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감사 대상법인은 느는데 감사인력은 이탈
감사품질 하락 악순환 막을 처우개선 대책 시급
잇따른 분식회계 사건으로 회계법인에 대한 소송이 급증하고 금융당국의 규제가 쏟아지자 회계사들의 사기가 '비에 젖은 낙엽' 꼴이 됐다.
회계법인 경연진들은 가뜩이나 회계사의 처우가 예전만 못해 우수인력 확보가 걱정인데 사기마저 꺾여 인력이탈을 더욱 부채질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총희 청년공인회계사회 대표는 "회계법인의 가장 큰 자산인 회계사가 떠나고 있어 회계업계의 생태계가 무너질까 걱정"이라며 "회계사의 위상이 떨어져 우수 인재들이 회계사 지원을 기피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어 앞일이 더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면 회계사 인력부족으로 감사품질이 떨어져 분식회계를 감시할 수 있는 능력이 더욱 떨어지는 악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현업에 남은 회계사들도 회계업계 본연의 업무인 감사보다 컨설팅 등 비감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감사품질이 향상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업계 정 뗀 회계사 4년새 32% 증가, 법인들은 감사일손 부족
한국공인회계사회에 따르면 올 7월말 기준 휴업 감사인수는 6690명으로 지난 2012년 11월말의 5056명보다 32% 늘어났다. 휴업 감사인수는 상승곡선을 그리며 증가하는 추세다.
휴업 감사인은 회계사 자격을 소지한 자가 회계업계가 아닌 일반기업체 등 타 업계에 종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휴업 감사인이 이처럼 갈수록 많아짐에 따라 업계는 감사시즌마다 만성적 일손부족에 시달릴 처지에 놓였다.
무엇보다 외부감사 대상 기업 2만5000여곳 중 12월 결산을 채택하고 있는 기업의 비중은 전체 대비 무려 94%에 달하고 있어 감사품질 저하까지 우려되는 실정이다.
외감대상 기업은 2011년 1만9000여개에서 올해 2만5000여개로 늘었다. 최근엔 유한회사도 외감법 적용대상에 편입됐다.
일할 사람은 자꾸 줄어드는데 제한된 시간내에 외부감사를 진행해야 할 기업의 수는 산더미처럼 쌓여가고 있는 것이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업무량은 정해져 있는데 사람이 줄어들면 남은 이의 업무강도가 올라갈 수 밖에 없다"며 "때문에 회계감사 품질저하를 심각히 걱정해야 할 판"이라고 경고했다.
회계사 이탈에 우수 인재유입 줄어, 악전고투
회계업계는 인재유입 감소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손부족으로 감사품질을 유지하기도 힘든데 새로운 피 수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다.
공인회계사 시험 지원자수는 지난 2011년부터 작년까지 쭉 하향세를 그려왔다. 올해 1만282명을 기록하며 전년의 9315명 보다 다소 늘긴 했으나 전성기에 비하면 지원자 수가 턱없이 적은 편이다.
더욱이 'SKY'로 불리는 소위 명문대 출신의 회계사시험 준비생들도 점차 줄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회계사시험에 대한 관심도가 대폭 낮아지고 있다는 반증으로 보고 있다. SKY 출신 합격자는 2012년 296명에서 2015년 201명으로 90명 이상 줄어들었다.
서울대학교는 지난해 34명의 합격자를 배출하며 전체 합격자 순위 9위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2012년도 합격자 수는 59명, 2013년도 합격자 수는 43명, 2014년도 합격자수는 37명으로 해가 갈수록 줄고 있다.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는 작년 한해 각각 88명, 87명의 합격자를 만들어내며 전체 합격자 순위 1, 2위를 차지했다. 연세대는 2012년도 121명?2013년도 105명?2014년도 106명의 합격자를, 고려대는 2012년도 116명?2013년도 108명?2014년도 105명의 합격자를 내보냈지만 매해 그 수가 적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회계사시험에 합격하고 휴학 중인 예비회계사는 "시험에 합격하긴 했지만 수험생활 시작 전 주변에선 회계사는 전망이 밝지 않으니 취업준비를 하라고 뜯어 말렸을 정도"라며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에 도전해볼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낮은 감사보수가 회계업계 생태계 뒤흔들어"
회계업계는 우수한 인재들의 회계사 기피현상의 근본적 원인은 낮은 감사보수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회계학회에 따르면 물가지수를 반영한 공인회계사 1인당 감사보수는 2001년 1억5200만원에서 지난해 7800만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이는 미국의 8분의 1, 일본의 6분의 1에 그치는 낮은 금액이다.
빅4를 비롯한 회계법인들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감사업무보다는 비감사업무 매출비중 늘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삼일회계법인의 경우 2012 회계연도부터 2015 회계연도까지 4년간 평균 64.6%의 비감사 분야 매출비중을 유지했다. 삼정회계법인은 같은 기간 평균 60.3%의 비감사 분야 매출비중을 기록했다.
또 안진회계법인은 비감사 분야 매출비중을 2012 회계연도 58%에서 2015 회계연도 65.1%로 점차 높였다. 한영회계법인도 56%에서 60.5%로 비감사 분야의 무게감을 늘려왔다.
회계법인의 고유업무인 감사부문 보다 비감사부문의 매출비중이 더 높아지는 기형적인 성장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손성규 한국회계학회장은 "비감사매출이 감사매출보다 많아진 까닭은 회계감사 시장이 레드오션으로 변했다는 위기의식에 사업을 다각화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대형회계법인의 한 회계사는 "감사업무 자체가 고된 것보다 감사시즌(1월~3월)이라는 주어진 시간 내에 업무를 무조건 끝마쳐야 한다는 게 가장 큰 스트레스"라며 "시즌동안 밤낮·휴일 구분없이 일하다보니 과로로 쓰러지는 회계사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감사업무는 축구로 따지면 수비수 역할이어서 한번 실수해서 문제가 발생하면 크나큰 책임이 따른다"며 "업무량에 비해 보수도 적고 성취감도 낮은 편이라 동료들이 비감사 쪽 일을 하려든다"고 설명했다.
회계업계 관계자들은 "이같은 현상들이 반복되면 회계사의 위상과 처우도 그만큼 떨어지고 또다시 감사품질이 저하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들은 이러한 악순환을 막기 위한 환경조성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