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쏘는 '부자감세'

부자감세.

대다수의 국민들은 정서적으로 “이건 안 돼”라는 생각을 갖는다. 있는 사람이 더 많은 세금을 내야하는 것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기 어렵다. 오히려 “얼마나 많이?”가 항상 논란의 대상이다.

증세는 정치인으로서는 치명적인 공약이 될 수 있다. 이미 여러 사례에서 입증이 된 학습효과이다. 현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라는 난해한 공약도 결국 증세 딜레마를 피하자는 것이었지만 결국 복지에는 돈이 든다는 본질을 피해가지 못하였다.

서민감세, 부자증세는 정치권에서는 일반의 지지를 얻는데 효과적이다. 그래서 뒷감당 없이 들고 나오는 정책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감세와 증세는 해법이 매우 어렵다. 그 해법을 마련하는 것은 재정학자, 조세전문가의 몫이지만 그들도 각기 생각이 다르다.

부자 증세는 프랑스에서 부자들이 나라를 떠남으로써 실패했지만 미국 대선에서는 새로이 부자증세가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법인세는 세계 각국이 감세기조를 취하고 있음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야당이 법인세 증세 의원입법을 발의하였다.

증세 혹은 감세로 인한 경제효과도 시대와 각 나라의 경제환경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정치적 이슈나 계층논리에 빠져 정작 최적 기준을 찾아내려는 연구와 논쟁은 드물다. 우리나라에서 '부자감세'는 세율인하 주장을 막아내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이다.

정부가 경제성장이나 활성화를 위한 정책적 목적에서 세율 인하를 들고 나오다가도 반대 측에서 '부자감세'라는 무기를 쏘아대면 움찔한다. 무엇인가 큰 잘못된 행위를 하는 것처럼.

2008년 이명박 정부는 증여세 및 상속세의 세율을 10% 내지 50%인 것을 7% 내지 34% 정도로 낮추는 세법개정안을 내놓았다. 당시 건설경기가 침체되고 미분양 아파트가 넘쳐나자 증여를 권장하기 위하여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국회 심의과정에서 부자감세라고 외치는 야당의 방어벽에 막혀 결국 실현되지 못하였다.

그 때 개정안이 통과되었다면 많은 부자들이 적은 증여세 부담에 끌려 자녀들에게 아파트를 사줌으로써 건설경기를 되돌렸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증여세율이 높으면 젊은 세대에 대한 증여를 주저하게 함으로써 투자가 활력을 잃고 경기가 침체로 이어진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이른바 동결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최근 혹서로 인한 에어컨 가동으로 전기요금 폭탄이 우려되자 요금 누진제를 완화하자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담당 산자부 간부는 이에 대하여 누진제도를 완화하면 1%를 위한 부자감세가 되는 것이라고 하면서 이를 반박하였다. 왜 여기에 부자감세를 끌어 들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근본을 모르는 것이 아닌가?

전기수요자인 국민에게 전기 공급은 한전이 거의 독점하고 있다. 요금도 정해진 대로 내야 한다. 국민 개개인이 한전으로부터 상품인 전기를 사는 계약인데 공공적 성격으로 개인이 그 내용을 결정할 수 없도록 법에서 제한하는 것뿐이다.

공공적 성격이라고 하더라도 1KW 당 11.7배가 되는 것은 정당화하기 어렵다. 이러한 일이 민간영역에서 벌어졌다면 갑질 중의 상갑질로서 배겨내지 못할 것이다. 이미 일각에서 공급약관이 무효라고 하여 전기요금 반환을 청구하는 집단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산자부는 아직도 전기요금을 일반이 부르는 대로 전기세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감세라는 발상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는가? 세상 변하는 줄 모르고 아직도 구닥다리 같은 사고에 얽매여 있는 관료층이 걱정스럽다.

부자감세는 이런 데 쓰는 무기가 아니다. 그 뜻이 무엇인지 어느 경우에 써야 하는지 제대로 알고나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