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방향은 맞았지만 입법은 낙제점

헌법재판소의 위헌여부 판단을 거치는 우여곡절 끝에 지난 9월 28일부터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되었다. 온 나라가 어떻게  떠들썩하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공직은 물론 사회 전반의 주고받는 문화의 풍속도가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세법의 영역에서도 접대비 상한제 재도입 논의가 별 의미없게 되었고, 접대비 자체에 대한 규율도 재검토하여야 할 상황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 접대비로 사용된 카드의 결제규모는 무려 11조 7000억 원이었다. 업무무관비용 등의 판단도 수월하게 되었다. 좀 더 투명한 기업활동을 이끌어 내게 될 것이다.

김영란법은 입법 추진 당시부터 기대와 우려가 교차되었다. 많은 이들은 헌법재판소가 일부에 대하여서는 위헌선언을 하지 않을까 하는 전망을 하였으나 빗나갔다. 농어민의 타격, 경제부진의 이슈 제기도 법 시행을 막지 못했다.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를 바라는 국민 대다수의 여론이 압도한 것이다.

입법 계기가 옳은 방향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 여망대로 김영란법이 안착할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한다. 우리의 관행과 정서를 뛰어 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과잉대응이 나타나고 있다. 학교 운동회 날 선생님들은 따로 교무실에서 자비로 점심식사를 하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운동회는 왜 하는지? 운동회는 공식적인 학교 잔치다. 학생, 교사, 학부형 모두가 공감대를 이루고 하나가 되자는 것이 아닌가? 행사의 꽃인 점심식사를 참여자 모두가 함께 나누면 안 된다는 것인가? 이 정도가 되면 청렴을 넘어 이상하고 어색한 일이 되고 만다. 더 중요한 가치를 포기하는 바보 같은 행태이다.

필자가 독일 유학중이던 1990년경 연방하원 의장 리타 쥐스무쓰(Rita Süssmuth)가 그 전용차를 대학교수인 남편으로 하여금 이용하게 하였다는 사실이 드러나 그 연료비 상당액을 물어내게 되었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 그 당시 필자는 웬 나라가 째째하게 그런 것까지 문제 삼는지 이해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로부터 4 반세기가 지난 오늘,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당연한 것으로 법으로 받아들여야 할 상황이 되었다.

투명과 공정은 공직 관련이건 사적인 법률관계이건 현대 사회에서 막을 수 없는 추세가 되었다. 그렇지만 김영란법의 입법에 대하여 평가하라면 낙제점이다. 당초 입법을 추진하였던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의 취지와 많이 달라져 버렸다. 법안 명칭이 본인 이름법으로 불리고 먹어도 안 걸린다는 영란메뉴까지 등장하였으니 그 소회가 어떠할지 궁금하다.

먼저 김영란법은 그 적용대상을 너무 확대했다. 그 대상자가 400만이라니. 대한민국이라는 저수지에 그물을 너무 넓게 쳐버렸다. 물고기를 잡기 위해 이를 끌어올리려다가는 넘치는 물고기를 못 이겨 배가 뒤집힐 형국이다.

그물코가 넓은 곳도 있고 좁디좁은 곳도 있다. 누구는 빠지고 누구는 걸리느냐? 이러한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 란파라치가 한 몫을 노린다지만 이 역시 위반 여부를 골라내는 것이 간단치 않아 교육비용조차 건지기 쉽지 않을 것이다.

교통법규 사범처럼 CCTV, 블랙박스, 스마트 폰에 의하여 현장을 찍는 것만으로는 위반을 가릴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이 정도 수준의 법밖에 만들 수 없는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

청렴과 공정성을 끌어 올리는 것은 법만으로는 안 된다. 지킬 수 있는 법을 만들고 국민의 인식이 점차 높아지기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이미 우리는 법만능주의의 폐해를 숱하게 경험하고 있다. 적용 대상자를 너무 넓혀 놓아 누가 적용대상이고 누가 적용대상이 아닌지, 어느 것이 허용되고 어느 것이 그렇지 않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국가권익위에서 내 논 해설집은 이미 두꺼운 책이 되었다. 그리 복잡하여서는 잘 지킬 수 없다. 설사 위반하였다고 하여도 승복하기 어렵다. 알쏭달쏭하기 때문이다. 당초대로 직업 공무원만을 대상으로 규정하였다면 보다 명확하였을 것이다.

공직자가 솔선수범한다면 그 파급효과는 전 국민에 미친다. 논란이 많은 교직원, 언론단체를 그 대상으로 하지 않아도 실효성이 담보된다. 오늘과 같이 전국민이 들썩일 이유도 적다. 왜 이런 입법이 나오는가?

국회에 입법 전문가가 포진하여야 하고 그들의 검증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리 국회의 입법과정에서 개개 의원의 힘이 너무 세다. 법안이 정치적 계산과 포퓰리즘으로 인하여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른다.

우리는 앞으로 좋은 입법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낭비를 겪어야 하는가? 김영란법에서 다시금 법을 만드는 국회와 국회의원의 책무가 무엇인지를 되새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