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거래도 현금 거래 성행하는 이유

무역거래를 떠올리면 신용장 (L/C)부터 생각한다. 그래서 보통사람들도 신용장이 무엇인지 정확히 몰라도 무역에서 나오는 말인 줄은 안다. 신용장은 무역 거래때 제대로 된 서류가 약정된 기한 내에 제출되었을 때 수출상에게 은행이 수출대금을 지불할 것은 보증하는 증서이다.

무역거래에서 신용장을 쓰는 것은 수출자가 수출품을 선적한 후 거래은행에 선하증권, 상업송장 등 선적서류를 제시하면 은행이 지급을 보장해줌으로써 대금 회수를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입자는 수입품대금을 보낼 필요없이 은행을 통해 신용장을 개설하고, 선적서류가 도착하면 그 때 지급하고 수입물품을 인수하면 되기 때문에 안심하고 거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렇게 장점이 많은 데도 불구하고 무역거래에서 신용장의 사용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그 대신 전신환송금 (T/T)이 주된 결제방식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올들어 10월까지의 통계를 보니 신용장은 선적서류를 제출하면 바로 전액을 은행에서 지불하는 일람출급이 약 5.83%, 일정기간 지난 후 지불하는 기한부 신용장이 3.22%로 모두  9%정도에 불과하다.

반면 현금결제나 마찬가지인 전신환송금(T/T)이 58.58%나 된다. 물건을 일단 보내고 이건 일정한 규칙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수출자와 수입자간의 약속에 의하여 전체 금액의 일정 금액을 현금으로 보내는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전적으로 수입자의 신용을 바탕으로 하는 일람불거래방식인 서류지급도(D/P, Document Against Payment)가 0.89%, 기한부거래방식인 서류인수도(D/A, Document Against Acceptance) 방식이 7.37%, 그리고 상품인도방식인 CAD(CASH AGAINST DOCUMENT), COD(CASH ON DELIVERY)가 10.42%이다.

어째서 은행의 지급보증이 있는 안전한 방식의 신용장 사용이 줄어들고 있을까? 그 것은 바로 신용장의 단점인 복잡한 서류작업과 부담될 정도로 많은 종류의 은행 수수료 때문이다. 위의 박스안에 들어있는 것들이 신용장과 관련된 수수료들이다. 일일이 알려고 할 필요는 없다. 수출을 오래한 나도 기억하지 못하니까. 이래저래 만만치 않다.

특히 유럽이나 미국은 그 수수료가 우리보다 더 비싸면 비쌌지 싸지는 않다. 수출자의 부담은 이뿐만 아니다. 일반적으로 내수사업을 하는 판매자는 물건을 잘 만들어서 구매자에게 전달하기만 하면 별 문제없이 대금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수출은 많이 다르다. 물건을 잘 만들어 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류를 잘 만드는 것도 만만치 않게 중요하다. 신용장을 사용한다는 것은 은행과의 거래를 해야 한다는 것이고, 은행은 주로 서류로 일을 한다. 신용장에는 보통 선하증권 원본 3부, 인보이스, 포장명세서, 원산지 증명서등을 기본으로 요구하고, 나라마다 바이어마다 추가적인 서류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신용장과 관련된 모든 서류는 은행에 완벽히 일치하게 작성되어 제출되어야 하는 데 사실 그런 경우가 오히려 드물다. 그럼 교과서적으로 한다면 은행이 지급을 거부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하자네고'를 해준다. 여기서 말하는 '하자'라는 것은 아주 큰 것이 아니라 오자, 탈자정도의 잘못을 말한다. 그 오탈자 한 글자 한 글자마다 일정한 정도의 벌금을 매겨서 요구한다.

T/T는 일이 간단하다. 수입자와 수출자가 서로 계약을 하고 일부 선금, 일부 잔금을 보내면 그 것으로 끝이다. 하지만 신용장 방식은 중간에 은행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시간과 돈이 많이 들어간다. 그러다 보니 무역 회사들은 점차 신용장을 회피하고 좀 더 간편하고 비용 절감적인 방법을 찾아 움직이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서로간의 믿음에 근거한 외환 거래가 소규모 비즈니스에만 한정된다고 생각하면 오해이다. 삼성이나 현대같은 거대기업의 수억달러짜리 거래도 신용장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만일 대기업들이 T/T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58.58%라는 숫자가 나올 수없다.

홍재화 필맥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