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퍼나눔운동을 함께하다

나는 사회적 직함을 여러 개 가지고 있다. 그중 ‘명예’ 자가 붙은 공식 직함이 몇 개 있다. 하나는 밥퍼나눔운동명예본부장이요, 다른 하나는 2011년 11월 11일에 해군본부로부터 수여받은 ‘명예해군’을 비롯한 몇 개가 있다. 모두 내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지만 굳이 우선순위를 둔다면 “밥퍼나눔운동 명예본부장”이다.

딸의 결혼식 때 받은 축하금과 세무법인 석성 개업일 축하금 등 이런저런 기금이 모일 때마다 가장 먼저 ‘밥퍼나눔운동’의 최일도 목사를 찾아간다. 최 목사는 내가 본격적인 나눔의 메신저 역할을 하게 된 가장 가까운 동역자다.

언젠가 하루는 쌀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교회 후배를 만났는데, 이 친구 표정이 너무 밝았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도 않고 사업이 잘되는 것도 아닌데, 대책이 없는 긍정적인 사람이라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아니, 이보시게. 뭐 그리 좋은 일이 있다고 매일 그렇게 실없이 웃는 거냐?”

“오늘은 좋은 일이 있는 날입니다. 제가 한 달에 한 번씩 청량리에 쌀을 보내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거든요.”

“청량리? 청량리에 뭐가 있는데?”

청량리라는 지역에 대해 평소 안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던 나는 이 사람이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건가 걱정이 되어 좀 더 자세히 묻기 시작했다.

“밥퍼에 보내는 겁니다.”

“밥퍼? 뭐, 밥을 푼다, 이런 거냐?”

“하하하. 네, 맞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밥퍼나눔운동본부’이지요. 밥을 퍼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주는 겁니다.”

“누가?”

“최일도 목사님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최일도 목사님이라······. 아, 청량리를 무대로 선교하신다는 다일공동체 최일도 목사님을 말씀하시는 거냐?”

“네. 그 목사님은 매일 청량리역 광장에서 노숙자와 독거노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전 그분을 돕기 위해 매달 쌀 2가마를 그곳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청량리라고 하면 누구나 다 아는 서울시 최대의 집창촌이 있는 곳이 아닌가. 그런 곳에서 선교를 한다기에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노숙자와 행려자들을 상대로 무료급식을 한다는 말은 처음 듣는 소식이었다.    

순간, 마음속에서 강한 호기심이 일었다. 일이 한가한 때를 골라 일부러 그곳의 상황을 보기 위해 청량리역으로 가보았다.

그곳의 상황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처참했다. 서울 시내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그곳의 사람들은 ‘삶’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나 역시 젊은 시절 가난을 비관한 채 삶을 놓았더라면, 혹은 좌절과 실의에 빠진 삶으로 청춘을 허비했더라면 지금 저 속에서 저들과 같이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있겠지…….

그때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청량리로 찾아가 ‘밥퍼나눔운동’에 동참했다. 그리고 1004(천사)명이 100만 원씩 기부해 천사병원을 건축한다는 소식을 듣고 성금 100만 원을 마련해 보냈다.

그 시절 최 목사가 추진하는 각종 사회사업을 살펴보고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던 터라 매달 정기적으로 ‘밥퍼나눔운동본부’에 쌀을 보내던 교회후배의 주선으로 최 목사를 만났다.

“조 과장님, 주위 분들에게 평소 좋은 일을 많이 하신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이번 천사병원 신축사업 기금에도 힘을 보태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혹시 제가 도울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최 목사 앞에서 한없이 내가 낮아지는 기분을 느꼈다. 역시 큰일을 하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순간, 내가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국세청 연말 전체 신우예배 때 최 목사를 강사로 초빙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저희 국세청 연말 전체 신우예배에서 설교를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목사님께서 우리 신우회 회원에게 좋은 말씀을 많이 나눠 주시면 큰 은혜가 될 것입니다.”

최 목사는 내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고, 대신 나는 ‘밥퍼나눔운동본부’ 회계 자문위원을 맡아 주는 등 최 목사가 벌이는 사업을 도와주기로 했다.

당시 꽃동네 비리사건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여서 사회사업을 하는 단체에 대한 비리 수사가 날을 세우고 있던 때였다. 내가 가진 달란트로 최 목사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몸이 날아갈 듯 기뻤다.

어린 시절 배고픔의 고통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껴본 기억이 있어서인지 유독 이 ‘밥퍼나눔운동’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이 운동을 주도하는 다일복지재단에도 관심을 갖고 지금까지 꾸준히 지원을 해오고 있다.

밥퍼나눔운동은 결국 이 땅의 소외된 이웃들이 사람다움을 회복하도록 돕는 운동이다. 밥 굶는 이들이 사라질 때까지 사랑실천과 나눔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벌이는 생명운동이기도 하다. 최일도 목사가 청량리에서 시작해 다일공동체를 있게 한 최초의 공동체 사역이자 뿌리라고 할 수 있다.

밥퍼나눔운동은 물질주의, 이기주의의 홍수 속에서 나사렛예수의 영성으로 지구촌의 밥 굶는 이웃을 살리는 훈훈한 사랑의 실천이다.

내가 밥퍼나눔운동을 알게 된 후 어느 날의 일이다. 최일도 목사가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시간이 되시면 저를 좀 만나주실 수 있겠습니까?”

평소와 다른 분위기에 압도된 나는 한걸음에 최일도 목사를 찾아갔다. 최 목사는 나를 보자마자 손을 잡고는 다일천사병원으로 들어가 어느 환자의 방으로 안내했다. 병실 안 침대에는 오랜 투병생활로 몸이 수척해진 한 중년 여성이 누워 있었다.

“이 여인의 이름은 ‘하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뜻이지요.”

나는 아무 말 없이 ‘하자’라는 여인을 쳐다보며 최 목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분은 출가한 비구니입니다. 어느 날 중병에 걸린 몸으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소속이 어디인지, 이름이 무엇인지 물었지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이 천사병원에 입원을 시키고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최 목사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하자’라는 비구니는 적의에 가득 찬 눈으로 우리 두 사람을 노려봤다. 그녀의 독기 어린 표정 이면에 감춰진 두려움과 상처가 보이는 듯해 연민의 정이 느껴졌다.

최 목사의 조건 없는 선행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에게는 세상 모든 인간이 전부 주님의 자녀이고, 자신의 형제자매였다. 나는 거죽만 남은 그녀의 손을 붙잡고 이 가련한 여인의 삶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녀의 기구하고 애처로운 삶이 느껴져 절로 눈물이 흘러 뺨을 타고 그녀가 누워 있는 침대 시트로 떨어졌다.

그때였다. 마치 거대한 포식동물에게 위협을 당하듯 경직되어 있던 그녀의 표정이 서서히 평온해지더니, 금세 울음 가득한 얼굴로 변해가는 게 아닌가.

서로가 말하지 않아도, 위로하지 않아도 마음과 마음의 언어가 전해지고 있었다.

처음 보는 내가 흘리는 뜨거운 연민의 눈물 앞에서 그녀는 자신의 삶이 위로받는 듯한 포근한 감정을 느낀 것이다. 한없이 깊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병실을 나오면서 나는 지갑을 꺼내 손에 집히는 대로 모두 그녀의 손에 쥐여 주었다.

“하자님, 하나님께서 당신과 우리로 하여금 지난날에 대한 과오를 모두 씻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하셨으니, 이제 당신 몸은 새 몸이 될 것이고, 모든 병은 씻은 듯이 나을 것입니다. 어서 침대에서 일어나 우리와 함께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일에 함께할 수 있도록 기도할게요.”

그녀는 내 말에 화답하듯 환한 표정을 지으며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부터 며칠 후, 최 목사에게 연락이 왔다. 왠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 전화받기가 망설여졌다. 계속 울리는 전화벨 소리를 외면할 수 없어 수화기를 들었다.

“장로님, 그 비구니 자매가 끝내 병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

탄식의 소리가 절로 새어나왔다. 병실 문을 나서는 나를 향해 환하게 웃던 그 여윈 얼굴이 떠오르자 안타까운 마음이 가슴 전체를 적셨다.

“그런데 장로님이 마지막 순간에 그 비구니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그녀는 장로님이 그날 주시고 간 용돈 모두를 내놓으면서 처음으로 하나님께 ‘연보로 바치고 싶다’며 병원 교회에 드렸습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녀를 감동시키고. 그녀의 마음을 움직인 건 용돈이 아니다. 그녀를 진심으로 가엾게 여기고 위로한 순수한 눈물에 대한 화답이었을 것이다.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한다면 눈물이 쏟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평소 주위 사람들에게 ‘전도란 감동을 주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최일도 목사가 운영하는 다일공동체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고, 최 목사의 부탁으로 자문위원을 맡다가, 2007년부터 ‘밥퍼명예본부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내 나눔운동의 동료인 마태목장 식구들, 한국세무사회 회원들과 직원들, 그리고 세무법인 석성직원들과 함께 매월 정기적으로 ‘밥퍼나눔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흔히들 단체장은 이름만 걸어 놓고 1년에 한 번쯤 얼굴 비치기 마련인데, 나는 매달 가서 마늘도 까고 밥도 퍼주고 있다.

그리고 비구니 자매의 일로 인해 병실 전도의 중요성도 깨달았다. 그 뒤로는 국세청 동료나 직원 가족 중 질병과 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달려가 위로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도에도 준비가 필요하다. 미리 마음으로 준비하고 환자를 위로하는 진심을 가지고 병문안을 한다면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가 일어날 것으로 확신한다.

2004년 말 대전지방국세청장을 퇴임하면서 한 가지 결심한 것이 있다. 퇴임 후 6개월간 받은 공무원 연금 중 절반을 중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대전지역 후배들에게 되돌려 주기로 했다.

그래서 격려편지와 함께 알기 쉬운 성경, 그리고 약간의 격려금을 17명에게 보내게 되었는데 그중 한 형제로부터 전화를 받게 되었다.

“청장님이 믿는 그 하나님을, 이제부터 저도 열심히 믿겠습니다.”

그 후 몇 년이 흘러 2009년 12월경 바로 그 후배로부터 한 통의 감사편지를 받았다.

당시 위장관기저암이라는 악성종양으로 수술을 마친 상태였는데, 내 편지에 5년여의 공백을 딛고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후 대전국세청 국제조세계에서 근무하면서 직장에서도 인정받고 또 신우회에서 총무로 봉사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도 받았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얼마 전 암세포가 간으로 전이되어 항암치료를 받고 있지만 하나님이 계시기에 기꺼이 이겨내고 있다며 다시 한 번 청장님의 귀한 손길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또한, 지금의 병을 잘 극복하고 나아가 청장님처럼 사회에 봉사하는 국세공무원, 모든 이들로부터 존경받는 크리스천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