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부패 없는 맑고 깨끗한 사회를 만들자는 국민적 공감대 속에 김영란법이 시행 한 주를 맞았다. 법 시행과정에서 많은 진통은 이미 예고됐지만 잇단 혼돈과 진풍경의 속출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의 풍속도가 깜짝 놀랄 정도로 바뀌고 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속칭 김영란법은 흔히 '3·5·10법'으로 인식되고 있다.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는 10만 원 이하로 지출하면 문제될 게 없는 줄로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직무관련성'이다. 직무관련성이 있을 경우 '3·5·10'은 적용되지 않는다. 나아가 말 한마디, 전화 한 통화 잘못하면 부정청탁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직무관련성에 대한 해석이 제각각이고, '청탁' 판단도 매우 주관적이다. 의례적인 인사로 말을 건넸다 해도 상대방이 '청탁으로 느꼈다'면 청탁이 될 수 있다.
세무조사를 받는 기업 대표가 회사를 찾아온 국세청 직원들에게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를 하거나, 학부모가 담임선생님을 만나서, 또는 홍보실직원이 기자에게 보도자료를 보내면서 “잘 부탁드린다”고 말했다면 이런 당부도 부정 청탁으로 간주될 수 있다.
법 시행 첫날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된 첫 신고는 한 대학생이 “취업한 졸업 예정자의 수업 불참을 학교 측이 묵인해 주고 있는 것은 부정청탁”이라는 건이었다. 이 일이 알려지자 일부 대학은 학칙 개정 등 대책 마련에 나섰고 기업은 채용 일정까지 조정하고 있다.
국정감사장 국회의원들도, 조찬회에 참석한 시·도지사도 식사 뒤 밥값을 각자 지불했다. 교육계 풍경도 달라졌다. 음료수를 비롯해 교사에게 건네려고 가지고 온 선물을 잠시 넣어뒀다가 다시 가져가라는 취지의 물품보관함이 학교에 설치됐다.
교사들은 수학여행이나 소풍, 체육대회 때 학부모로부터 간식을 받지 않는다. 대학병원들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환자청탁이나 의료진에게 주는 감사선물이 금지됐다.
먼저 매 맞는 것을 피하기 위해 당분간 대외 관계자를 일체 접촉 말라고 지시하는 기업그룹이 있는가 하면 공무원들이 민원인 만나기를 꺼려하고, 일선 공공기관은 중앙부처가, 또 청와대가 어떻게 하나를 보자며 서로 눈치만 살피고 있다고 한다.
경기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접대 문화'를 이끌었던 기업들이 바짝 몸을 웅크리면서 전국 골프장에서는 예약 미달·취소가 속출하고 있다.
고급 음식점은 하루 매출이 30% 이상 하락했고, 선물용 난도 주문량이 80%나 뚝 떨어졌다고 한다. '영란메뉴', '영란세트'에 이어 공연시장에서도 두 장에 5만 원짜리 '영란티켓'이 등장했다. 기업의 각 재단에서 운영하던 해외연수·저술지원 등도 중단 상태다.
세종시 지역에는 김영란법 위반자를 적발해 보상금을 타려는 '란파라치'(김영란법+파파라치)들이 몰려들어 월세까지 들썩거리고, 급기야 김영란법 위반을 피하는 요령을 가르치는 교육프로그램도 등장했다고 한다.
공직사회 등에선 모임이나 약속들이 줄줄이 취소돼 사회적 소통의 단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사회적 경제적 부작용을 줄여야 한다며 벌써부터 법의 대폭 개정 내지 보완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김영란법은 출발부터 순탄치가 않았다. 애초에 공직자만 대상으로 했다가 공공기관·사립학교 종사자와 언론인 등으로 확대되면서 과잉입법이란 비판이 뒤따랐다. 심한 반발에 부딪혀 헌법소원을 당했다가 헌법재판소의 합헌결정으로 간신히 살아났었다.
김영란법은 공직자 등의 직무와 관련한 금품수수를 원천적으로 금지한다.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1회 100만원, 연간 300만원이 넘는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형사처벌하는 내용이다. 다만 원활한 직무수행이나 사교·의례, 부조 등의 목적으로 제공되는 식사·선물․경조사비에 한해 '3․ 5․10'의 예외를 둔 것이다.
국회 심의과정에선 핵심조항의 하나인 '이해충돌 방지' 부분이 슬그머니 빠졌다. 공직자와 그 가족이 직권을 남용해 사익을 추구하지 못하게 하는 규정이 국회의원들의 지역민원 해결에 장애가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공직자 이외에 사립학교 교원과 언론인을 적용대상에 포함한 것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는 기관은 4만919개에 이르고, 대상 인원은 400만 명에 달한다. 법 적용 대상이 너무 광범위한 데다 '직무 관련성' 같은 핵심 개념이 모호해 초기단계에서 적잖은 혼선은 물론 공권력의 자의적 행사 우려도 적지 않다.
'부패의 먹이사슬' 선상에 있는 공직사회와 기업뿐 아니라 전 국민이 사실상 법 적용에 포함되다 보니 경제와 산업, 접대문화와 조직문화 등 사회전반에 변혁을 불러오고 있다.
접대·청탁문화의 만연은 공정한 의사결정을 왜곡시켜 신뢰를 훼손한다. 이에 따른 갈등 등 사회적 비용은 막대하다. 미비점의 지속적인 보완을 통해 김영란법을 연착륙시켜 신뢰회복이 사회적 비용 절감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도모해야 한다.
더러는 미풍양속과도 충돌하고, 시행과정에서 소비위축과 같은 경제적 피해도 예상된다. 사회적 약자를 삶의 터전에서 내모는 등 부작용도 속출한다. 하지만 사회투명성과 사회자정기능을 강화해 사회생산성을 높이는 긍정적 측면도 소중하다. 골프장도 그린피를 낮추고, 캐디·카트 선택제 등으로 문턱을 낮춰 대중들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 공간으로 거듭날 수도 있다. 좋은 영향은 키우고 나쁜 영향을 최소화하는 '운용의 묘'가 절실하다.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부정청탁과 금품수수는 정치권, 고위공직자, 신흥재벌, 법조 엘리트 등이 권력을 남용하거나 권력과 유착․결탁하는 권력형 부패가 핵심이다.
김영란법이 전문직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직원, 언론인 등에 화살을 돌리고 정작 부패의 핵심근원인 권력형 부패 척결에 다가가지 못한다는 비판도 이래서 나온다. 일상적 규제의 테두리 밖에서 횡행하는 특권층의 은밀한 부정부패 고리를 차단하는 구체적 장치를 보완하고 이해충돌 관련 조항이 빠진 '반쪽짜리 법'이란 오명도 씻어야 한다.
적용 대상과 사안의 광범위함에서 오는 초반의 혼란은 불가피하다. 이 과정에서 자칫 실효성 없는 식물법안으로 전락하거나, 청탁과 무관한 개인 활동까지 지나치게 제한하는 '괴물법'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사회의 부패는 세계 9위로 랭크될 정도다. 김영란법 시행은 우리사회 고질인 접대․청탁문화를 개선해 투명․공정사회 실현을 앞당기려는 사회적 대장정(大長征)이다. 첫 술에 배부를 수가 없고, 꾸준한 인내와 국민적 동참, 지속적인 법규 보완을 통해 새로운 문화, 새로운 관행을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