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조현민 전무의 '물컴 사건'으로 면허취소 위기에 까지 몰렸다 일부 영업정지를 받는데 그친 진에어. 사진=진에어
이번 관세청 국정감사에서 한진 총수일가의 밀수 의혹과 관련한 관세청의 수사가 도마 위에 올랐다.
관세청은 업무현황 보고를 통해 “검찰의 보강수사 지휘에 따라 한진 일가에 대한 추가적인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의원들은 6개월이 지나도록 수사에 진전이 없는 관세청을 향해 쓴 소리를 내뱉었다. 특히 관세청이 한 달 동안 5차례 벌인 압수수색이 '보여주기 식 과잉수사'가 아니었냐고 지적했다.
자유한국당 이종구 의원은 한진 일가 압수수색과 관련해 “관세청이 조금 심했던 것 같다”고 지적했고, 김영문 관세청장은 "관세청이 대한항공과 유착했다는 의혹이 나와 저희가 무리했던 것 같다"고 시인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은 "관세청의 수사가 개시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수사결과가 발표되고 있지 않다"면서 "국민적 의혹을 해소시켜주길 바란다. 관세청장이 그 자리에 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번 관세청 국감은 조양호 한진 회장의 차녀 조현민 전무의 '물컵사건' 이후 6개월간 조 회장 일가에 가해진 공권력을 평가하는 오피니언 리더들의 의견을 가장 잘 대변해주는 사례였다.
검찰을 비롯한 수사기관에 국토부까지 나서 저인망식 구속영장 청구, 면허취소 등의 칼날을 휘둘렀지만 애시당초 들끓는 민심을 달래기 위한 '보여주기식' 과잉조치였다는 지적이 뉘늦게 나오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한진 일가에 대한 수사결과 대부분 불기소되거나 불구속기소에 그쳤다. 국토부는 진에어의 면허취소까지 거론했으나 일부 영업을 제한하는 선에서 마무리 지었다.
재계 관계자는 “국민감정과 냉정한 법리 사이의 간극은 이만큼 크다”며 “여론이 나빠진 대기업 오너와 관련된 사건의 경우 국민 정서와 법리 사이의 거리는 더욱 멀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조현민 전무의 물컵투척 사건은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과 더불어 오너일가의 갑질문제로 불거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샀다.
이후 조회장의 배임·횡령 의혹, 조회장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이사장의 공사장 폭행사건, 조원태 사장의 과거 인하대 부정편입학 사건과 맞물리고 오너일가의 밀수의혹과 직원들의 길거리 촛불시위로 확산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러나 오너일가가 줄줄이 포토라인에 세워지는 수모를 겪으며 구속되는 공포에 직면해야 했다. 한진일가에 대한 의혹은 모두 구속영장이 기각되었고 조원태사장의 20년전 인하대 편입학은 취소됐다.
지난 15일 서울남부지검은 조현민 전무의 '물컵 투척사건'에 대해 6개월간의 수사 끝에 최종적으로 폭행혐의는 '공소권 없음' 특수폭행·업무방해 혐의는 '혐의없음' 처분하고 불기소 처분했다. 조양호 회장의 경우에 대해서는 배임과 횡령 등 7가지 혐의에 대하여는 불구속 기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론몰이에 보여주기 수사?
물컵 투척사건은 대한항공의 광고기획사 직원들과의 회의도중 발생했다. 대한항공의 광고담당 최고책임자인 조 전무 입장에선 수십억 원이 드는 광고기획안에 대해 불만을 표시할 수 있지만, 물컵을 던지고 고성을 지르는 '갑질'을 벌인 음성녹음파일이 유포되면서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하지만 6개월간 11개 정부부처가 투입된 요란한 조사에도 불구, '조 전무가 유리컵을 사람이 없는 쪽으로 던졌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소권이 없음'으로 검찰 결론이 내려졌다.
조 전무에 대한 무혐의와 조 회장에 대한 불구속 기소는 공권력의 남용을 시인한 꼴이 된 셈이다.
국토부는 진에어에 대해 일정기간 신규노선과 신규 항공기 등록을 제한하고 부정기편 운항허가를 제한하는 등 부분적인 제재 조치를 내려 면허취소라는 극한 상황을 피했다. 경쟁이 치열한 저가항공업계에서 일부 영업제한 조치는 그 자체가 큰 타격이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6개월 동안이나 관련 정부부처 모두 이 잡듯 뒤지는 시늉만하고 오너일가의 구속 가능성을 언론에 흘리면서 보여주기에 급급했다”며 “제시된 의혹에 대해 밝혀진 것이 없어 오히려 공권력이 재벌을 비호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훼손된 기업가치는 누가 보상 하나?
증권분석가들은 “대한항공의 기업가치가 오너일가에 의해 크게 훼손되면서 오너리스크가 대한한공 주주와 임직원에게 고스란히 전가된 결과가 되고 말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 공권력의 과잉대응으로 주주와 임직원이 입게 되는 피해가 더 커졌다는데 있다.
대한항공은 3월과 4월초 약 3만5천 원대였던 주가가 10월에는 약 2만6천 원대로 떨어져 시가총액이 약 8500억 원 정도 사라졌다. 이 기간 시장평균 수익률이 하락한 점을 감안해도 대한항공의 주가하락은 시장평균수익율에 현저히 미치지 못해 기업가치가 크게 훼손됐다.
이번 사건에 대해 대한항공의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은 지난 6월에 대한항공에 공개서한을 보내고 경영진을 면담하는 등 경영진 견제에 나섰다. 7월 말에는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 지침인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확정했다. 국민연금이 투자회사의 임원 선임과 해임 등 주주권 행사에 제한적으로 참여하여 기업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경영진에 대한 제재수단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미국의 말콤 글레드웰은 그의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1997년 괌 KAL기 사고원인을 문화적으로 분석하면서 상사의 의견에 반대하지 못하는 대한항공의 기업문화를 언급한 바 있다. 그는 PDI(Power Distance Index)를 제시하며 '상사의 의견에 반대할 수 있는' 유연한 기업문화를 가진 기업이 고객만족과 기업가치가 더 커진다고 설명하고 있다.
기업문화 분야 전문 경영컨설턴트는 “거리로 촛불을 들고 나갔던 직원들은 오너와 경영진의 의견이나 지시에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오너와 경영진은 그들의 의견을 포용하는 리더십으로 기업문화를 개선해 나가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