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정상회담이후 북한과 중국에 대한 미국의 압박수위가 일촉즉발의 위기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이 한반도 인근으로 핵항공모함을 이동시키고 대통령이 매일같이 군사행동을 포함한 '모든 옵션'을 외치고 있다.
북한은 태양절 열병식에서 보란 듯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선보이고 '핵공격에는 핵타격'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중국지도자들은 미국의 군사행동을 말리느라 워싱턴과의 대화채널에 수시로 매달리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엄포성 발언과 군사행동론은 너무 잦아 이제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멀리 나간 느낌이다. 엊그제 한국을 찾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 미국의 결의를 시험하지 말라”며 다시금 전의(戰意)를 다졌다.
그러면서도 트럼프는 중국을 향해 “중국이 북한 문제에 협력하고 있는 이 때, 왜 내가 중국을 환율조작국이라고 부르겠나?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보게 될 것”이라는 트위트도 날렸다. '환율조작국' 지정 배제라는 선물을 시진핑에 안기면서 북핵문제 해결의 '공'을 중국에 넘긴 모양새다.
'협상의 달인' 답게 트럼프는 중국을 믿는 것처럼 신뢰를 주면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협상술을 구사하고 있다. 대선기간동안 그는 중국을 환율조작의 꼼수까지 동원해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고, 돈을 빼내가는 '미국우선주의 최대의 적'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하지만 시진핑과의 정상회담 이후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최근 월스트리트 신문과의 회견에서 시진핑과의 관계에 대해 “우리는 함께 엄청난 화학적 결합(Chemistry)요소를 지녔다. 우린 서로를 좋아하고, 나는 그를 많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아무리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라고해도 이런 변신은 충격적이다.
트럼프는 대선후보시절 북한 김정은과 '햄버거 회동' 용의도 비쳤지만 취임 후 “북한은 인류의 문제(humanity problem)”라며 중국이 제어하지 못하면 미국이 독자적으로 해결하겠다고 초강경모드로 돌아섰다. '절친'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관계악화도 마다하지 않고 전격적으로 시리아 공습을 감행했다.
공을 넘겨받은 중국이 북한에 대한 독자적 압력수위를 높이고, 최고위급 협상가를 평양에 보내 북한과 비밀접촉을 벌이고 있다는 미확인보도들도 전해진다.
하지만 중국이 미국 압박에 굴복해 제재와 대화 병행이란 종래 입장을 바꾸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북핵문제의 본질은 미국과 북한 간의 문제이며 압박을 통한 문제해결이 실패했기 때문에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북․중 3자 회담을 제안하고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쌍 중단'(북한은 핵실험을 중단하고 미국은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과 '병행론'(비핵화와 평화협정 동시논의)을 제의해 온 상태다.
트럼프정부는 대북전략을 '최고수준의 압박과 개입'으로 공식화하고 앞으로 북한의 도발수위와 중국의 협력 정도를 지켜보면서 밀어붙일 기세다.
1단계로 국제사회와 협력해 경제·금융·외교·인권 등 전 분야를 망라한 전방위 대북제재를 강화하고 중국이 계속 미온적으로 나올 경우 2단계로 중국을 직접 겨냥한 '세컨더리 보이콧' (중국과 거래하는 제3자 제재)에 들어간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을 경우 3단계로 최후수단인 대북 군사옵션까지 결행한다는 시나리오다. 화학무기 공격을 주도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리아의 공군기지를 직접 폭격함으로써 북한과 중국에 간접경고를 이미 보낸 상태다.
“모든 선택지가 테이블에 올라와 있다”는 말은 위협적으로 들리지만 이 표현은 역설적으로 새 접근법이 필요한데 정작 명확한 방안이 보이지 않을 때 미국 정책입안자들이 즐겨 쓰는 방식이기도 하다.
사실 북핵을 한 방에 해결해줄 군사적 옵션은 찾기가 쉽지 않다. 북한 핵무기는 지하나 산속처럼 미국 정보기관이 모르는 장소에 숨어 있다. 북한은 특정 장소에 숨겼다가 순식간에 발사준비에 돌입할 수 있는 고체로켓연료용 이동형 미사일 개발에 빠른 진전을 이뤘다.
미국이 실질적인 대북 선제공격 역량을 가졌다 해도 북한은 서울에서 40㎞ 지점에 장사정포 수천 개를 배치하고 있다. 평양이 선제공격당한 보복으로 미사일을 한 발만 발사해도 서울은 엄청난 피해를 볼 수 있다.
섣부른 군사적 옵션은 한국은 물론 일본에 대한 북한의 보복 공격을 유발할 위험성이 크고 중국과 러시아의 대응과 개입 등 그 불똥이 어디까지 튈지 예단할 수 없다. 트럼프가 '애정공세'에 선물까지 안기며 시진핑과 밀고 당기기의 강도를 높여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 단계에서 북한에 대한 예방적 선제타격은 김정은을 비핵화 자리로 끌어내기 위한 압박수단의 하나로 과거에는 거론하지 않았던 얘기도 이제는 거침없이 하겠다는, 일종의 북한과의 기싸움 성격도 짙어 보인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고, 핵개발 동결을 조건으로 미국과 협상에 나서 그들의 체제안정을 보장받으려 안간힘이다. 미중 정상회담 후 중국이 취한 일련의 대북 압박은 트럼프와 시진핑 간 모종의 거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유류 공급 중단도 중국에 요구하고 있지만 중국이 북한을 포기하는 결단을 내리지 않는 한 유류공급은 중단하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는 중국이 북한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김정은 정권을 설득할 이유도 된다.
북한이 중국에 경제지원과 안전보장을 전제로 핵 폐기에 3년의 시한을 요구했다는 중국매체들의 추측보도도 전해진다. 미·중 정상회담 당시 북한 문제와 관련한 모종의 합의가 이뤄졌고, 이를 바탕으로 물밑 움직임이 진행되는 것으로 미루어 북한과 미국 간에, 또는 북ㆍ미ㆍ중 간 3자간 대화국면이 갑자기 열릴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미·중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포함한 한반도 안보문제와 양국 간 무역 이슈를 놓고 어떤 주고받기 식 거래를 시도할지, 정작 당사자인 우리는 감조차 못 잡고 있다. 대통령은 궐위 상태이고 주한 미국대사는 내정조차 안 된 가운데 온통 대선정국에 빠져있다.
누가 당선되던 안보위기 극복이 제1차적 당면과제이고, 미국이 만에 하나 군사행동에 들어가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한다. 미국은 3차 대전과 핵전쟁 위험을 무릅쓰며 쿠바를 봉쇄한 나라다. '철통동맹'간 사전협의와 조율만 믿고 관망하고 있기에는 트럼프는 너무도 예측 불가한 인물이다.
군사적 충돌을 피하고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며 미중 사이에서 창의적인 외교로 우리에게 유리한 전략적 포석을 설계할 수 있는 진정한 안보대통령이 필요한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