준에 불과해 신규상장주식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잠재투자자 피해로 전이될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이 본부장은 “주식매수청구권이 반대주주에 대한 이해조정장치로서 기능하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는지는 의문”이라며 “상장한 자회사의 가치를 모회사 주주가 직접 향유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기업의 사적자치 보장, 자본시장 경쟁력 회복, 기업 지속가능성 제고를 골자로 한 ‘새 정부에 바라는 규제개혁과제’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제출했다. 상장협은 물적분할에 대한 지나친 규제를 지양하고 합리적 대안을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
금융당국은 물적분할 후 상장을 금지하거나 직접 규제하는 방안보다는 자회사 상장심사와 지배구조 공시를 질적으로 향상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송영훈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 상무는 “모자회사 동시상장 자체를 금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획일적으로 규제하면 우량 자회사들이 해외로 이탈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며 “자회사 상장 시 이해상충 문제를 해소하고 경영 독립성을 갖췄는지를 면밀히 심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원회 제공
이수영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과장은 “지난달 기업지배구조보고서 가이드라인 개정안을 통해 물적분할 등 기업 소유구조를 변경할 경우 모회사 주주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합의안을 받도록 했다”고 밝혔다.
올해부터 자산규모 1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는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공시해야 한다. 금융위는 지난달 가이드라인을 개정해 물적분할 시 소액주주 의견수렴, 반대주주 권리보호 등 주주보호 방안을 마련하도록 했다.
이밖에도 금융위는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 반대주주에 대한 권리보호 장치 마련, 상장심사 시 기업의 주주와의 소통 노력에 대한 내실있는 심사 등 다양한 정책방안을 찾을 계획이다.
기업지배구조보고서 가이드라인 개정안은 올해 보고서 제출 시한(5월 31일)부터 바로 적용된다. 거래소와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하반기 중에 공시현황을 점검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