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송보국의 경영철학으로 대한항공을 국제적 항공사로 키워
외환위기 때 과감한 투자로 회장 임기 중 실적 3배 이상 실현한 항공경영자
◆…한진그룹 조양호회장이 8일 새벽 미국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사진=대한항공 제공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4월 8일 새벽(한국시간) 미국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0세.
조 회장은 1949년 3월 인천에서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경복고등학교를 거쳐 인하대 공과대학, 美 남가주대 경영대학원 석사, 인하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하여 45년간 한국의 항공산업을 이끈 경영자이다. 선대 회장의 '수송보국(輸送報國)'의 경영철학을 이어받아 대한항공을 글로벌 선도항공사로 이끄는데 기여하고 한국의국 항공산업의 위상을 제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 최근 가족의 갑질경영과 이사연임 실패 등 시련을 겪기도 했다.
1992년 대한항공 사장, 1999년 대한항공 회장, 2003년 한진그룹 회장 자리에 올랐다. 재직기간 중 대한항공은 수 없이 많은 위기가 있었다. 그는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났던 것으로 한진그룹 전·현직 임직원들은 평가하고 있다.
조 회장의 재직 기간 중 항공동맹체인 '스카이팀(SkyTeam)' 창설 주도와 선제적 투자 전략이 오늘의 대한항공 50년이 있게 한 업적으로 회자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보잉737 항공기 27대를 구매, SARS와 9.11 테러의 영향으로 세계 항공산업이 침체의 늪에 빠진 2003년 차세대 항공기 A380 항공기 등의 구매계약 등의 결단은 대한항공 성장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또한 세계 항공업계가 대형항공사와 저비용 항공사(LCC)간 경쟁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여 2008년에 진에어를 창립했다.
대한항공은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대한항공은 1969년 출범 당시 8대뿐이던 항공기는 166대로 증가했으며, 일본 3개 도시 만을 취항하던 국제선 노선은 43개국 111개 도시로 확대됐다. 국제선 여객 운항 횟수는 154배 늘었으며, 연간 수송 여객 숫자 38배, 화물 수송량은 538배 성장했다. 매출액과 자산은 각각 3500배, 4280배 증가했다.
조 회장은 대한항공이라는 개별 기업을 넘어 우리나라의 항공산업의 위상을 높이는데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항공업계의 UN'이라고 불리우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으며 IATA의 집행위원회 위원, 집행위원 중 별도 선출된 11명으로 이뤄진 전략정책위원회 위원도 맡아왔다. 2019년 IATA 연차총회가 처음으로 한국에서 열릴 예정이다.
한편, 그는 다양한 민간 외교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여 2015년에는 프랑스 최고 권위의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그랑도피시에를 수훈했으며, 몽골로부터는 2005년 외국인에게 수훈하는 최고 훈장인 '북극성' 훈장을 받기도 했다.
특히, 그는 2009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을 맡아 성공적인 대회유치로 한국의 국격을 크게 높였다. 유치위원장 재임 기간인 1년 10개월간 50번에 걸친 해외 출장으로 약 64만km(지구 16바퀴)를 이동했으며 IOC 위원 110명중 100명 정도를 만나 평창에 대한 지지를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조 회장의 삶에 아픔도 많았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진해운의 경영난에 2013년부터 구원투수로 나서 1조원이 넘는 자금을 지원했으나 결국 2016년 법정관리에 이어 2017년 청산되어 수송보국의 한 축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었다.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에서 부당한 외압에 의해 타의로 물러난 것도 치욕의 한 장면이다. 최근 가족의 갑질문제로 불거진 조사, 재판 등 심리적인 시련을 겪었고 지난 대한항항공 정기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했다.
조 회장은 경영철학은 '시스템 경영론'으로 유명하다. 최고 경영자는 시스템을 잘 만들고 원활하게 돌아가게끔 하고 모든 사람들이 각자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율을 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절대 안전을 지상 목표로 하는 수송업에 있어 필수적 요소이고 고객과의 접점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현장임을 강조했다. 항공사의 생명은 서비스이고 최상의 서비스야말로 최고의 항공사를 평가 받는 길이라고 보고 고객중심 경영에 중점을 뒀다.
최근 사회적 물의로 비판적 시각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열악한 한국의 항공업이 50여년 만에 세계적인 항공산업으로 성장한 것에 기여한 공이 크고 한국 항공업의 선구자라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그의 고객중심 서비스 경영과 시스템 경영은 앞으로 한진그룹이 더욱 성장하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재계와 학계의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대한항공은 오늘 입장문에서 “조 회장은 수행하는 비서 없이 해외 출장을 다니며 서비스 현장을 돌아보고 안전에 저해되는 요소가 없는지 면밀히 살피고 접객 현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생생한 의견을 들어왔다”며 “조 회장의 이 같은 열정과 헌신은 대한항공이 지금껏 성취했던 것들과 궤를 같이 한다”고 애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