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가 출범 한 달여 만에 부동산시장과열이란 복병을 만났다. '더불어 성장'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문재인 정부에게 부동산시장과열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문제다.
더구나 문 대통령에게는 노무현 정부 부동산실패의 트라우마가 있다. 대선후보 시절부터 부동산시장이 실수요자 중심으로 재편되도록 각종 불법행위를 근절하는 데 온 힘을 쏟겠다고 강조해온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경기는 여전 냉골인데도 새 정부 들어 서울 강남재건축을 중심으로 부동산시장이 후끈 달아오르자 첫 부동산 대책을 서둘러 내놓았다. 그 첫 작품은 고강도 대책이 아닌 제목부터가 '주택시장의 안정적 관리를 위한 선별적 맞춤형 대응방안'이다.
지난해 '11.3'대책의 연장선상에서 과열지역에 대한 선별적 대응으로 투기수요를 걸러내고 조정대상지역으로 범위를 좁혀 실수요자를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투기과열지구 지정이나 그에 준하는 '강력한 한 방'은 빠졌다. 시장위축을 우려해 강도를 조절했다고 정부 스스로 시인했다.
투기수요에 일단 시그널을 보내고 정책효과가 기대에 못 미치면 더 센 방안을 8월에 내놓겠다는 얘기다. 대책의 효과와 시장상황을 지켜본 후 국지적 과열현상과 기계부채 급증세가 진정되지 않으면 8월에 더 강력한 종합대책을 내놓겠다는 복선을 깔고 있다.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2006년 11월 이후 10년 6개월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강남 재건축 단지에서 시작한 아파트 가격 상승세가 수도권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신도시도 한 달 만에 1억 원 씩 급등하는 아파트가 속출하고 있다.
강남3구를 비롯해 강동구ㆍ마포구ㆍ용산구ㆍ과천시는 과거 '버블세븐'과 유사해 '노블 세븐'으로 불리고 있다. 부동산 과열에 편승해 아파트값과 전셋값의 차액(gap)을 이용한 신종 '갭 투자'도 성행하고 있다. 소액으로 투자가 가능하고 대출규제의 영향을 받지 않아 전월세 값이 오를수록 더욱 기승을 부릴 태세다.
과열을 견인한 서울 재건축 아파트값 상승은 지난 2-3년간 지속적인 재건축규제완화조치로 충분히 예견돼 온 터였다. 재건축 소형주택의무건설 비율완화,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유예, 재건축 가능연한 단축, 조합원 지위양도, 재건축 용적률 완화, 분양가구수 완화, 투기과열지구에서 해제 등 규제완화조치들은 여윳돈 가진 자들에게 강남 재건축을 둘도 없는 '돈벌이 마당'으로 만들어 왔다.
그 결과 2015년과 2016년 2년 연속 사상 최대의 가계부채 폭증을 동반한 주택시장 활황세를 낳았고, 분양시장과 재건축시장을 축으로 해서 주변 집값까지 덩달아 뛰게 만들었다.
새 정부 들어 갑작스런 시장과열을 놓고 '참여정부 학습효과' 때문이란 우스개도 들린다. 집권 초기 규제강화를 폈던 역대 정부에서는 역설적으로 집값이 올랐다. 특히 참여정부 때가 더 그랬다. 참여정부의 제2기로 불리는 문재인 정부도 시장부양보다는 규제 쪽에 힘을 더 실을 것이기 때문에 새 정부가 규제강도를 높이기 전에 한몫 챙기자는 계산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집권초기 규제를 강화해봤자 곧 역효과가 나고 집값은 더 뛸 것이기 때문에 지금이 행동할 때라는 고도의 심리전이다. 시장 세력이 정부 머리 위에 앉아있는 격이다.
놀랍게도 문재인정부의 첫 규제카드는 시장의 예상보다 많이 약했다. 투기수요는 잡아야겠지만 집권 초기 부동산 시장을 급랭(急冷)시키는 것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강력한 '한 방' 없이 중·저강도 대책이 반복될 경우 부동산 시장에 내성이 생겨 '대책→집값 상승→대책'의 악순환이 되풀이될 것이라는 우려도 그래서 나온다.
6·19대책의 핵심은 주택시장 과열 지역과 가계부채 급증 주범에 대한 '핀셋규제'다. '11·3대책' 당시 37곳이던 조정대상지역에 경기 광명시·부산 기장과 부산진구 등 3곳을 추가했다. 이들 지역에 대한 LTV(주택담보인정비율)와 DTI(총부채상환비율)가 각각 70%에서 60%로, 60%에서 50%로 낮춰진다. 제1금융권뿐만 아니라 제2금융권 대출에도 동일하게 적용한다.
전매제한·1순위·재당첨 금지 등의 기존 규제에다 대출 규제를 추가한 것이다. 특히 가계부채 급증의 주범으로 규제 사각지대에 있던 집단대출의 잔금대출에도 DTI(50%)를 처음 도입했다. 또 서울을 집값 과열의 진앙(震央)으로 보고 강남 4구(서초·강남·송파·강동)에만 적용되던 입주 때까지 전매 제한 금지를 서울 전역으로 확대했다.
투기과열지구지정 같은 강력한 대책은 쓰지 않았지만 조정대상지역의 경우 청약·대출·재건축 규제 등 투기과열지구에서 쓰이는 규제 카드들이 골고루 적용되기 때문에 수요자들이 투자를 멈추고 시장을 지켜볼 공산이 크다. 비록 규제의 강도가 세진 않지만 일단 이 정부에서 부동산 과열은 그대로 두고 보지 않겠다는 시그널을 준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이번 대책으로 집값이 하락세로 돌아설지는 미지수다. 서울의 집값 급등은 저금리와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부동산 시장에 쏠린 것이 주요 원인인데 이에 대한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조정대상지역을 추가하고 돈줄을 옥죄더라도 막대한 자금을 보유하고 차익을 노리는 가수요를 효과적으로 막기에는 충분치가 않고, 조정대상지역 이외의 지역으로 투기수요가 옮겨가는 풍선 효과 또한 배제할 수가 없다.
주택공급 확대 내용이 없는 것도 이번 대책의 한계다. 재건축 규제로 서울의 주택공급이 중단될 것이라는 우려를 잠재우는 명확한 공급 플랜도 필요하다. 공급 확대가 없는 상황에서 전세 값이 오르고 매매 가격 상승 기대감이 있으면 전세를 끼고 주택을 매매하는 '갭투자' 수요는 기승을 부리기 마련이다.
부동산 과열은 재건축으로 인한 수급 불균형이라는 특정 지역의 문제를 넘어 지난 3년간 급증한 가계부채와 거의 6년 만에 간신히 전기를 맞은 부동산경기까지 얽힌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문제다.
2014년 8월부터 LTV와 DTI의 한도 완화를 포함해 40종의 부동산시장 부양조치가 단행됐고, 한국은행은 5차례에 걸친 기준금리 인하로 이를 뒷받침해왔다. 작금의 부동산 과열 문제는 이런 활성화 정책의 온상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부동산시장의 체질개선 없이 과열지역에 대한 '핀셋규제'와 국지적 대응은 매번 풍선효과를 낳고 투기세력의 내성을 키울 뿐이다. 투기조장 모드를 그대로 두고 '찔끔규제'를 하면 몇 달 후 다른 곳에서 투기과열을 낳게 된다. 하반기부터 늘어나는 입주물량과 임박한 가계부채대책, 금리 인상 등이 시장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부동산정책이 가계부채와 금리정책과 맥을 같이하며 같은 방향으로 일관되게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리면서 근원적인 해법을 찾아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