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12월. 신호대기 중인 차량을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해 피해차량 운전자 A씨가 사망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현장 감식 결과 사고 당시 시속은 37Km에 불과했고, A씨의 아내 B씨는 남편 명의로 14개 보험에 가입해 6억원을 수령한 것이다. 법의학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피해자가 현장에서 사망할 정도의 치명상은 입지 않았다"는 소견을 전해왔다.
보험사는 경찰에 재조사를 요청했다. B씨와 가해자가 내연 관계였음이 밝혀졌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가해자는 "사고 전 B씨가 '남편에게 약을 타먹였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B씨는 아들과 공모해 내연남에게 300만원을 주고 고의로 교통사고를 내달라고 부탁했던 것. B씨와 아들은 살인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2013년 1월. 일가족 4명이 잠을 자던 중 화재가 났다. 부부는 사망했고, 딸은 중태, 아들은 경상을 입었다. 하지만 한 가족을 덮친 사고는 예고된 비극이었다. 부부는 총 6건 11억7000만원의 생명보험 및 화재보험에 가입돼 있었다.
남편 C씨는 건설업을 경영하며 과다한 부채로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다. 아내 D씨는 남편 명의로 고액의 사망보험을 여러 건 가입한 후 보험금을 수령할 목적으로 술에 취한 남편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불을 질러 살해했다. 하지만 아내 D씨도 미처 불을 피하지 못해 사망했다.
□ 날로 진화하는 보험사기, 함께 진화하는 보험사= 보험사기 범죄가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과거의 보험사기가 경기침체에 따른 생계형 범죄였다면, 최근에는 가족을 대상으로 살인·상해까지 저지르는 반인륜적 강력범죄가 늘고 있다.
보험사기 가담자도 학생, 교직원, 공무원 등 사기 성향이 낮은 일반인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에 보험금 누수액은 2010년 3조4000억원에서 2013년 4조7000억원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보험사기로 인한 피해는 민영 보험회사뿐 아니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까지 확산되고 있다.
보험사기 수법이 지능화되자 보험사의 보험사기 조사 방법도 진화하고 있다. 보험사는 전담조직을 설치, 사기성 보험금 청구에 대해 정밀한 조사를 맡기고 있다.
ING생명보험과 한화손해보험은 보험사기 전문 조사 조직인 SIU(special investigation unit)를 운영하고 있고, LIG손해보험은 전직 경찰출신 29명을 조사실장으로 채용해 조사전담반을 만들었다.
보험사기방지시스템 구축도 철저해졌다. 보험사기가 갈수록 고도화·지능화 되고 있어 보상담당자의 직감이나 개인 역량에 의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삼성화재는 보험사기방지시스템(IFDS)을 구축해 보험사기 유의도 및 패턴을 분석하고 보험금 지급 심사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LIG손해보험도 전산으로 보험사기 유의인자를 추출 가능한 보험사기방지시스템(FDS)을 마련했다.
또 보험사는 가입단계에서 과도한 중복 보험 가입을 제한하고 있다. 김종권 한화손해보험 SIU파트장은 "과도한 중복 보험 가입으로 인한 고객의 역(逆)선택 등을 방지하기 위해 보험사들은 실손 의료비, 비례 보상, 일당담보 가입 한도 축소, 운전자보험 중복 보험 가입 금지 등의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주 ING생명보험 상무는 "철저한 가입 심사를 진행해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보험 계약을 거절하는 업무를 전적으로 담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감독원·생명 및 손해보험협회·보험범죄대책반 등 관련 기관의 공조도 활발해지고 있다. 2개 이상의 보험사가 관련 있는 보험사기 혐의자에 대해 공동으로 수사를 의뢰해 보험사기를 적발하는 방식이다.
국외 보험사기 예방 및 적발을 위해 조사 전담 인력이 해외 출장을 나가 국제범죄수사대와 공조활동을 펴기도 한다. 이 밖에 보험사기 신고센터를 통해 결정적인 제보로 적발 시 제보자에게 포상도 한다.
빈번해진 보험사기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보험설계사 교육도 필수가 됐다. 보험사기의 정의, 보험사기 신고 요령, 보험사기에 대한 사회적 폐해 등이 주된 내용이다.
삼성화재의 경우 보험사기 조사 전담 조직인 보험조사파트에서 주기적으로 손해율이 높은 영업조직을 방문해 보험사기 관련 교육을 실시한다. 보상조직에서 별도로 매칭된 영업소를 방문해 보상관련 교육 시 보험사기 교육을 병행하고 있다.
관련법의 개정도 뒤받침되고 있다. 2014년 7월 15일 보험업법 개정으로 보험사기에 연루된 보험업 종사자는 등록취소 또는 업무정지를 받고, 판매조직 등록취소 시 2년간 재등록 제한, 타(他)보험회사 모집 활동이 불가능하다. 금융감독원 보험조사국에서도 매년 업계 판매조직을 상대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 "업계 공용의 보험사기 인지시스템 구축 절실" = 보험사기는 보험사만의 노력으로 줄일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험 전문가들은 보험사기를 근절하고, 피해자의 권리구제를 위해 선제적으로 법적 안전판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행 형법상 보험사기의 80~90%가 벌금형을 받고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처벌 강화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김규형 삼성화재 상무는 "보험사기를 조사·예방할 수 있는 보험사기 관련 형법 개정 및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보험사기죄를 담은 '보험사기방지특별법'이 형법 개정·제정안 발의 후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박주천 LIG손해보험 상무는 "보험사기 피해를 입은 사실을 소비자들은 사후에도 알기 어렵다. 보험사가 보험사기 발생사실을 알게 된 경우 피해 소비자가 할증 보험금 환급 및 행정처분 취소 등 절차를 신청할 수 있도록 안내절차를 법적으로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험사는 SIU라는 특수조사부를 운용하고 있지만 법률에 근거하지 않고 약관에 따른 조사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것도 문제다. 민간조사법을 제정해 효율적인 조사 및 남용 시 처벌하게 해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또 산재된 보험금 청구 정보를 한 곳에 모아 관리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청약자·보험금 청구자 등의 과거 보험계약 및 보험금 청구 지급 정보를 바탕으로 보험사기 유의도 및 패턴 분석 결과를 제공해 보험사기와 무관한 가입자의 보험금 청구는 간편하게 처리할 수 있다.
박 상무는 "현재 보험개발원 및 해당 보험사에 보험금 청구 정보가 산재돼 있어 업계의 일원화된 보험사기 인지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