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금 통장의 위력을 즐겨보자

누구나 어릴 때부터 자신만의 보물창고가 있었다.

어떤 아이는 조그만 상자에다가 장난감이나 특이한 모양새의 돌이나 자신만의 메모장을 넣어두고 또 어떤 아이는 항아리에 딱지나 구슬 같은 것을 잔뜩 넣어두고 몰래 숨겨두고 꺼내서 보곤했다.

여자아이들은 일기장에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마음을 담은 일기를 쓰고 사진도 붙이고 해서 책상 밑에 꼭꼭 숨겨두고 혼자만 꺼내보곤 했었다.

하지만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러한 은밀한 나만의 그 무엇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점점 나의 모든 것이 공개되고 투명화 되어서 단돈 현금 10만원도 아내에게 사전 공지나 논의 없이 쓰는 것이 부자연스러워 지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물론 얼마 정도 쓴다고 뭐라고 하지는 않지만 가계부를 쓰기 때문에 나중에 꼭 지출 목적을 얘기해야 할 경우가 생기더란 말이다.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모든 자산을 공개하고 함께 미래를 설계하는 모습이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지만 때로는 나도 나만의 은밀한 보물창고로 비상금의 존재를 만들어 놓고 싶은 생각이 가끔은 든다.

어른들의 보물창고는 바로 비상금이 아닐까 싶다.

어느 할머니가 장판 밑에 수백 만원을 현금으로 넣어두었다가 집이 불타는 바람에 그 돈을 거의 날려버린 조금은 황당한 사건도 본 기억이 난다.

그렇게 돈을 별도로 모아두고서는 아내에게 깜짝 이벤트를 할 때나 정말 나를 위한 지출을 하고 싶을 때 써보는 짜릿함을 느껴보는 것도 노동의 동기부여가 아닐까 싶다. 이러한 개인적인 비상금 외에 필자가 강조하는 또 하나의 '비상금'의 개념은 바로 갑작스런 지출을 해야 할 때 사용할 수 있는 '긴급예비자금'을 의미한다.

갑자기 가족 중에 누가 아프거나 오늘 내일까지는 아니지만 생각지도 못한 지출을 2~3주 안에 해야 할 경우에 과연 얼마나 현금 동원이 가능한지 생각해보자. 마이너스 대출을 받거나 현금서비스를 받는 것을 빼고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100만원 이상의 순수 현금을 동원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몇 백 만원씩 은행의 입출금 자유로운 통장에 넣어두고 별 생각 없이 인출해서 쓰는 가정도 많지만 효율적인 자산관리의 관점에서는 후한 점수를 줄 수 없다.

이론적으로는 CMA나 MMF 같은 입출금이 자유로운 금융상품에 월 평균 수입의 250% 정도의 자금을 넣어두라고 한다.

만약 월 평균 500만원을 버는 직장인이 있다면 대략 1250만원 정도의 돈을 넣어두라는 뜻이다. 연세가 많아서 병원비 등이 많이 드는 경우 외에는 250% 정도의 비상금 통장은 좀 부담스러운 수준이라고 생각되고 월 평균 수입의 100~150% 정도의 자금을 잔액으로 유지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이 정도 금액이라도 언제든지 현금으로 인출할 수 있게 잔액으로 가지고 있는 가정도 많지는 않기 때문이다. 월급이 입금되자마자 썩은 고기에 달려드는 하이에나처럼 여기저기서 자동이체나 납부자 이체,혹은 결제라는 명목으로 내 통장의 돈을 빼가기 때문이다.

주로 보너스를 타는 달이나 별도의 성과급을 받는 달에 미루었던 대출 상환이나 각종 소비성 지출을 하는 것도 좋지만 이제는 우리 집의 보물창고 즉,비상금 통장을 채워놓는 것을 습관화 하는 것은 어떨까?

맘이 울적할 때 아무런 부담 없이 아내와 며칠 훌쩍 여행도 갈 수 있고 정말 아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옷이나 구두를 혼쾌히 사줄 수 있고 생각지도 않게 차의 타이어를 갈아야 할 때에도 '뭐니 뭐니 해도 우리 가족의 안전이 최고지!'하면서 부담없이 타이어 4개를 동시에 갈아버릴 수 있으니 말이다.

투자의 관점에서도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해 코스피시장 전체가 폭락을 보이고 있었지만 대표적인 방산주인 빅텍과 스페코 같은 회사들은 주가가 상한가를 기록한 기억이 있다.

이런날 위험스럽게 마이너스통장에서 혹은 현금서비스를 받아서 주식을 좀 사는 것보다 미리 쌓아둔 우리가정의 '비상금'통장에서 돈을 꺼내 번개투자를 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속담에는 '고기 보고 기뻐만 말고 가서 그물을 던져라'라고 해서 미리 준비를 해 놓으면 좋은 결과가 있다는 말이 있다. 또 '십 리 길에 점심 싸기'라는 속담이 있는데 십 리밖에 안 되는 가까운 데를 가더라도 점심밥을 싸 가지고 다닌다는 뜻이다. 무슨 일에나 준비를 든든히 할 것을 알려주는 내용이다.

투자를 하고 싶어도 소액의 돈이라도 없으면 충분한 총알을 준비 못해서 총을 못 쏘는 병사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지금부터라도 나와 우리 가정의 '비상금 통장'을 만들어서 무언가 든든함과 틈틈이 돈 모으는 재미를 느껴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