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고삐 풀린 정치권, 선악과(증세)에 손 뻗나

"증세 없이 복지가 가능하다"는 박근혜 정부의 기조가 무너질 위기에 처해져 있다.

최근 연말정산 세금폭탄 논란에 이어 주민세·자동차세 인상 시도 등 정부가 조세제도 개혁을 통한 재정확충 조짐을 보이자 정치권에서 '증세없는 복지'에 반기를 들고 나섰기 때문이다.

복지지출을 늘리려면 그만큼 예산이 필요하다. 정부는 무상복지 비용을 비과세·감면 축소와 지하경제 양성화 등으로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복지예산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다시 말해 이상론에 불과했다는 것이 시간이 지날 수록 증명되고 있는 셈이다. 

"공짜복지는 없다." 재정 부족을 이유로 복지규모를 축소할 것이 아니라, 아예 세금을 더 거둬 복지공약을 이행하자는 주장하자는 목소리가 커진 이유도 당연한 노릇. 더욱이 그동안 증세에 대해 언급자체가 금기시됐던 여당 내에서도 잇따라 증세 없는 복지에 제동을 걸고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증세 없는 복지' 기조 무너지나 = 정부는 지난 2013년 5월 총 134조8000억원 규모의 '박근혜 정부 국정과제 이행을 위한 재정지원 실천계획(공약가계부)'을 발표하면서, 이행재원 중 36%에 달하는 48조원을 지하경제 양성화, 비과세·감면 등을 통해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방침에도 불구하고 탈세와 감면 혜택을 줄여 거둘 수 있는 세금부터 거두자는 정부의 조세정책이 한계에 왔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박근혜식 증세, '성과'는 없었다 = 박근혜 정부는 출범하면서 세출 구조조정과 세제 개편, 지하경제 양성화 등의 방식으로 천문학적인 복지비용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재원조달의 근거는 있었다.

국내총생산 대비 26%에 이르는 지하경제 규모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인 18%로 줄이기만 해도 5년 임기 동안 27조원 가량의 세금을 더 거둘 수 있다는 내다봤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과세·감면 정비(18조원), 세출 절감(84조원) 등 재원 조달방안도 마련했지만, 기대와 달리 성과는 미미한 상황이다. 

특히 깎아주던 세금을 제대로 받겠다는 방향성도 길을 잃은 모양새다.

지난해 정부가 비과세 또는 감면해준 세금은 33조에 달하며, 일몰이 예정됐던 조세감면제도는 53개 중 7개만 종료됐다. 더욱이 비과세·감면 제도에 대한 정비도 미흡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해 비과세·감면 정비에 따른 연간 세수증대 효과는 1231억원으로 전년의 세수효과(3조원)에 비해 오히려 더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탈세와 감면 혜택을 줄여 거둘 수 있는 세금부터 거두자는 현 정부의 조세정책에 한계가 있다는 소리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증세 없이도 복지가 가능하다는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세액공제 축소, 담뱃값·주민세·자동차세 인상 등으로 꼼수 증세 비난을 받으며 곳곳에서 세금을 늘리고 있음에도 증세는 할 수 없다는 모순된 논리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숨은 세원을 늘리기 위한 세무조사도 당장은 어렵다. 무리한 세무조사가 경제를 위축시킨다는 우려에서다. 집행기관인 국세청도 국세행정 방향을 급선회해 납세자의 편의와 권익을 존중해 자발적인 성실신고를 유도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 "쓸 돈은 많은데…", 고갈된 나라곳간 = 문제는 나갈 돈은 줄줄이 대기한 상황에 세금은 걷히지 않으면서 나라 곳간이 비고 있다는 것이다.

고갈 되는 국고사정은 어느 정도 예견된 부분이다.

지난 총선·대선·지방자치단체 선거를 거치면서 무상복지는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의 핵심공약 사항이었다. 연일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무상급식, 무상보육, 노령기초연금 등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이 같은 선심성 공약을 국가 재정으로 충당하다 보니 곳곳에서 재정파탄 위기가 높아지는 건 당연한 결과다.  

올해 복지예산은 더 화끈하다.

정부는 사상 처음으로 전체 예산 376조원의 30%가 넘는 115조5000억원을 복지관련 예산으로 편성했다.

매년 세수 부족 사태가 빚어지면서 복지 확대 기조를 가져가기란 사실상 어려운 상황. 실제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세수펑크 규모는 11조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2조 8000억원, 2013년 8조5000억원 규모의 세수 결손에 이어 3년 연속 대규모 세수펑크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재정건전성은 악화되고, 어렵게 정착시켜온 복지의 기본틀마저 뒤틀리는 지경에 처할 수밖에 없다.

□ '금기' 깨뜨린 정치권의 위험천만한 증세레이스 = 복지 재정이 필요하다면 거위가 알지 못하게 털을 뽑는 꼼수를 부릴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게 순서라는 것이다.

여당 지도부도 연일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 기조에 날을 세우며, 복지 수정을 위한 사회적 논의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고 있는 모습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지난 3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증세는 복지 지출의 구조조정 결과를 토대로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없을 때라는 전제를 붙였지만, 사실상 증세 논의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힌 셈이다. 여기에 새누리당 새 원내사령탑인 유승민 원내대표도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지적하며 증세레이스에 힘을 보탰다.

그동안 "부자감세 철회가 우선"이라는 주장을 펼쳐오던 야당 일각에서도 증세 논의가 이뤄져야한다는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다만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는 아직 증세를 언급하는 것은 이르다는 분위기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수현 대변인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과 관련해 "이미 온갖 서민증세는 다 해놓고 부자감세 철회를 피해가려고 '증세'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김무성 대표가 지적한대로 정치인이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증세 논의가 이뤄진다면 야당에서 집중 제기하는 법인세 인상 여부가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 당시 법인세 최고세율은 25%에서 22%로 3%포인트 내려갔는데, 이를 다시 원상복귀 시키자는 것이다. 법인세 감세 후 기업들의 투자와 고용이 늘었다는 지표는 보이지 않는 반면, 사내유보금만 쌓아두었다는 근거에서다.

재계는 사내유보금에 10% 과세하는 기업소득 환류세제가 결국 법인세 인상과 같은 효과라고 반박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법인세 인상 자체를 금기시하던 여당에서도 증세 대상으로 법인세를 언급하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법인세를 손대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없진 않다.

일각에서는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 인상, 주식양도차익 과세, 임대소득 등에 대한 과세 강화도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표심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라는 우려 때문에 소득세보다는 법인세 증세 논의에 무게를 두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