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人生에서 모래시계 검사가 되기까지

'군인보다 검사를 해야겠다' 육사 합격했지만 법학의 길로

"막노동도 할 수 없어 죽기 살기로 공부했다" 5수 끝에 붙잡은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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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후보는 1954년 경상남도 창녕군 남지읍 학계리에서 2남 3녀 중 넷째이자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판표(判杓)'였으나 청주지검 초임검사 때 검사에게 '판'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윤영오 당시 청주지방법원장이 개명을 권유해 개명했다.

7살 때 집안이 망해 창녕 남지 고향을 떠나 대구 신천동과 신암동 등지로 자주 이사를 다녔다. 2009년 출간된 에세이집 '변방'에서 "신천동 산동네에 단칸 월세방을 얻어 다섯 식구가 살게 되었을 때 우리는 구호물자인 강냉이 죽에 의존하며 살았다"고 회고할 정도로 밥을 굶은 날이 여러 날이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무학에다 어머니는 문맹이었다. 부모님이 양은그릇 장사, 누룩 장사 등을 하고, 팔공산 공산면 주변에서 나무를 해와 팔기도 했지만 장사 수완이 없어 늘 밑지는 장사를 했다. 아들 없던 집의 데릴사위로 어머니와 결혼한 후 물려받았던 고향 농토를 매년 한 마지기씩 팔아야 했다.

대구에서 보낸 2년 동안 고향 전답은 다 팔아 없어졌고, 9살이던 그해 겨울 눈보라 속에서 다시 손수레에 짐을 싣고 고향 창녕으로 떠났다. 한 여관방에서 모자란 밥을 나눠먹던 누이 3명이 배가 고파 여관방에 매달린 메주를 뜯어먹다 밤새 설사를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창녕에서 양은그릇 장사를 계속 이어가던 부모님은 외상값도 받지 못하고 장사로는 살길이 없자, 6개월 만에 합천 산골로 여동생만 데리고 농사를 짓기 위해 이사를 갔다. 학교를 다니던 작은누나와 자신만 창녕읍에 남았고 가족은 흩어졌다. 합천에서 양식이 오지 않은 날은 꼬박 3일을 굶기도 했다. 이 모습을 본 어머니는 "가자,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며 합천 산골로 데려갔다.
  그는 이러한 유년 시절과 청장년 시절의 변방 인생이 아직도 자기 삶의 존재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회고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지만 그는 하루 4~5시간만 자고 공부해 영남중고를 다니며 6년을 장학생으로 지냈다. 영남중에서 1등은 항상 그의 차지였지만, 도내 선망의 대상이었던 경북고를 마다하고 장학금을 지급해 주는 영남고로 진학했다.

영남고도 좋은 학교였다. 하지만 경북의 일류 명문고인 경북고에 진학하지 못한 것이 그의 출세에 핸디캡이 될 줄은 몰랐다. 당시 명문고 출신이 즐비한 검찰 조직 내에서 동문끼리 뭉치는 문화 때문에 가난한 흙수저 출신의 비주류였던 그는 검찰 내에서 그야말로 아웃사이더였다고 한다. 훗날 그는 검사 시절을 회고하며 "나는 별다른 배경도 없는 밑바닥 검사였다"라고 말했다.

◆ '군인보다 검사를 해야겠다' 육사 합격했지만 법학의 길로

중학교 때 도시락이 없어 수돗가에서 물로 배를 채우던 소년이 검사의 길로 나아가게 된 데에는 부친의 영향이 컸다. 고등학교 때 이과생이었던 그에게 아버지는 학비나 생활비가 들지 않는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라 권유한다. "육사는 학사 자격도 주고 육군 소위도 될 수 있으니 일거양득 아니냐." 아무 이의 없이 육사시험을 보고 특차시험에 합격했다. 사실 그는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하길 원했다. 경북대가 국립대라 학비가 저렴했기 때문이다. 가난의 굴레는 계속 그를 짓누르며 의과대학 진학의 기회를 앗아갔다.

특차 합격 후 한 달 뒤 대입 예비고사를 치르고 12월 중순경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아버지가 남이 훔친 비료를 매수해 장물을 취득했다고 경찰에 끌려가는 일이 발생한다. 사실 농협조합장이 비료를 빼돌린 뒤 장부를 조작, 경찰과 짜고 아버지에게 덮어씌우려 했던 것이다. 이 일로 그는 바로 진로를 법대로 바꿨다. '군인보다 검사를 해야겠다.'
  그가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 진학하겠다고 하자 선생님은 "우리 학교에서 고대 법대를 보낸 적이 없는데, 1년에 한두 명 붙는 육사 붙었으면 그냥 거기 가지 그러냐. 내가 너 합격하면 장을 지진다"라며 만류했다. 설득 끝에 입학원서를 받아내고 뒤늦게 문과공부를 시작한 후 결국 1972년 고려대학교 법과대학(행정학과)에 응시해 합격한다.

◆ "막노동도 할 수 없어 죽기 살기로 공부했다" 5수 끝에 붙잡은 합격 

빚낸 입학금 5만 6천 원과 한 달 하숙비 1만4000원을 들고 상경한 그는 가정교사 등을 하면서 학비를 벌었다. 하지만 먹고살기에 급급한 생활에 치어 1년을 휴학한다. '내가 공부하러 서울 왔나, 먹고살러 서울 왔나'라며 한탄했다. 재입학한 이후 고향집이 불에 타 소실되는 일까지 발생했다. 부친이 현대조선소의 경비원 일자리를 얻게 되면서 가족이 모두 울산으로 이사 갔다.

1974년 겨울방학이던 어느 밤, 부친이 근무하는 현대조선소로 찾아갔을 때를 그는 이렇게 떠올렸다. "아버님은 현대중공업에서 밤에 철판 쪼가리를 잃어버릴까 횃불을 켜놓고 밤새 경비를 했습니다. 그 어두운 바닷가에서 노인네가 모닥불에 손을 쬐면서 밤새도록 앉아 있는 것을 보고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당시 현대조선소에는 담이 없어 철근, 쇳조각 등 자재를 훔치는 도둑이 많아 경비원이 일당 800원에 자재 지키는 일을 했던 것이다. 영하 15도 칼바람 부는 백사장에 선 아버지. 막소주로 버티던 고된 노동 끝에 부친은 10개월 만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돌아가시면서 남은 공부를 마저 하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긴 채.

재학 중 박정희 유신정권 반대 학생운동을 하며 총학생회 지하유인물을 작성하다가 글씨체로 추적당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8시간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그때 부친의 유언에 따라 대학은 어떻게든 졸업해야 한다는 생각에 더 이상 시국 활동은 하지 못했다. 성북경찰서에서 풀려나면서 고시 공부를 하러 대구 근교 암자에 들어간다.

사법시험 도전은 번번이 실패해 수차례 좌절의 쓴 맛을 보았다. 법대 행정학과 72학번인 그는 6년이나 병역도 미루고 졸업도 미뤄가면서 고시공부를 이어갔다. 결혼한 이후에도 사법시험에는 낙방을 거듭했고, 결국 군복무를 시작했다. 당시 몸무게가 48kg으로 워낙 말라 방위병으로 근무하게 됐는데, 사법시험에 붙지 못한 그는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전북 줄포로 바꿔 처가가 있는 전라북도 부안군의 해안초소에서 복무했다.
   그렇게 방위병으로 군복무를 마친 후 가장으로서 생계를 위해 고시를 포기하고 연합철강에 취직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사법시험에 대한 미련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오랜 낙방으로 기대하지 않고 당연 불합격인 줄 알았던 마지막 사법시험. 취직자리를 알아보던 중 시험 합격 발표일에 혹시나 확인한 결과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30세의 나이로 합격하게 된다.

지난 9월 28일 방송된 예능프로그램 '와이프 카드 쓰는 남자'에서 홍 후보는 과거 사법시험에서 5번 낙방하고 마지막 합격할 당시 일화를 소개했다. "마지막 사법시험을 앞두고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한라자원'에 시험을 봤다. 월급 1.5배를 준다고 하더라. 사법시험에 떨어지면 파푸아뉴기니에 가야 했다. 9월 2일 발표돼 합격하는 바람에 안 갔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제 몸무게가 48㎏이어서 막노동도 할 수 없어 죽기 살기로 공부했다"라는 그의 말마따나 죽기 살기로 각오하고 이뤄낸 값진 성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