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회피 목적 없다면 실질과세원칙 적용 못해

일련의 행위가 별다른 사업상 목적이 없이 증여세를 부당하게 회피하거나 감소시키기 위한 비정상적 행위가 아니라면 연속된 행위 가운데 하나로 보고 실질과세원칙을 적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우리 세법은 둘 이상의 행위 또는 거래를 통하여 세금을 부당하게 감소시킨 것으로 인정되면 경제적 실질에 따라 이를 연속된 하나의 행위 또는 거래로 보아 과세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우회적 거래 등을 만들어 조세를 회피하려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그러나 세금 부담 감소라는 단 하나의 기준만으로 실질과세원칙을 적용하게 되면 조세회피의도 없이 거래한 선의의 당사자들에까지 무리한 과세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

문제가 된 사안은 회사가 특수관계 없는 자에게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한 뒤, 일정기간 이후 그 특수관계 없는 자가 다시 전환사채 또는 신주인수권을 회사의 특수관계자에게 양도한 사안들이다.

특수관계자는 나중에 신주인수권으로 회사의 주식을 취득하여 상당한 이익을 얻었다. 과세관청은 이러한 일련의 거래를 처음부터 회사가 자신의 특수관계자에게 전환사채 또는 신주인수권을 직접 발행한 하나의 거래라고 보고 증여세를 과세하였다. 우리 세법은 회사가 대주주나 그 친족 같은 특수관계자와 거래하는 경우와 특수관계 없는 자와 거래하는 경우를 달리 취급하는데, 과세관청은 이들 거래들이 특수관계자에 대한 규정 적용을 회피하기 위한 행위라 본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실질과세원칙의 적용범위를 확대하려는 과세관청의 입장에 제동을 걸었다. 대법원은 이들 거래는 조세회피목적 이외의 사업상 목적이 존재하는 거래이므로 실질과세원칙을 적용하여 과세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회사가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한 것은 자금 조달 등의 필요에 따른 것이다. 투자자들이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을 양도한 것 역시 투자수익 조기 회수 등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또한 주가가 향후 상승할 것이라 단정하기 어려운 이상 이들 행위가 이익 분여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보기도 어렵다.

결국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이 특수관계자에게 양도된 최종적 결과만을 이유로 전체 거래를 하나로 묶어 증여를 위한 비정상적인 거래로 보아 실질과세원칙을 적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납세자는 동일한 경제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법률관계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고 그러한 납세자의 선택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다. 또한 납세자가 어떠한 법률관계를 선택함에 있어서 세부담을 고려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가장 많은 세금을 납부하는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았다고 하여 함부로 이를 비정상적인 행위로 보아  세금을 과세할 수는 없다.

물론 특수관계자와의 거래에 특수관계 없는 자를 형식적으로 끼워 넣어 세법의 적용을 피하려는 조세회피행위는 규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과세관청과 같이 사후적으로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이 특수관계인에게 양도되었다는 결과만을 이유로 증여세를 과세한다면, 과세대상이 지나치게 확대될 위험이 있다.

이 판결은 바로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실질과세원칙 적용의 한계를 선언한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판결은 '당해 거래에 조세회피목적 이외의 다른 사업상의 목적이 있는가'라는 실질과세원칙 적용의 기준을 명확히 밝혔다는 점에서 선례적 의미가 크다. 대법원 2017.1.25.선고 2015두3270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