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이재용 등 삼성 전·현직 임원 11명 불구속 기소
이재용, '삼성물산 합병·삼바 회계부정' 혐의 적용
수사팀 "사건처리방향 전면 재검토 후 내린 결론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이복현 부장검사)는 1일 오후 삼성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등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사진=연합뉴스)
검찰이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등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지난 2018년 12월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의혹에 대한 고발로 시작된 삼성그룹 수사가 1년9개월여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검사 이복현)는 1일 오후 2시 '삼성그룹 불법합병 및 회계부정' 사건의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이 부회장과 삼성그룹 핵심 관련자 11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승계작업의 일환으로 실행된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흡수합병 과정에서 삼성그룹의 조직적인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업무상배임 등 각종 불법행위를 확인했다"며 이 부회장을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 및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했다. 최지성 옛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김종중 전 전략팀장 등 6명도 같은 혐의로 기소하고, 장충기 전 차장(사장)은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 혐의로 각각 기소했다.
이 부회장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부정 의혹과 관련해 주식회사등의외부감사에관한법률(외부감사법) 위반 혐의도 적용받았다. 또 검찰은 최 전 실장과 김종중 옛 미전실 전략팀장(사장), 김태한 삼성바이오 대표 등 5명도 그룹 수뇌부의 위증 등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수사팀은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의 불기소 권고 이후, 법률·금융·경제·회계 등 외부 전문가들의 비판적 견해를 포함한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 수사내용과 법리, 사건처리방향 등을 전면 재검토했다"며 "학계와 판례의 다수 입장, 증거관계로 입증되는 실체의 명확성, 사안의 중대성과 가벌성, 사법적 판단을 통한 국민적 의혹 해소의 필요성, 수사전문가로 구성된 부장검사회의 검토 결과 등을 종합해 주요 책임자 기소에 이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수사심의위 소집 → 영장 청구 → 영장 기각 → 불기소 권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사건과 관련해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가 열린 지난 6월 26일 심의위원회를 마친 위원들이 대검찰청 건물을 나서고 있다. 심의위는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했다. (사진=연합뉴스)
검찰이 장기간 수사를 진행해왔던 만큼 이날 이 부회장의 기소는 어느 정도 예상됐던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검찰은 지난 6월 4일 이 부회장에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 회계부정 의혹 관련,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및 시세조종, 외부감사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부회장 측이 영장 청구 이틀 전인 6월 2일 서울중앙지검에 기소 타당성을 심의해 달라는 내용의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강수'로 대응했다.
하지만 법원은 구속 필요성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며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지 5일 만인 6월 9일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고, 검찰은 그간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한 정도의 증거를 확보했다고 보인다"면서도 "불구속재판의 원칙에 반해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해서는 소명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수사심의위 역시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를 중단하고 불기소할 것을 검찰에 권고했다. 대검찰청 산하 수사심의위는 지난 6월 26일 현안위원회를 소집해 회의한 결과 이 부회장과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전략팀장(사장), 삼성물산 주식회사에 대해 불기소하라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당시 수사심의위는 과반수 찬성으로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 중단 및 불기소 의견으로 의결했다. 이러한 수사심의위 결정을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수사심의위는 지난 2018년 국민적 의혹이 있는 사건에 대해 심의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됐는데, 기소를 강행할 경우 검찰 스스로 기소권 남용을 억제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를 무력화한다는 비판에 휩싸일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또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기소하더라도 재판 과정에서 이 부회장 측이 구속영장 기각과 심의위 의결 내용을 토대로 공소사실을 적극적으로 반박할 수 있다는 견해도 나왔다. 수사심의위 의결은 강제적 효력이 없어 검찰이 이를 따를 필요는 없지만, 수사심의위 제도가 도입된 이후 수사심의위에서 의결된 8번의 사건에 대해 검찰이 모두 받아들인 바 있다.
치열한 '법리 공방' 예상…이재용 2년7개월만에 피고인
◆…삼성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을 수사해온 검찰이 1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검찰 깃발 뒤로 삼성 서초사옥이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이날 결국 검찰이 이 부회장을 기소하면서 '삼성 불법승계 의혹'에 대한 수사는 일단락됐지만, 향후 재판 과정에서 치열한 법리 공방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은 구속영장 청구 당시 '상당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본 법원의 판단을 토대로 이 부회장의 혐의를 적극적으로 소명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이 부회장 측은 구속영장 기각과 수사심의위 불기소 권고를 이유로 검찰 수사의 부당성을 입증하는 데 총력을 다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이 부회장에 대한 기소가 결정되면서 이 부회장은 2018년 2월 국정농단 사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된 지 2년 7개월 만에 다시 피고인 신분이 됐다. 앞서 이 부회장은 2017년 '국정농단' 사건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두 차례 영장심사를 받았다. 첫 번째 영장심사에서는 구속을 피했지만 두 번째 영장심사에서 결국 구속영장이 발부돼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2015년 이 부회장이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삼성물산이 회사의 가치를 고의로 낮추고, 제일모직은 주가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합병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당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은 1대0.35로 제일모직 주식 1주와 삼성물산 주식 약 3주를 바꾸는 조건으로 합병됐다.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 지분 23.2%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삼성물산 주식은 없었는데, 제일모직에 유리한 합병 비율이 산정됨에 따라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 지분을 안정적으로 확보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이뤄진 불법 행위를 이 부회장과 미래전략실이 보고받거나 지시했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삼성바이오 회계부정 혐의와 관련해서도 검찰은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합병 비율을 만들기 위해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의 회계를 조작해 시장가치를 키웠고, 이와 관련해 이 부회장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의심한다. 삼성바이오는 2015년 상장을 앞두고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관계사로 전환했고, 이에 대한 회계처리기준을 변경하면서 4조원대로 시장가치가 높아졌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이 지분을 보유했던 제일모직의 주식가치가 높게 평가돼 삼성물산과 1대0.35 비율로 합병할 수 있게 됐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이 부회장을 상대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업무상 배임), 삼성바이오 회계부정(콜옵션 공시 누락) 지시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