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 고' 열풍이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알파고 열풍에 이어 4개월 만에 또 다른 '고'(GO) 열풍이다.
리우올림픽 선수촌에 입촌한 선수들이 단단히 뿔이 났다고 한다. 선수촌 숙소의 수준 못 미치는 설비 때문이 아니고 선수촌에서 포켓몬 고가 안 되기 때문이란다.
포켓몬 고는 닌텐도의 포켓몬 캐릭터를 바탕으로 구글의 소프트웨어 개발 사내벤처기업 나이앤틱이 만든 위치기반 증강현실(AR)게임이다. 사용자가 눈으로 보는 실제 배경에 3차원 가상 물체를 겹쳐 보여준다. 나이앤틱의 최고경영자 존 행크는 지구촌 곳곳의 위성지도 정보를 제공하는 '구글 어스'를 만든 사람이다.
스마트폰을 들고 현실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화면 속에 등장하는 작은 몬스터를 포획 수집하고 훈련을 시켜 서로 싸움도 벌이는 게임이다. 포켓몬은 포켓몬스터(호주머니속의 괴물)의 줄인 말이다.
지난달 6일 미국과 호주 뉴질랜드에서 처음 출시되자마자 곧바로 스마트폰 소프트웨어(앱) 장터 1위에 올랐고 열흘 만에 35개국으로 확대됐다. 게임에 정신이 팔려 교통사고가 잇따를 정도로 몰입도가 높다.
정식 서비스가 안 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100만 명 이상이 내려 받기를 했다. 강원 속초시와 양구군 등 지역 구분상 틈새로 게임이 가능한 곳은 전국에서 몰려드는 20․30세대들로 깜짝 특수도 누리고 있다.
현실에 가상 이미지를 더하는 증강현실이나 위치정보 서비스는 사실 그리 새로운 기술은 아니다. 포켓몬 고의 매력은 대중화되지 않았던 증강현실 기술에 기존 캐릭터를 조합해 인간의 욕망이나 즐거움을 배가할 수 있는 새로운 인간 경험의 공간을 창출한 데 있다.
게임 이용공간을 가정이나 실내가 아닌 야외로 확대시켜 기존 틀을 깨뜨렸고, 옛 것과 최신의 것 또는 서로 다른 영역에 있던 것들을 창의적으로 융합시켜 누구에게나 친숙한 캐릭터로 게임 이용자들의 호기심과 재미를 배가시킨 점이 돋보인다고 한다.
포켓몬 고의 아이디어는 2014년 4월 1일 구글의 사내 만우절 조크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구글의 위치정보와 증강기술을 바탕으로 세계인들에 가장 친숙한 캐릭터를 융합해 모바일게임을 벌이자는 '애들 장난' 수준의 구상이었다.
일본 민담 속 요괴(妖怪)를 어린이용 캐릭터로 발전시킨 포켓몬은 1996년 닌텐도 비디오게임으로 탄생해 20년간 진화를 거듭하면서 애니메이션, 장난감, 캐릭터, 학용품, 교육, 서비스업 등 다방면으로 진출한 세계화된 브랜드다. 주식회사 포켓몬은 닌텐도의 관련회사다.
구글은 사내 벤처기업이었던 나이앤틱랩을 2015년 분리시켜 독립회사 나이앤틱을 설립토록했다. 외부 기술기업들이 구글이라는 공룡기업과의 제휴를 꺼리기 때문에 작은 독립회사를 만들어 이를 내세우면 쉽게 손잡을 수 있다는 전략에서였다.
나이앤틱은 증강현실게임 인그레스(Ingress)를 기반으로 포켓몬을 캐릭터로 한 증강현실 모바일게임 개발계획을 작년 9월 내놓았고 다음 달 구글과 닌텐도, 주식회사 포켓몬이 2천만 달러 투자에 합의하면서 포켓몬 고가 탄생하게 됐다.
포켓몬 브랜드는 출범 후 누적 매출은 4조8000억엔(약 52조원), 이 가운데 55%가 해외에서 팔렸다. 캐릭터를 팔아 자본금의 600배 넘는 매출을 매년 올리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모바일 게임 포켓몬 고의 열풍으로 더 큰 수익 창출은 불문가지다.
포켓몬 고의 성공으로 캐릭터 제공과 투자 등 게임 개발 과정에 참여했던 닌텐도의 기업 가치도 덩달아 치솟고 있다. 닌텐도는 나이앤틱과 포켓몬의 주주이며 포켓몬 고 앱의 13% 지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켓몬 고 광풍에 접하면서 게임 강국임을 자처하는 우리는 왜 이런 게임을 만들지 못하느냐는 자성의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포켓몬 고 출시 이전에 여러 국내 기업이 다양한 증강현실 게임을 선보였고, 온라인 게임 분야에서 아이템 판매라는 독창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글로벌시장을 노크한지 오래다.
포켓몬 고 열풍에 자극 받아 한국 토종 캐릭터 뽀로로가 등장하는 '뽀로로 고'(가칭)의 출시 얘기도 들린다. '뽀로로 고'는 재미 중심의 포케몬 고와 다르게 교육적 요소에 집중할 것이라며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포케몬 고의 아류를 넘어설지는 두고 볼 일이다.
세계적 콘텐츠로 롱런하는 포켓몬은 하루아침 반짝 아이디어로 생겨 난 게 아니고 오랜 전설과 100년 이상 쌓아온 인문학적 토대 위에 현대 스토리 산업이 접목된 성과물이다.
일본은 1800년대부터 인문학에 투자해 소위 '오타쿠'로 불리는 인재들을 길러냈고, 이들이 자국 문화의 스토리텔링을 풍부하게 만들어왔다. 단순한 게임을 넘어 일본의 설화·민담 등 뿌리 깊은 인문학 콘텐츠와 맞닿아 있어 스토리 구도가 치밀하고 전 세계 관객과 공감할 수 있는 '킬러 콘텐츠'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우리가 충분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매번 뒷북만 치게 된 것은 우리만의 강점을 살린 독창적 아이디어를 내놓지 못하고, 외국 흐름을 뒤따라가는 경향이 팽배돼 있기 때문이다.
게임 산업을 키우기보다는 게임을 사회악으로 보는 편협한 시각도 물론 장애요인이다. 게임 산업에 대한 과도한 정부규제 때문에 게임 업체들이 연구개발 보다 '권력에 줄 대는' 일에 몰두하는 상황도 빚어진다. 포켓몬 고 광풍에 전 세계가 들썩이던 때 국내 최대 게임 업체 넥슨 창업주의 검찰소환은 국내외 게임 산업 현실을 극명하게 대비시켜줬다.
우리 업체가 만든 아이디어나 콘텐츠가 글로벌 수준에서 수용되려면 글로벌 이용자들이 쉽게 다가가고 공감할 수 있는 지적 자산을 다양한 방식으로 융합하는 시도들이 필요하다.
'뽀로로'같이 성공한 상품도 있지만 이는 인문학적 기반이 없는 외톨이 창작물에 가깝다. 상업적 목적에서가 아니라 즐거움과 새로움을 지향하는 인간의 본질적 욕망에 재미와 스토리텔링으로 다가가는 세계적 콘텐츠로 발돋움이 절실하다.
일본이 캐릭터 산업을 내다보고 요괴학에 몰두한 건 아니다. 자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학자들의 깊은 애정, 그 전통문화를 대중에게 알리려고 노력한 만화가들의 집념이 백 년 넘게 축적되면서 국경을 넘어 세계인들의 공감과 사랑을 얻어낸 것이다.
“한국은 연구의 필요성을 가슴으로 깨달으려 하기보다는 돈으로 승부를 보려 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 경직된 문화가 문제”라고 세계적 과학저널 네이쳐는 꼬집었다.
포켓몬 고 열풍은 하찮은 '애들 장난'에서 글로벌 '문화 현상'으로 치닫고 있다. 인간의 놀이, 게임 산업이야말로 폭넓은 인문학적 토대와 숨이 긴 문화적 접근이 긴요하다는 것을 포켓몬 고는 새삼 일깨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