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깨운 촛불, 앞날 밝히는 등불돼야

2016년 병신년이 막을 내리고 있다. 연초부터 육십갑자의 어감이 안 좋았던 올해, 끝자락까지 당혹, 갈등과 허탈함으로 점철되어 있는 느낌이다.

2016년 국내는 국회총선이 가장 큰 정치일정이었다. 당초 야당의 분열로 여권의 낙승이 기대되었다. 그러나 여당의 진실한 남자를 두고 벌인 공천파행으로 예상을 뒤엎고 야당의 대승과 여당의 소수당 전락으로 마무리되었다. 역시 정치가 그 때 그 때 움직이는 생물라는 비유가 실감이 난다.

여권은 힘을 잃고 우연한 계기로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 역대 정권 모두 이만한 스캔들이 다 있었지만 이번에는 급이 다른 태풍이 되어 전국을 흔들었다. 촛불시위가 연일 계속되고 서울 광화문에만 100만 이상의 시민이 모이는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그 만큼 심리적으로 상처받은 국민이 많았다는 반증이다.  

외신에서 질서를 지킨 시위를 두고 놀랍다는 보도를 하였다지만 최순실 게이트는 그 동안 애써 쌓은 국가 이미지와 국격을 떨어뜨렸다. 여당 의원도 찬성표를 던져 탄핵소추가 되었다. 탄핵 심판을 진행하는 안국동 헌법재판소 앞에서의 상반된 시위대의 함성으로 일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사법작용이 자기주장 관철을 위한 수단에 의하여 방해받는다면 이는 법치국가의 모습은 아니다.

이번의 최순실 게이트는 그 비리 내용보다는 국민의 원초적인 감정을 건드리는 배신적 행위라는 점에서 세상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치적은 탑 쌓아 올리는 것처럼 어렵지만 실각은 담벼락 무너지듯 한 순간이다.

여러 정치·사회적 변화가 예상되었던 내년 대선 정국도 당연히 그 여파로 한 치 앞도 가늠하기 어렵게 되었다. 안타깝기 짝이 없다. 그러나 경제와 민생을 뒷전에 놔둘 수는 없다. 미국 대선에서의 일반의 예상과 다른 트럼프의 승리로 세계질서가 혼돈에 빠져드는 느낌이다.

국가경제는 물론 안보지형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정말 우리는 위기의 한 가운데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국세행정만큼은 순탄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는 듯하다. 10월말 기준 작년보다 무려 23조가 넘는 세수를 달성하였다. 경제지표는 하락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니 성과에도 불구하고 염려가 앞선다. 초과세수의 요인은 국세청의 세무정보 빅데이터, 세무조사, 조세포탈 형사처벌의 강화이다. 이러한 외부요인으로 납세의식이 높아지는 결과를 낳겠지만 해결되어야 할 과제가 있다.

바로 조세입법이다. 조세 운용의 기본인 응능부담과 조세형평의 어긋남을 어떻게 풀어낼 것이냐의 문제이다. 근로소득세 면세자가 절반에 가까운데도 고소득자에 대한 세율만을 올린 올해 세법개정은 이 점에서 낙제점이다.

단기적인 세수 성과에 취해서는 안 된다. 장기적이며 혁신적이고 전문적인 접근만이 어려움을 헤쳐 갈 수 있다.

곧 새해를 맞는다. 정유년이다. 역사적으로는 다들 정유재란을 떠올리지만 '난'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격동의 한 해가 될 것이다. 국민 다수의 뜻이 어떤 것인지는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 가결로 반영되었다.

이제 차분해 지자. 대통령 탄핵 여부는 앞으로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 그 과정에서 헌법과 법률에 정한 절차가 시위나 정치권의 압력에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의 다수 여론은 대체로 옳을지라도 언제 바뀔지 모르는 변화무쌍한 것이라 규범적 역할을 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법에 의한 지배원칙은 여론보다 법이 우위에 있음을 선언한 것이다. 이제 바람을 외치는 광장의 역할은 먹거리를 만들어 내는 시장의 역할에 넘겨야 한다. 잠을 깨운 촛불은 이제 앞날을 밝히는 등불로 바뀌어야 한다. 그 것이 법치주의를 지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