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기준금리 연 1.50%로 인상 결정…‘국내외 위험’ 선제 대응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14일 기준금리를 연 1.50%로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병목 현상의 가중, 높아진 인플레이션 위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금리인상 및 양적긴축 가속화 시사 등 국내외적인 위험에 대한 선제적 대응으로 풀이된다.

한은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은 본부에서 금통위 본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0.25%p 인상한 연 1.50%로 결정했다. 이번 금통위 본회의는 1998년 한은 총재가 금통위 의장을 겸임한 이후 총재 공석으로 진행된 첫 회의였다. 주상영 금통위원이 의장직무대행으로 회의를 주재했다.

대내외적인 경제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진 상황에서 총재 공석으로 진행된 통화정책방향 결정 회의였던 만큼 한은이 ‘통화정책 정상화’ 기조를 이어갈지에 대해 시장의 이목이 집중돼 왔다. 지난 2월 24일 열렸던 통화정책방향 금통위 본회의에서 기준금리 동결이 결정되긴 했지만 지난달 공개된 의사록에 의하면 금통위원 6명 중 4명은 추가금리 인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승헌 한은 총재 직무대행도 지난 4일 열린 집행간부회의에서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와 국제 원자재가격 급등으로 물가의 상방 압력과 성장의 하방 압력이 증대된 상황이다. 주요국 중앙은행의 빠른 정책 기조 전환으로 금융시장의 변동성도 확대되고 있다”며 “의장직무대행 등 금융통화위원들을 적극 보좌해 이번 금통위의 통화정책 결정이 최선의 판단이 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금통위의 이번 결정은 미 연준이 한 번에 기준금리를 0.5%p 올리는 ‘빅스텝’을 밟고 양적긴축의 속도를 높일 것으로 예상됨에 따른 선제적 대응으로 풀이된다.

미 연준은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정책금리를 0.25%p 인상했고 향후 통화정책 정상화 속도 및 B/S 축소(양적긴축) 등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연준이 이달 6일(현지시간) 공개한 FOMC 의사록에 의하면 다수의 참석자들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강해진다면 향후 회의에서 한번 이상의 0.5%p 기준금리 인상이 적절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참석자 다수는 미국의 양적긴축 월 상한선이 미 국채 600억달러, 주택저당증권(MBS) 350억달러가 적절하다는데 대체로 동의했다. 이에 미국의 양적긴축은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이 한 번 이상의 0.5%p 기준금리 인상하는 ‘빅스텝’을 밟고 양적긴축에 속도를 내려고 하는 것은 미국 내 인플레이션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동월대비 8.5% 급등하며 40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금통위의 기준금리 인상결정에는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로 인해 글로벌 공급병목 현상이 가중되면서 국제유가, 원자재가격 상승이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은은 ‘물가 상황 점검회의’를 개최해 최근의 물가 상황과 향후 물가 흐름을 점검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한은은 앞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원유, 곡물 등 원자재가격 상승 등의 영향으로 당분간 4%대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된다며 올해 연간으로는 지난 2월 전망치(3.1%)를 크게 상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한양대학교 겸임교수)은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속도도 중요하지만 금통위는 우리나라의 경우 상대적으로 물가상승 압력이 낮고 경기하방 압력이 높다고 판단한 듯하다”면서 “우리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완만하고, 온건한 기준금리 인상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또한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세가 꺾이고 방역체계가 완화되면서 국내 경제의 회복세가 이어지고 있고 수출 또한 석유제품, 반도체 등 주요 품목이 호조를 보이며 견조한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어 우리 경제가 기준금리 인상을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아울러 한은의 금융불균형 해소 기조를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한 후 가계부채의 증가세는 크게 둔화됐고 부동산 시장 역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금융불균형 위험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고 한은은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 앞서 “가계부채 문제는 부동산 문제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고 향후 성장률 둔화 요인이 될 수 있어 가계부채 증가속도를 안정화하는 것이 시급한 정책과제”라며 “한은의 금리 시그널을 통해 경제주체들이 스스로 가계 부채관리에 나서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4월 기준금리 인상이 대내외적인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매우 적절한 대응이라고 의견을 모으고 있다. 또한 5월 열리는 통화정책방향 금통위 회의에서도 기준금리가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며 조심스럽게 예측하고 있다.

김 실장은 “미국과 유럽의 기준금리 인상이 본격화되었기 때문에 외국인 자금유출 가능성이 존재한다. 또 국내에서 물가상승 압력이 상당부분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주요국들의 통화정책 기조전환 속도에 발맞춰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기준금리 인상여부에 대해서는 시장의 기대가 팽팽하게 맞섰다. 금융투자협회가 지난 1일부터 6일까지 채권시장 전문가를 대상으로 기준금리 인상 전망을 조사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0.0%는 기준금리 인상을, 50.0%는 기준금리 동결을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