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 철회를 압박하기 위한 중국의 보복조치가 가시화하고 있다. 중국당국이 공식적으로 어떤 지침이나 제재조치를 취한 것은 없다. 하지만 보복조치가 시작됐구나하고 우리가 느낄 만한 낌새들은 도처에서 감지되고 있다.
중국 당국은 지난 3일 한국인의 상용 비자 관련 초청장 발급을 대행해오던 자국 업체의 자격을 취소하고 중국 내 파트너 기업으로부터 직접 초청장을 발급받도록 했다. 중국 내 파트너가 없는 우리 기업인 등은 하루아침에 상용 복수비자 발급받는 데 전에 없던 불편과 업무상 차질을 빚게 됐다.
게다가 중국비자센터는 16일부터 단체비자를 신청하는 경우 여권 원본을 제출해야 한다고 각 여행사에 지난 12일 통보했다. 중국비자센터는 주한 중국대사관으로부터 비자 발급 업무를 위임받은 기관이다. 지금까지는 여권사본을 제출하면 됐지만 앞으로는 원본이 아니면 비자발급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주한 중국대사관 측은 중국의 새 출입국 관리법 규정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앞으로 한국인들의 중국여행은 불편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중국을 여행하는 한국인들의 90%가량이 단체 여행객이기 때문이다.
우리 연예산업계는 이미 비상이 걸렸다. 중국의 보복조치로 중국 내 한류가 크게 위협받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는 지난 4일자 인터넷 판에서 한국 드라마와 한국 스타가 중국에서 차단되는 것은 전적으로 사드 배치에 따른 한국의 책임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때맞추어 중국의 미디어, 엔터테인먼트의 관리와 통제를 담당하는 광전총국이 9월부터 자국 내 자치성 방송사에 중국 내 한류스타의 출연을 금지하는 공문을 보냈다는 소문이 국내 연예산업계에 나돌기 시작했다.
실제로 한류 스타들의 중국 방문과 촬영 스케줄 취소가 잇따르고,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이돌 스타를 포함해 한류 연예인들의 추가 방송 제한 소식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이 한국에 대한 무역보복 조치를 고려하고 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한국 상품과 서비스의 수입제한, 중국의 한국 내 투자와 기업인수 중단, 중국 내 전기차 배터리 생산 인증 명단에서 한국 업체를 제외하는 조치도 고려 중이라고 한다.
표까지 다 팔린 한류 스타의 대규모 팬 미팅이 행사 사흘 전 갑자기 취소되는 등 한국 연예인의 공연 취소, 여태까지 잘 내주던 상용 복수 비자에 대한 심사강화 및 사실상 발급 통제, 없어서 못 팔던 한국 화장품에 규정량을 넘는 유해물질이 들어 있다며 통관검사가 강화됐다는 뉴스 등은 여러 분야에서 '저강도' 보복이 진행 중임을 체감케 한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당국은 “공식 지침이 내려간 건 없다. 경제보복 조치가 내려진 것도 없고 한류 행사도 대부분 예정대로 잘 진행되고 있다”고 애써 태연해 한다.
물론 이에 관한 중국 정부의 공식발표나 보도는 전혀 없다. 하지만 은근슬쩍 내부지침만 내리면 산하기관이나 관련단체가 알아서 하는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 측 그 누구도 정확한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고 우리 스스로 보복조치가 시작됐구나하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 중국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사드 반대를 위한 중국 관영매체들의 여론몰이는 도를 넘고 있다. 한국정부의 사드 배치 강행으로 서로 배척하는 분위기가 심화되면 정부가 나서지 않더라도 국민들이 알아서 등을 돌릴 수 있는 나라가 중국이라고 한다. 중국 현지에서 사업을 하거나 중국인들과 실무로 맞닥뜨리는 관계자들일수록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대국답지 않은 치사한 보복'을 규탄하며 '보복할 테면 해 보라'고 오기도 부려 볼 법도 하지만 가뜩이나 중국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는 우리 기업의 명을 재촉할 뿐이라는 데 우리의 고민이 있다.
특히 중국 내 한류에 대한 제재 조치는 정치적, 군사적 부담이 없는데다 한국 연예산업의 대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아 중국 입장에서 압박용 효과가 크다. 한류의 영역을 연예산업에서 문화콘텐츠, 뷰티, 관광, 푸드까지 확대하면 그 의존도는 막대하다. 현재 주연급 한국배우들이 출연하는 중국 자체 드라마만 50개가 넘고, 2015년 화장품 산업의 해외 매출액 총 2조9000억 원 가운데 절반이 중국인 고객이다.
한류는 문화자본의 논리에 따라 대규모 투자 자본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쉽게 발을 빼기가 어렵고, 제재할 경우 물론 중국의 부담도 적지 않지만 중국의 문화콘텐츠 산업은 대체가능한 자원들과 여유 자본이 있다는 점이 우리와 다르다고 한다.
중국은 사드 배치가 한국에 이익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동북아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냉전의 유령'이라고 주장한다. 사드 배치가 중국에는 해가 없다는 얘기는 한국의 교활한 변명에 불과하며, 중국이 북한 핵을 막지 못해 사드를 배치하게 됐다는 '중국 책임론'에 대해서는 “핵 문제는 중국이 아닌 미국과 북한의 문제”라고 일축하고 있다.
한국이 사드 배치를 계속 고집하면 중국은 유엔 차원의 대북제재 공조 대오에서 이탈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이는 최근 북한 미사일 발사규탄 안보리 성명채택이 중국의 몽니로 불발된 것으로 현실화하고 있다.
중국은 의리에 입각한 '관계'를 중시하고 '군자의 복수는 10년도 늦지 않다'((君子報讐十年不晩)는 속담이 일상적으로 통용될 정도로 보은과 보복 문화의 뿌리가 깊은 나라다. 중국의 보복이 두려워 사드를 포기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현실화하고 있는 보복조치에 대비하며 우선 피해를 최소화하고, 아울러 출구전략과 근원적인 해법을 찾자는 얘기다.
국가 안보를 위해 한류산업 피해 쯤 하는 판단은 매우 위험하다. 문화적 유대가 깊어지면 한중관계를 문화전략으로 풀 수도 있다.
사드 논란의 핵심은 주한미군에 사드가 배치되는 순간 한반도는 남북한 관계를 넘어 미 중간 대결의 전초기지로 바뀐다는 데 있다. 사드가 배치되면 핵과 미사일 개발을 위한 북한의 행동반경은 넓어지고 북한을 억제할 우리의 수단은 좁아진다. 중국이 사드를 철수시키기 위해 북한에 압박을 가할 것이라는 기대는 현실성이 없다. 한·중 관계 냉각 → 대북제재 공조 와해 → 한국의 미·일 편중 외교 심화 → 북한의 핵무장 강화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사드가 배치될 내년 말까지 1년 넘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사드배치를 국익을 위한 카드로 활용하며 북한과 중국, 미국을 상대로 출구전략을 찾아야 한다. 사드배치로 중국의 보복과 동북아 신냉전을 자초할 것이 아니라 통 큰 외교 전략으로 사드배치의 필요성 자체를 없앨 수 있다면 이야말로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진정으로 지키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