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4차 핵실험을 도발한지 2주가 지났다. 한국 미국 일본과 유엔 등 국제사회가 ‘강력하고 포괄적인 제재’를 벼르며 동분서주하고, 김정은을 겁주기 위해 미국의 전략폭격기 B52가 한반도 상공에서 한차례 무력시위를 벌이고 돌아갔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이 가장 두려워한다는 대북확성기방송을 재개시키고 양자 및 다자차원에서 대북 제재강화를 다짐했다. 중국에 대해 “북핵(北核) 불용 의지를 실제 조치로 보이라”고 강력하게 촉구하고 한·미 정상간 통화를 통해 전략자산의 추가전개와 연합방위력 증강도 얻어냈다.
즉각적이고 단호한 응징으로 보이지만 그 내용은 ‘허울뿐인 제재’ 의 되풀이다.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이후 북한이 10여 년 동안 4차례나 핵실험을 했지만 판박이 대응으로 일시 부산을 떨었을 뿐 아무런 변화도 이끌어내지 못한 채 북한의 핵능력만 고도화시켜왔다.
박 대통령은 “이번 북한 핵실험이 북핵 문제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대응이 이전과 달라져야 한다”고 역설했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전과 차별화된 강력한 대응조치를 결의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임기 말의 오바마 행정부는 북핵문제와 관련해 새로운 접근법을 추구할 의지와 여력이 없어 보인다. 북핵문제의 책임을 중국에 돌리고 보다 강력한 제재에 동참하도록 촉구하는 데 반해 중국은 미국의 대화 거부와 평화협정 체결 거부 등 강경한 정책이 북한의 도발을 자극했다는 ‘미국 원인론’으로 맞서고 있다.
미국이 상응하는 반대급부를 제공하지 않는 한 중국이 협력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강력한 제재는 북한과의 관계를 악화시키거나 북한의 붕괴를 촉발시킬 것인데, 그 어느 것도 중국의 이익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다.
심지어 중국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아래 북핵문제를 의도적으로 키우고 있다고 의심하는 처지다. ‘핵을 가진 북한’의 존재가 한·미·일 3각 동맹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6자회담 무용론이 나돌고 ‘북한 도발로 바뀌는 것은 안보리 성명 앞에 붙는 번호뿐’이라는 자조도 나온다.
지금까지 북한 비핵화의 대전제는 일정한 조건이 주어지면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6자회담과 같은 다자구도로 북한을 달래고 압박해왔지만 북한은 붕괴하지도, 핵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국제공조도 결코 원만하지 않았고 중국의 역할도 기대 이하였다. 핵무기와 발사체의 개발이 진일보한 지금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더 더욱 낮아졌다.
‘수소탄 실험’으로 북핵의 질적 수준이 달라진 만큼 정부의 대북정책에도 질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북핵을 이고 살 수는 없다’는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현실은 ‘북핵 있는 현상 유지’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북 핵실험에 ‘놀라지 않았다’는 국민이 ‘놀랐다’는 국민의 두 배에 달한다는 여론조사도 놀랍다.
북한 핵은 우리가 아무리 부정해도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북핵을 제거하려면 북한 체제를 종식시키는 길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의 핵 개발이 대안이 될 수 있지만 국제정치의 현실과 한국 경제의 높은 대외 의존도, 국가 신뢰도 등을 감안할 때 이 역시 실현이 불가능하다. 핵을 보유한 북한을 상대로 우리의 생존과 민족의 공영을 확보해야하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중국에 사정하고 미국에 의존하는 수동적 자세, 막연한 북한붕괴론이나 흡수통일 기대는 북한의 반감만 키우고 핵 문제 해결을 위한 현실적 접근을 막을 뿐이다.
북핵문제는 핵을 제거하는 조건 위에서가 아니라 핵을 무력화(無力化)하는 방안을 통해서 접근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북핵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차선책일지언정 점진적이고 실용주의적인 비핵화의 길을 모색하는 것 말고는 달리 길이 없어 보인다.
한·미동맹이나 한·미·일 공조의 강화는 중국의 협력을 유도하기는커녕 중국을 소외시킬 가능성이 크다. 북핵의 대안으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추진되고 있지만 사드 배치는 효과에 비해 비용이 과다하고 중국과의 관계를 훼손하기 마련이다.
한·미·중이 함께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북 압박 및 유화조치를 마련해 양국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제재와 동시에 평화협정과 같은 외교적 방안을 함께 논의해 우리의 관심이 북한의 붕괴가 아닌 비핵화에 있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북한 핵무기의 완전하고도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해체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북한 정상국가화와 연동해 진행함이 현실적이다.
현재 우리에게는 ‘통일대박’ 보다 평화 회복과 정착이 더 시급하다. 통일이 핵과 인권 등 북한 관련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지만 급격한 통일은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고 수반되는 비용과 희생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
우선적으로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면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호혜적인 남북 경협을 증진해 간다면 궁극적으로 평화통일로 이어질 수 있다. 북핵을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그것을 무력화할 수 있는 대안을 남북관계와 통일을 내다보며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북한 핵은 우리의 사활이 걸린 우리의 문제다. 주변 강대국들에게 북핵문제는 그들의 많은 국익들 중 하나일 뿐이다. ‘국제사회와 공조해 대북 제재를 강화하고, 한·미 동맹으로 북한의 도발에 대비한다’는 판에 박힌 발상으로는 결코 북한 핵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우리 입장에서 북한 핵 능력의 지속적인 증강을 중단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북한의 핵 능력이 증대할수록 한국의 대미 안보 의존도는 더 높아지고,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한국의 전략적 접근은 더 어려워져 문제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북한의 최대 관심사인 체제 안전 보장과 한국·미국 등이 추구하는 북한 비핵화를 맞바꾸는 ‘빅딜’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북한에게 체제안전 보장을 약속하고 지속적인 체제안정 보장에 그들 핵무기가 핵심 걸림돌임을 인식시켜 핵무기에 대한 전략적 변화를 유도하는 방안이다. 핵은 보유하기도 어렵지만 이를 포기시키기는 더욱 어렵다.
북핵문제에 대한 해답은 평화와 화해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북·미 간 대화를 중재하고, 북핵 문제에서 미·중 협력을 유도하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느냐다. 남북한 관계 변화와 함께 미․일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이 선제적으로 협력구도를 제시하는 근본적 발상의 전환이 절실한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