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대 대통령선거가 5자 대결구도로 그 본선의 막이 올랐다. 오는 15일 후보등록을 시작으로 본격화될 선거전은 진보 진영에서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 중도진영에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그리고 보수진영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다투는 5파전 양상으로 일단 출발하게 됐다.
하지만 5월 9일 선거일까지 이 5자구도가 지켜질 것으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후보 간 연대나 연합, 연정 등 변수가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첫 단계로 보수진영의 후보단일화 여부가 관심을 끈다. 홍준표 후보는 대선이 자유한국당과 민주당의 양자구도로 압축될 것이라고 호언한다. 더 큰 관심은 지지율 1위를 고수해 온 문재인 전 대표의 '대세론'에 맞서 안철수·유승민·홍준표 등 중도·보수 후보들의 단일화다. 세 후보가 이른바 빅텐트를 쳐 '반문(反文)연대' 단일화를 이루는 시나리오다.
대선 판이 최근 지지율이 급등한 안철수후보와 문재인후보와의 양자대결 구도로 압축될 수 있을 것인가도 뜨거운 감자다. 정작 안후보 자신은 “공학적 연대론을 모두 불살랐다”며 국민들의 연대로 문후보를 누르겠다고 기염이다. 보수성향 유권자들이 반문연대 성사여부와 상관없이 중도성향의 안후보를 문후보의 대항마로 밀어주는 전략적 선택 가능성이 변수다.
민주당을 탈당한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개헌을 동력으로 추진 중인 '반문 통합후보' 움직임도 관심을 끈다. 김종인·안철수·손학규·유승민 등이 각각 경제와 교육, 국방을 책임지는 집단지도체제 방식으로 3년간 집권한 뒤 개헌으로 7공화국에 권력을 넘기고 물러나는 시나리오다. 대선 구도를 '정권교체'에서 패권·수구(문재인·친박) 대 협치·개헌세력(반문·반박 연대) 구도로 대체해 표류하는 중도·보수표를 흡수한다는 게 핵심이다.
단일화를 부추기는 요소는 적지 않다. “보수·중도 진영에서 단일화가 안 되면 5자구도에서 문재인이 필승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계산이 그 바탕이다. 득표율이 10%에 미달하면 500억원 넘는 법정 선거비용 때문에 후보와 당이 거들날 수 있다는 점도 큰 부담이다.
민주당을 제외한 정치세력을 규합해 보수·중도세력이 권력을 분점하는 연합정부·공동정부 구성 추진방안, 각 당이 정체성 등 제 맛을 유지하면서 종합적인 맛을 낸다는 '샐러드 연정' 구상도 눈길을 끈다.
대선이라는 큰 선거를 맞아 정파 간 연대나 후보단일화 논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정치권의 합종연횡에도 명분과 원칙이 있어야 한다. 이념과 지역으로 갈라져 대결을 일삼아 온 세력들이 선거승리를 위해 특정후보에 반대하는 명분 하나로 뭉치는 건 권력 나눠먹기 야합으로 비난받을 수 있다.
연대에 앞서 시대적 가치와 국가적 목표를 공유하고 그 바탕에서 개헌을 포함, 국가 개조를 위한 프로그램들을 어떻게 초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합의된 액션플랜을 국민 앞에 제시해야 한다. 특히 대통령의 국정농단사태에 책임이 있는 자유한국당은 친박계 출당을 포함한 보수의 총체적 개혁 모습부터 보여주어야 한다.
주요 정당들은 경선 과정에서 TV토론 등을 통해 나름대로 정책 공방을 벌였지만 인신공격성 발언과 네거티브 공세로 일관하면서 정작 중요한 국정운영 능력과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검증하는 과정은 뒷전으로 밀린 상태다.
국민들은 정치공학적인 후보연대에는 큰 관심이 없다. 본선이 구도싸움에 매몰돼 후보자들 간에 선거공학만 있고 비전과 정책이 실종되는 사태를 정작 우려한다.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나타난 시대정신은 분권과 협치, 투명하고 공정한 권력행사다. 차기대통령이 누가 되건 이런 시대적 요구를 외면할 수 없다. 원내 5당의 다당제 현실 속에서 제대로 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도 없이 출범하는 정부로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더구나 한번 현실화한 대통령 탄핵은 언제든지 부메랑이 될 수 있다.
낡은 질서와 적폐를 청산하지 않고선 국가 개조를 할 수가 없고, 새로운 나라 건설도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대청소론'에 매몰돼 통합과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지지층을 제외한 민심은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
법치와 협치, 소통과 화합을 통해 과거 청산의 구체적 프로그램과 미래를 준비하는 실천적 지혜를 내놓고 국민의 심판을 구하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새가 좌우 날개로 공중을 나르듯 보수와 진보는 사회에 안정성과 유연성을 주는 두 날개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보수와 진보로 편을 가르고, 의견을 달리하는 집단을 설득과 대화, 타협의 대상이 아닌 극복의 대상으로 간주한 데서 진영대결이 고착화돼왔다.
이 과정에서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비전의 차이가 아니라 선과 악의 대립,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투쟁이라는 소모적 틀로 둔갑해 버렸다. 적폐청산 구호가 보수를 악으로 규정해 진보를 결집시키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지금 국민들이 대선후보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요구하는 것은 안보와 경제의 '쌍끌이 위기'를 헤쳐 나갈 국정운영 능력과 비전, 그를 위한 자질이다.
대통령 궐위로 정상외교가 실종된 가운데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새 대북 정책을 입안하고 미·중 정상이 북핵 문제 담판을 서두르고 있다. 북핵 및 사드 문제를 매개로 미·중 간 세력 충돌이 한반도에서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 못한다. 한반도의 운명이 한국을 제쳐 놓은 채 미국과 중국 손에 좌우되는 상황은 막아야한다.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10년 넘게 2만 달러의 늪에 갇혀 있고, 2%대의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있다. 인구·소비·고용·투자가 동시에 감소하는 4대 절벽, 최순실게이트와 대통령 탄핵에 따른 국가신뢰도 추락, 여기에다 4차 산업혁명의 파고가 밀려오고 있다.
과거 산업화 시대와 같이 특정 세력이 주도하는 성장과 안보는 불가능하다. 협치를 통해 국가안보와 경제를 안정적 궤도에 올리고 지역과 세대 간 갈등을 아우르며 국민통합을 이룰 수 있는 지도자를 국민들은 갈구하고 있다.
적폐청산은 사람이나 세력에 대한 청산이 아니라 적폐를 만들었던 낡은 시스템의 청산이며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질 때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이념을 떠나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를 아우를 수 있는 '통 큰 리더십'을 누가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대선이 불과 한 달 여, 중요한 것은 비전과 정책 대결로 본선 경쟁의 수준을 높이고 철저한 검증으로 제대로 된 대통령을 뽑는 일이다. 그렇게 되려면 유권자가 깨어 있어야한다. 흥미위주의 지지율 경쟁보도나 구도싸움에 정신을 뺏겨 후보검증을 소홀히 하면 실패한 대통령의 역사는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