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정경심 재판 첫 출석…검찰 질문 모두 거부
조국 "피고인이자 친족" 형소법 근거 거부권 행사
변호인 "가족 면박주기 의도"…절차 이의 제기
과거 국정농단 사건과 대조…증언거부에 재판 종료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지만, 검찰의 질문에 모두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 (사진=연합뉴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아내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왔지만, 검찰의 질문에 모두 증언거부권을 행사했다. 검찰은 조 전 장관이 일관되게 증언을 거부하고 있음에도 300개가 넘는 질문을 쏟아내며 준비해온 신문사항을 전부 진행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2부(부장판사 임정엽·권성수·김선희)는 3일 정 교수의 27차 속행 공판을 열고 조 전 장관을 검찰 측 증인으로 불러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이날 조 전 장관은 처음으로 정 교수의 재판에 나와 부부가 함께 나란히 법정에 섰다. 조 전 장관은 신문에 앞서 증인지원절차를 신청해 별도의 통로를 이용해 출석했다.
이날 조 전 장관은 "친족이자 피고인에 해당한다"며 형사소송법을 근거로 검찰의 신문사항에 한 차례도 답변하지 않았다. 신문에 앞서 조 전 장관은 "피고인은 제 배우자이며, 자식의 이름도 공소장에 올라 있다. 이 법정은 아니지만 저는 배우자의 공범 등으로 기소돼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며 증언거부권 소명 사유를 읊었다.
조 전 장관은 "친족인의 증인이자 피고인인 증인이므로 검찰신문에 대해 형사소송법 148조가 부여한 권리를 행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헌법 제12조 2항은 '모든 국민은,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며 진술거부권을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헌법의 취지에 따라 형사소송법 148조(근친자의 형사책임과 증언거부)에도 '누구든지 친족 또는 친족 관계가 있었던 사람은 형사소추 또는 공소제기를 당하거나 유죄판결을 받을 사실이 발로될 염려가 있는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조국 '증언거부권' 행사 두고 검찰-변호인 신경전
이에 증언거부권 행사를 두고 검찰과 변호인 간 신경전이 펼쳐졌다. 검찰은 적법한 절차에 의해 취득한 증거의 상당 부분은 조 전 장관을 통해서만 확인이 가능하다"면서 "기억은 실체를 발견하는 열쇠 중 하나이지만, 수사 과정에서 조 전 장관이 진술거부권을 행사해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확인할 수 없었다"며 조 전 장관에게 진술할 것을 요구했다. 검찰은 또 "최근 증인은 외부에서 SNS를 통해 객관적 사실을 왜곡하고, 공소유지 중인 검사를 비난하는 글을 게시한 바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반면 변호인은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권리 행사에 대한 정당성을 설명할 필요가 있는지부터 의문"이라며 "법정에서 밝히겠다는 것은 증인의 사건과 관련된 부분이지, 자신의 처에 대한 범행 문제에 대해 말하겠다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검찰이 조 전 장관의 재판에서 유죄 가능성이 제기될 수 있는 질문을 할 소지가 크고, 질문 자체가 조 전 장관 가족에 대해 면박을 주려는 의도가 명백해 보인다는 것이다.
결국 조 전 장관은 "형사소송법 148조에 따르겠다"면서 검찰의 모든 질문에 일체 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준비한 신문사항을 계속 진행했다. 이날 검찰이 조 전 장관에게 물어본 질문은 생략한 질문을 제외하면 약 300개에 이른다.
검찰은 '사모펀드 투자에 대해 5촌 조카인 조범동씨에게 직접 들은 것이 없나', '정 교수가 펀드를 해약하며 조씨와 거래를 하려고 한 것을 알고 있나' 등 사모펀드 의혹과 관련한 질문을 쏟아냈다. 또 '김미경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이 (조 전 장관 딸의) 표창장 사진을 (청문회 당시) 박지원 의원에게 보냈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진술했는데 증인이 허락한 것인가', '증인은 표창장 원본을 분실한 적 있다고 주장했는데 사실인가' 등 자녀 입시비리 의혹과 관련해서도 준비한 질문을 이어갔다.
검찰의 질문이 계속되자 조 전 장관은 중간에 짧은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검찰이 "아버지가 딸을 몰라볼 수 없는데,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세미나에서) 딸을 봤다고 직접 언급하지 않은 이유가 있나"라고 묻자 조 전 장관은 "하아"라는 한숨과 함께 "148조에 따르겠다"고 답변했다. 재판부와 변호인은 검찰의 주신문이 끝나고 조 전 장관에게 별도로 질문하지 않았다
변호인 "증언 거부에도 검찰신문 계속 진행은 이례적"
◆…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재판에서 검찰은 증인으로 나온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게 약 300개의 질문을 했지만, 조 전 장관은 전부 답변하지 않았다. (사진=연합뉴스)
이날 정 교수 재판과 같이 사건 관계인에 해당하는 증인이 계속 증언을 거부하는데도 검찰이 준비한 신문사항을 모두 진행하는 것은 이례적인 케이스에 해당한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지난 2017년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삼성 임원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에서 증언거부권을 행사했고, 국정농단 사태를 촉발한 최서원씨(개명 전 최순실)도 형소법 조항을 들며 진술을 거부한 바 있다. 2017년 6월 박 전 대통령의 뇌물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삼성 고위 임원들은 모두 진술을 거부했고, 이에 당시 재판부는 증인들을 모두 돌려보내고 증인 측에 별도의 소명서를 요청했다.
최서원씨도 2017년 7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관련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왔지만 "본인과 본인의 딸(정유라씨)이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 진술이 어렵다"며 특검의 모든 질문에 증언을 거부했다. 특검은 포괄적 증언거부권을 인정하면서도 개별 질문에 대해선 사유를 소명해야 거부권이 인정된다며 40여 분간 신문을 진행했지만, 최씨의 증언거부권 행사로 재판이 중간에 중단됐다.
이와 관련해 정 교수 측 변호인은 "증인이 증언거부권을 계속 행사하는데도 검찰이 질문을 이어가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지적했다. 변호인은 "경험에 비춰볼 때 포괄적 증언거부권 지위에 있는 친족에 대해 증인을 채택하는 경우가 드물다"며 "만약 증인으로 채택되더라도 포괄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하면 재판장이 '검찰에게 질문을 굳이 할 필요 있느냐'고 생략하거나 약식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 측 변호인은 오후 재판에서 증인신문 절차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변호인은 "증인의 증언거부 사유 소명에 대해 재판부의 사전검열은 이례적이고 적절치 않다"며 "증인의 전면적인 증언거부에도 검찰이 질문을 하나씩 읽는 것은 취지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또 "증언거부는 검찰 유도심문의 예외적인 허용 사례와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잠시 휴정한 뒤 검찰과 변호인 2명을 따로 불러 증인신문 절차에 대해 논의했지만, 조 전 장관에 대한 전면적인 진술거부권은 인정하지 않았다.
정 교수의 재판은 다음달 결심 공판을 끝으로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재판부는 남은 증인 10명에 대한 신문을 오는 24일까지 마친 뒤 결심 절차를 진행할 방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