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회계는 사기행위와도 같아…피해 국민에 전가"
분식회계로 인한 국가경제 피해 분식액의 40배 될수도
경제살리기 급한 추경예산 분식회계 피해 막는데 써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사건이 터지자 국민연금도 비상이 걸렸다.
국민연금은 2013년부터 올 3월까지 대우조선해양 주식과 채권에 1조5542억원을 투자했다가 주식값과 채권값이 폭락해 총 2412억원의 손실을 입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대우조선해양의 조작된 재무제표, 사업보고서, 감사보고서 등을 믿었다가 손해를 봤다"며 대우조선해양과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을 상대로 우선 50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나머지 손실은 고스란히 수급자인 국민에게 전가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민연금이 대우조선 분식회계 스캔들로 입은 피해액은 수급자 71만명분의 연금액과 맞먹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오문성 한양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기업의 분식회계 행위는 우리 사회를 교란시키는 사기와도 같다"며 "연금과 기관투자자들의 투자비중이 높은 대기업에서 분식회계가 이뤄질 경우 결과적으로 국민을 대상으로 한 사기행위가 되는셈"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분식회계가 이처럼 해당기업의 증권투자자에게 피해를 입히는 선에 그치지 않는데 있다. 대기업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회계부정은 증권시장은 물론 국가경제 전반에 걸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낮은 회계투명성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몸살
우리나라 증권시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회계투명성이 낮기 때문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오명 때문에 우리나라 기업의 주가는 비슷한 수준의 외국기업 주가에 비해 턱없이 낮게 형성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만우 고려대학교 교수는 지난 6월 한 세미나에서 "회계투명성이 제고되면 국가경쟁력이 올라가는 것뿐만 아니라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될 수 있어 외국자본 유입은 물론 자본시장이 활성화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지난해 발표한 회계투명성 분야에서 대상국 61개국 중 61위를 찍었다.
김희주 미래에셋대우 이사는 "기업이 분식회계로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잃으면 기업으로 들어갈 자금이 경직되고 결국, 이것이 우리 경제활성화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KB국민·신한·KEB하나·농협·IBK기업 등 시중은행들은 조선업 등 취약업종에서의 분식회계 이슈가 불거지자 자금지원을 망설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은 올 1분기 대우조선의 여신등급을 정상에서 요주의로 내리고 각각 충당금만 쌓고 있다.
특히 5대 은행의 올 3분기말 기준 대기업 대출잔액은 지난해 말보다 5조1532억원 가량 쪼그라들었다. 신규대출은 줄이고, 기존대출은 회수하는 방식으로 기업 대출자금 흐름을 죄고 있는 것이다.
외국계 은행과 투자자들은 더욱 냉혹하다.
지난 2003년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 이후에는, 일부 외국계 은행들이 우리나라 기업들에 대한 신뢰저하를 이유로 한국시장에 대한 여신거래를 중단하거나 한도를 줄이는 조치를 취한 바 있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분식회계로 인한 부실대출 문제가 대두되면서 매출채권 실사 등 현장점검이 강화되는 추세"라며 "은행 여신심사가 이처럼 빡빡해지면 기업 전반에 자금경색이 올 수도 있다. 돈이 돌지 않으면 침체된 경제가 그만큼 살아나기 어려워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분식회계로 조선업 구조조정 '골든타임' 놓쳐
분식회계는 기업의 구조조정 타이밍을 놓치게 만들어 손실을 더욱 키우는 주범이 되기도 한다.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을 놓쳐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가래로도 못막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이 분식회계를 하지 않았다면 2012년부터 부실징후를 모두가 알고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피해 또한 최소화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그러나 대우조선의 경우 2012년부터 3년간 5조7059억원에 이르는 분식을 일시에 터뜨리는 '회계절벽'으로 내몰아 개별기업의 부실문제가 아니라 국가경제의 뿌리까지 뒤흔들어 놓았다.
국회는 지난 9월, 11조원 규모의 추가경정 예산을 통과시켰다. 경기부진을 해소하기 위한 재정수요가 절실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추경예산의 절대부분을 대우조선 불끄기에 쏟아붓고만 것이다.
게다가 정부는 최근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을 위해 향후 4년간 25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조선업에 들어가는 정책자금만도 14조6500억원에 이른다.
이로 인해 재정을 기반으로 한 국가경제의 성장동력을 살리는 기능을 상실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우리경제는 외환위기 직전보다 경제지표가 악화된 상태인데다 '최순실 게이트'로 국정공백이 심각해 위기로 몰리고 있는데 정부가 동원할 '실탄'을 소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 최대주주 및 주채권자 자격으로 대우조선해양에 4조2000억원을 풀기로 대우조선과 지난해 10월 MOU를 체결했다.
하지만 이를 놓고 일각에서는 '분식회계로 부실을 자초한 기업을 살리기 위해 애먼 국민 혈세가 투입된 꼴'이라며 비난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 10월 8일 국회에서 열린 '조선·해운 구조조정 연석청문회'에서 "대우조선해양이 무너지면 국책은행 기반이 흔들리게 되고 정책금융에도 문제가 생겨 국민들이 타격을 받는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분식회계가 국가경제에 주는 피해는 대우조선해양의 경우처럼 분식회계 규모보다 월등하게 많아지는 승수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2001년 발생한 미국 '엔론' 사태 당시, 엔론사가 분식회계를 통해 은닉한 금액은 15억달러(약 1조8000억원) 수준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분식회계 여파로 투자자들이 입은 손해는 무려 600억달러(약 72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회계부정의 40배에 이르는 피해를 안겨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해관계가 많은 대기업의 분식회계가 미치는 파장은 기하급수로 커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정도진 중앙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경제는 IMF 구제금융 시절 못지않은 큰 어려움에 처해 있다"며 "기업들이 사회를 이롭게 하는 '사회조정책임'을 다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