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裸木)의 계절에 생각해보는 생애설계 포트폴리오

이제 초겨울 비바람에 나뭇잎이 거의 모두 떨어졌다. 나무는 벌거벗고 온몸으로 버티고 있는 나목(裸木)의 계절이 왔다. 우리 인생도 언젠가는 나목(裸木)의 모습을 하고 있을 때가 올 것이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갈 걱정, 다가올 추위에 대한 걱정 등등이 우리들의 마음을 더 가라앉게 만드는 시기이기도 하다. 얼마전 모 노인복지관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표정은 대체로 쓸쓸하고 무관심한 모습이었다.
 
언젠가 1박2일 캠프를 갔을 때의 일이다. 캠프 참석하신 분들께 저녁에 색종이를 1장씩 나눠드리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버려야 할 것들을 몇 가지씩 적어보시라고 하였다. 다 기록한 다음에는 색종이를 구겨서 내팽개치도록 하였다.

다음날 얘기를 나누는 중에 한 분이 나는 어제 저녁에 나를 버렸다고 하시기에 그게 무슨 뜻인가 물으니 내 이름 석자를 써서 버렸으니 이제부터는 나는 없는 것이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살아가겠다는 뜻이라고 담담히 말씀하셨다.그 분의 표정과 어투가 너무나 진지하였다.

덧붙여 이제 나이 들어가니 나를 찾는 사람도 나를 알아주는 사람도 하나 없고 나설 때도 없다. 그러니 나를 버리고 모든 것을 다 내려 놓고 사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냐고 동의를 구하신다.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그 분의 나를 버렸다는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 것 같다.

고독은 단순히 혼자 있는 상황이 아니고 혼자라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곤경에 처해 힘들어 하는데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는 고약한 어떤 느낌이다. 노년기 삶에서 고독은 어떤 형태로든 달라 붙고 외로움과 쓸쓸함속에 달라 붙는 고독을 친구삼아 함께 살아 나가야지 별 뾰족한 수가 없는 것 같다.나름대로 고독앞에 서서 대처해 나가는 방법을 슬기롭게 익혀나가야 한다. 양파 껍질을 벗기듯 하나씩 버리고 나면 결국 남는 것은 나 혼자이다.

노년에 고독을 받아 들이는 일이 지혜로 가는 길이라고 하였던가? 그렇다면 어떻게 고독을 받아들이는 길이 현명할까? 모두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누구나 싫든 좋든 마주치게 되는 고독이라는 문제를 도외시할 수는 없으며 노년기의 고독을 피해 달아나려고 해도 결국은 질병이나 죽음이 가져올 고독에서 빠져 나올 수는 없지 않겠는가?

안셀름 그륀은 노년의 고독에 잘 대처하기 위해서는 평생 준비해야 한다고 하였다.오늘날 고독을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것은 늘 고독을 피해 도망치기 때문이다.

고독을 받아 들이는 방법을 나름대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자신의 외부에서 찾을 것인가? 자신의 내부에서 찾을 것인가를 잘 탐색해 보아야 한다.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면서 고독을 받아 들이려면 자신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자신이 쉴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나를 받아들이는 공간이 무엇일까? 아무도 내안 깊숙이 들어올 수는 없을 것이기에 오직 나만은 그 안으로 들어갈 곳이 있을 것이다.

외부에 의지한다면 자연속에서 자연과 하나됨을 느끼고 종교적인 신념에 따라 절대자에게 의지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내면과 외면 어느 한쪽만으로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이 둘을 적절히 활용하여 고독을 이겨내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내면과 외부 무엇을 더 중요시하고 비중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온전히 노년기 삶을 살아가는 각자의 몫이요 선택이다. 자신의 삶의 궤적은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으며 그 삶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이므로 해법도 자신에게 맞는 것을 자신이 선택해야 한다.결국 공은 자신에게로 넘어온다.

나를 버림으로써 편안해진다면 나를 버리는 것도 고독을 이겨내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되는데 누구든 다 똑같이 할 수는 없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고독을 이겨내는 맞춤 처방을 잘 찾아내야 한다. 삶을 잘 살려면 우리의 생애설계 포트폴리오 한켠에 고독을 다루는 법도 담아볼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