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감동을 위해 "의견서는 새벽에 전송하라"

"The key is to set realistic customer expectations, and then not to just meet them, but to exceed them - preferably in unexpected and helpful ways"(중요한 것은 고객기대치를 현실적으로 정해 놓되, 그 기대치를 뛰어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 이왕이면 고객이 전혀 예기치 못 한 방식으로, 그리고 고객에 도움되는 방식으로) - Richard Branson

전문가들은 낮에는 일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끊임없이 걸려오는 외부 전화, 방문객과의 연속되는 회의, 조직 내 동료들과의 내부회의, 학술회의나 세미나 참석, 상공회의소나 협회 모임, 정부 등의 자문위원회 참석, 시장의 잠재고객 개발 및 방문, 고객과의 점심식사 그리고 저녁식사와 파티 등등… 전문가의 하루는 그저 짧기만 하다.

낮 시간에 이렇게 동분서주하다 보면, 정작 고객이 요청하는 의견서(예: legal opinion 또는 financial report)나 분석보고서(analysis report) 등을 작성할 시간이 없다. 여러 고객들로부터 수임하는 일거리들이 계속적으로 쌓이기만 하는 것이다. 업계에서 잘 나가고 유명세가 높은 top class 전문가들일수록 이는 더 심하다.  

이들은 밤낮으로 쉴새없이 들어오는 고객의 이런 요청들을 어떻게 다 소화하는 것일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 모든 것을 야간에 해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행히 야간작업은 장점이 많다. 전화, 사람, 소음 등 낮에 겪는 온갖 방해물로부터 완전 해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업무 집중도가 매우 높다. 이런 이유로 일감이 많은 전문가들은 야간에 사무실에 남아서 때로는 홀로 때로는 몇몇의 동료들과 연구에 몰두하고 또한 문서를 작성한다.

팀을 거느리고 있는 고참들은 부담이 훨씬 적다. 낮 시간에 선배들보다 덜 바쁜 후배들은 자기들 사무실에서 서류작업(paper work)을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고참들은 고객의 요청을 받으면 그때그때 바로 후배들에게 전화하여, 사건의 개요를 알려 주고 사전 리서치와 의견서 초안 작성을 부탁해 놓는다. 그리고 고객과의 회의나 기업가 협회 등에서 만찬을 마치고 돌아와서 후배들이 작성해 놓은 검토서 및 의견서 초안을 검토·수정하고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잘 나가는 전문직의 의견서들은 밤늦게나 새벽녘에야 비로소 완성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고객에게도 새벽에 전달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컬(ironical)하게도 오히려 이런 새벽녘의 의견서들이 고객의 감동(?)을 산다. 하기야 고객들이 다음 날 아침 출근을 해서 이메일을 여는 순간, 전날 새벽에 들어온 의견서가 자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면 이에 감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 이상할 것이다.

고객은 해당 전문가가 항상 바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고객으로선 자기를 위해서 새벽까지 시간을 내 준 그 전문가가 고마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록 전문가가 꼭 그 고객을 배려해서 그렇게 한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결과가 좋은 것이다.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부지불식간에 고객 자신이 다른 고객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하기도 하는 것이다. 굳이 밤을 새워 완성해서 보내지 않아도 되는 경우에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의견서를 보내기 위한 최적의 시간은 언제일까? 답은 늦은 밤이나 새벽이다. 당신은 지금 내일이나 모레 보낼 의견서가 있는가? 그렇다면, 바로 오늘 밤 그 일을 앞당겨서 처리해 보시라. 그리고 의견서를 새벽에 송부하라. 그러면 고객이 즐거운 것이다.

고객은 왕이다. 전문직이라 하여 다를까? 공급과잉으로 무한경쟁에 돌입한 전문직들의 요즘 현실에선 고객은 왕 이상이다. 따라서 내가 10% 만큼 더 서두르고 더 노력하여 고객이 감동한다면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우리가 어려서부터 귀에 박히도록 들어 온 슬로건이 있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라(Don't put off till tomorrow what you can do today)", 당연히 우리는 이 슬로건을 지키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이 슬로건이 승리의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경쟁이 치열하고 세상이 너무도 빠르게 격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직은 발상(發想)의 전환이 필요하고, 새로운 슬로건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필자의 슬로건은 이렇다. "내일 할 일을 오늘 하라(Do today what you can do tomorrow)", 현대는 스피드시대다. 속도를 제패(制覇)하는 자가 세상을 제패(制覇)한다.

물론 세상은 복잡하고 하나의 진리가 항상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예외 없는 법칙이 없듯이 말이다. 하나의 원칙이 항상 정(正)의 결과를 가져 온다는 보장이 없다.

전문가는 의견서에 책임을 져야한다. 의견서가 잘못되면 법적 책임을 면치 못한다.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변리사, 관세사 어느 전문직이든지 전혀 예상치 못한 손해배상소송에 휘말리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문제는 의견서의 법적 위험성(legal risk)은 그 의견서 작성의 속도(速度)에 어느 정도 비례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슈를 성급히 검토하고 성급히 작성한 의견서가 그렇지 않은 경우 보다 판단의 실수 또는 오류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매 사안의 상대적 중요성, 문제의 난해성, 그리고 사안의 민감성을 모두 종합하여 그 검토의 수준과 양을 결정하여야 한다. 그리고 최종 판단이 기업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중대할 것인가 등을 전체적으로 종합 고려하여 사안의 연구검토시간과 의견서 작성의 완급(緩急)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철저하고 조심스러운 분석(careful analysis)과정이 의견서 송부의 속도(speed)보다 훨씬 중요하다. 

이를 우리 일상에서 자주 겪는 한 예를 들어 설명해 본다.  

한국 최대 회계법인의 갑회계사는 오늘 고객이 던져 준 아주 난해하고 민감한 이슈에 대하여 의견서를 작성하였다. 솔직히 갑회계사가 처음에 고객으로부터 질문을 받았을 때에는 정말 난감하였다. 고객의 앞이라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과연 자기가 답을 찾아낼 수 있을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아주 까다로운 질문이었다.

더욱 부담스러운 것은 자기의 판단에 따라서 고객기업의 거대한 제2공장의 폐쇄 여부까지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의견서가 잘못되면 회사에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손실을 입힐 수 있었다.

고객과 헤어진 후 생각을 좀 더 정리하였다. 그런데 약간의 리서치를 해본 결과는 의외였다. 예상과는 달리 아주 간단하게 답이 나왔던 것이다. 갑회계사는 기뻤다. 무거웠던 가슴이 아주 가볍고 후련해졌다. 자신의 실력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고객에게 자신의 멋진 의견을 서둘러서 알려 주고 싶은 충동이 솟구쳤다. 

그러나 잠시 후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 건은 너무나 중대한 사안이다. 좀 더 뜸을 드리자. 충동을 자제하자. 속도의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갑회계사는 "이 의견서는 하루 밤 더 묵혀 보자"고 결심했다. 

평상심으로 돌아간 갑회계사는 차를 몰고 퇴근하였다. 한참을 운전하던 중에 갑회계사의 머리에 번개같이 뭔가가 떠올랐다. "아뿔싸 그게 아니잖아? 판단이 잘못되었구나. 정말 큰일 날 뻔 했네!" 아찔했다. "아, 오늘 보냈으면 난 완전 망할 뻔 했구나. 의견서를 하루 밤 더 묵힌 것이 정말 잘 한 일이구나."

그는 밤새 뒤척이다 다음 날 새벽 일찍 출근해 의견서의 결론을 전면적으로 수정하였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순간적으로 실수를 한다. 만약 갑회계사가 당초의 기막힌(?) 해답에 도취해서 고객에게 자랑하듯이 곧바로 보냈다면 엄청난 실수를 범했을 것이다.

여러분도 유사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밤늦게까지 보고서를 작성하여 상사에게 바로 email 결재를 올리려다가, '잠깐만'하고 아쉽지만 하루 보류하였는데, 귀가하여 화장실에서 양치질을 하다가 문득 그 보고서의 결론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깨닫고 가슴을 쓸어내린 기억 말이다.

물론 고객 서비스의 제1원칙은 '스피드'다. 그러나 원칙에는 제2, 제3의 원칙도 있고 예외도 있는 것이다. 사안에 따라서는 제1원칙을 잠시 보류하고 제2원칙을 꺼내 들어야 할 경우도 있는 것이다.

아무리 스피드시대라 하여도 별 수 없다. 어떤 중요한 의견서를 성급하게 새벽(?)에 서둘러 보내다가는 큰 화를 부를 수도 있는 것이다. 때로는 옆의 동료나 후배의 검토(peer review)를 받는 것도 좋다. 이중 삼중의 확인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섣불리 고객감동이라는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말이다.

여러분은 좀 헷갈릴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문직의 생활이니 어쩌겠나? 이래서 전문직의 자세와 인성도 남달라야 하는 것이다. 얄팍한 허영심이 전문가의 성급한 실수 또는 위법행위(malpractice)를 부추기고 나아가 한 전문가의 인생까지도 망칠 수 있는 것이다.

잘못된 판단 주위에는 항상 소송이라는 괴물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니, 신중성도 전문직의 중요한 덕목이다. 속도와 신중, 결국 전문가는 이 양날의 칼을 때를 가려 쓰는 예술가(?)여야 한다. 

"Be careful with your words. Once they are said, they can only be forgiven, not forgotten(당신의 말을 조심하세요. 말이란 일단 뱉어 지면, 용서는 받을 수는 있지만, 잊혀지지는 않는 것입니다)." - Carl Sandburg

필자는 말한다.
"Be careful with your opinion. Once it is sent, it can neither be forgiven, nor forgotten(당신의 의견서를 조심하세요. 의견서란 일단 나가면, 용서를 받을 수도, 잊혀질 수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