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된 재산이 공급된 경우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는 그로 인한 손익이 최종적으로 귀속되는 위탁자 또는 수익자가 아니라 거래행위를 한 수탁자이다.
대법원은 "수탁자가 위탁자로부터 이전받은 신탁재산을 관리처분하면서 재화를 공급한 경우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는 재화의 공급이라는 거래행위를 통하여 그 재화를 사용·소비할 수 있는 권한을 거래상대방에게 이전한 수탁자로 보아야 하고, 그 손익이 위탁자나 수익자에게 최종적으로 귀속된다는 사정만으로 달리 볼 것은 아니다"라고 판결하였다.
신탁은 위탁자와 수탁자간의 신임관계에 따라 수탁자에게 특정의 재산을 이전하고 수탁자로 하여금 수익자의 이익을 위하여 그 재산의 관리처분을 하게 하는 법률관계이다. 아파트 건설 시행사가 신탁회사에 부지를 신탁하여 개발하는 경우가 흔히 보는 예이다.
이와 같이 신탁에서는 수탁자가 자기 명의로 신탁재산을 관리처분 하게 되나, 그로 인한 손익은 위탁자 또는 수익자에게 귀속된다는 점에서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를 누구로 볼 것인지가 문제된다. 부가가치세법이 신탁에 관해서는 명시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는 실무상으로도 혼란을 주고 있다.
이에 관해 종래 대법원은 수탁자가 계약당사자가 되어 신탁재산을 관리처분 하더라도 그로 인한 손익은 위탁자 또는 수익자에게 귀속되므로 위탁자 또는 수익자가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가 된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03. 4. 25. 선고 99다59290 판결)
이는 부가가치세법이 위탁매매로 인한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를 자기 명의로 재화를 공급하는 수탁자가 아니라 손익이 귀속되는 위탁자로 정하고 있다는 점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러나 신탁재산의 관리처분으로 인한 손익이 위탁자나 수익자 중 누구에게 최종적으로 귀속되는지는 신탁계약의 내용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이를 둘러싼 분쟁이 다수 발생하였다.
이번 판결은 부가가치세가 재화의 공급이라는 거래 그 자체를 과세대상으로 하는 '거래세'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납세의무자의 판단기준을 손익의 귀속에서 재화의 공급이라는 거래행위로 변경하였다.
즉, 손익의 최종적 귀속을 고려하여 납세의무자를 판단하던 기존의 위탁매매 법리를 폐기하는 대신 재화를 공급하는 자는 원칙적으로 계약상 또는 법률상의 원인에 의하여 그 재화를 사용·소비할 수 있는 권한을 이전하는 행위를 한 수탁자로 파악하도록 한 것이다.
납세의무자의 확정은 세금 신고납부의 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 그 판단기준은 되도록 명확하게 정해질 필요가 있다. 그 동안 신탁재산의 관리처분과 관련해서는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의 판단기준이 불명확하여 실무상 어려움이 많았다.
이번 판결은 신탁과 관련된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를 거래행위를 한 수탁자로 쉽고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게 하였다는 측면에서 실무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다만, 대상판결은 10년 이상 유지되어 온 대법원의 기존 입장을 변경한 것이라는 점에서 당분간 이로 인한 혼란과 분쟁의 발생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2017. 5. 18. 선고 2012두22485 전원합의체 판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