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 간의 첫 정상회담은 대화를 통한 북핵 해법의 큰 틀에 합의하는 등 기대이상의 성과를 올렸다.
사드배치 문제와 문재인정부의 대북접근을 둘러싸고 미국 조야에서 고조됐던 불안감을 해소하고 굳건한 한미동맹을 재확인함으로써 첫 단추는 잘 꿰었다.
특히 한반도 평화 통일 환경을 조성하는 데 '대한민국의 주도적 역할'을 트럼프대통령이 지지하고 이를 공동선언문에 명기한 것은 우리들에게 더 없이 고무적인 일이다.
문 대통령 스스로 “북핵 문제와 관련해 대화의 여지를 열어놓고 평화적으로 해결하기로 한 것, 남북문제를 우리가 주도하기로 한 것, 남북대화에 대한 미국의 지지표명 등은 큰 성과였다고 본다”고 회담 성과를 요약했다.
남북문제를 우리가 주도하고, 현 시점에서 남북대화 재개에 미국이 지지를 표명했다는 것은 다소 의외다. 국내 보수진영이나 언론 등에서 그 같은 주장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기조를 흐트러뜨리고 한미동맹을 흔든다고 반대와 우려를 표명해왔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남북대화를 주도하겠다는 제의에 대해 우리 내부에서는 미국과 의견이 다르지 않을까 염려하는 것 같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측에서 너무나 당연한 주장으로 인정해줬다”며 자신감을 갖고 회담에 임했다고 털어놓았다.
나아가 북한과 대화를 위한 전제조건을 놓고 “전제조건을 특정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트럼프 대통령도 (대화의 시점을) '변화하는 정세에서 감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가까이 있는 한국이 감이 더 좋지 않겠느냐'고 오히려 신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회담 상황을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이런 신뢰를 토대로 북한의 핵동결이란 입구에서 핵 폐기라는 출구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의 단계를 한미 양국이 서로 긴밀하게 협의,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 워싱턴의 한반도전문가들이 참석한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에서 “나와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북한을 공격할 의도가 없으며, 북한 정권의 교체나 정권의 붕괴를 원하지도 않는다. 인위적으로 한반도 통일을 가속화하지도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북한에 대한 적대시정책, 정권 교체나 붕괴 시도, 인위적 흡수통일은 북한이 내세우는 대화의 걸림돌이자 그들 핵개발의 대의명분이다. 한국의 대통령이 북한을 향해 이 '네 가지 No'를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은 파격적이다. 게다가 북한에서 핵 폐기를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김정은이라며 그를 대화의 상대로 인정했다. 문재인외교의 새로운 지평이다.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려면 남-북-미 삼각관계가 선순환해야 한다. 한-미, 남북, 북-미 세 양자관계 중 하나라도 막히면 다른 관계는 앞으로 나가기 어렵다. 한국이 나서 조율하고 대안을 제시해 세 양자관계가 통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 바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이다.
문 대통령은 워싱턴 동포간담회에서 이제 주변국에 기대지 않고 우리가 운전석에 앉아 남북관계를 주도해 나가겠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북핵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미국과 합의한 '올바른 여건'이 무엇이냐를 놓고 향후 한·미간 조율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정상회담 후 공동언론발표에서 동맹간 온도차는 확연히 감지됐다. 트럼프대통령은 문대통령의 북핵 해결을 위한 대화나 단계론적 해법에 대해서는 일절 거론하지 않은 채 '단호한 대응' '더 이상은 인내하지 않겠다' '많은 옵션 논의 중이다' 는 등 북한에 대한 강경발언을 쏟아냈다.
사실 문 대통령의 '제재·대화 병행론'과 '2단계론'은 공동선언문에 담기지 않았다. 큰 틀에서 인식 공유만 있었을 뿐 해법으로 채택되는 과정에서 대북 보상 제공 여부와 대북 대화의 시점 등에 관한 두 정상 간 인식은 아직은 괴리가 감지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당분간 압박과 제재 외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일단 북핵 동결을 해놓고, 비핵화보다 대북 제재 해제나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을 성급하게 추진할 가능성을 도리어 걱정하는 눈치다.
물론 대화과정에서 북핵 폐기에 대한 현실적 보상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북한과의 대화 재개 자체를 보상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을 설득하는 일이 쉽지 않고, 보상방식의 해법을 놓고 국내의 반대 여론과도 치열하게 싸워야 할 상황도 예견된다.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는 남북한 간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안보와 전 세계 핵 확산과 관련된 문제라며 미국이 한국의 주도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나서는 상황도 배제하지 못한다.
문 대통령은 방미 중 “혹시라도 저나 새 정부가 사드 배치를 번복할 의사를 가지고 절차를 갖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은 버려도 좋다”고 미국 측을 안심시키며 사드 배치에 더 다가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중국을 향해 “사드 배치는 한국의 주권 사안”이라며 “한국의 주권적 결정에 대해 중국이 부당하게 간섭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좀 더 분명한 메시지를 날렸다.
미국으로부터 더 이상 배치를 둘러싼 불신이나 오해를 사지 않으려면 절차적 정당성 확보를 위한 환경영향평가 등에 속도를 내야한다. 배치를 최종결정하기까지 절차적 정당성을 밟아나가면서 그 사이 중국과도 충분히 협의를 갖는다고 하지만 중국이 이에 호락할 리 만무다. 시진핑 주석이 직접 나서 사드배치의 철회를 촉구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북핵 위협에 대한 대응에서 한․미․일 3국 협력의 중요성은 정상회담 공동선언문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가 중국 포위 전략이 아니라는 점도 아울러 납득시켜야 한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말 그대로 첫 만남일 뿐이다. 지난 4월 초 열린 미·중 정상회담이 최상의 우호적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석 달도 안 돼 다시 갈등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현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이 점차 중국에 대한 기대를 접고 한·미·일 중심으로 대북 압박에 집중할수록 한·미·중 관계는 더욱 어려워진다. 중국 협력 없이 북핵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 북핵문제를 조속히 해결하면 사드문제는 절로 출구가 열린다는 방향에서 한·미·중이 절충점을 찾을 수도 있다.
전시작전통제권의 조속한 전환과 한국군의 연합방위 주도 등 동맹의 틀도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미국의 글로벌리더십이 쇠퇴하면서 혈맹에서 가치동맹으로, 전쟁억지에서 평화를 만드는 동맹으로 질적 전환도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번 주 독일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회의는 문 대통령에게는 다자외교 데뷔무대다. 한반도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주도하겠다는 밑그림을 갖고 미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동참을 이끌어내는 대장정에 나서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