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세무사회 회장선거에 출마하다

2004년 12월 31일, 대전지방국세청장을 끝으로 35년 6개월간의 정들었던 공직생활을 마무리했다. 아직 정년이 2년이나 남아 있었지만, 후배들에게 좀 더 일찍 길을 터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해 더 이상의 미련을 두지 않았다.

뒤돌아보면 약관 20세 나이에 국세청 9급공무원으로 출발하여 반평생 오직 한길, 세금쟁이(?) 노릇을 하다가 대과 없이 무사히 공직자의 옷을 벗게 되어 행운 중 행운이라고 고백하고 싶다. 그동안 외식 한 번 제대로 못 해 보고 늘 가슴 졸이면서도 원망 없이 나를 도와준 나의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성제, 딸 수빈이에게도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명예퇴임을 앞둔 어느 날, 선배 한 분이 나를 찾아와 한국세무사회 회장에 출마를 하려고 하니, 함께 러닝메이트로 뛰어보자는 제안을 했다. 너무 갑작스런 제안이라 일단 며칠 생각을 해보겠노라 하고는 돌려보냈다.

말은 간단하지만 출마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일단 한국세무사회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개업세무사가 되어야 했는데, 그런 자격을 갖추려면 한 달 동안 세무사 실무 교육을 받아야만 했다.

나에게는 당장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고민도 필요한 시기였고, 응답을 받기 위해 기도의 시간도 필요했기에 미련 없이 아내와 함께 기도원으로 들어가 버렸다.

2005년 1월 1일, 기도원에 들어가자마자 함께 출마하자 하던 그 선배로부터 끝없이 전화가 걸려왔다.

“이달에 세무사 실무교육을 수료해야만 자격이 갖춰져 선거에 참여할 수 있네. 지금 기도원에 계실 게 아니라 당장 교육을 받아야 하네.”

그 선배는 끈질겼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기도와 하나님이 예비하신 나의 길에 대한 응답이었다.

“나에게 지금 기도를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나는 단호히 그 선배의 제안을 거절했고, 그 일은 그렇게 기억 속에 묻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06년 7월에 역대 지방국세청장 출신들의 친목모임에 나가자, 선배들께서 이미 작당을 한 듯 나를 몰아세우며 이번 한국세무사회 회장 선거에 출마하라고 종용했다. 사람들은 내 의사는 들어보지도 않고 박수를 치며 그 자리에서 만장일치로 회장 후보로 천거했다.

일단 생각을 해보겠노라며 긍정적인 답변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왠지 자신이 없었다. 역대 한국세무사회 회장 중 국세청 실무자 출신 고위직이 당선된 사례는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는 나였다. 선배들은 집요하게 나를 설득했다. 결국 백기를 흔들며 회장 후보 출마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막상 회장 후보 출마를 결심하고 보니,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 중 나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회장 선거는 전체 세무사회 회원 8,500여 명의 직접선거로 이루어지는데 그중 국세청 출신 세무사들은 절반을 밑돌았고, 그나마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자연스레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때만 해도 내가 직접 설립한 석성세무법인을 개업한 지 일 년이 채 안 된 신출내기였기 때문이다.

회원들은 회장 자격도 안 되는 사람이 국세청 고위직 출신이라는 경력만 믿고 회장 후보에 출마했다며 강하게 비난을 해댔다. 그도 그럴 것이 경쟁 후보들은 국회의원 재선 출신도 있었고, 전체 회원의 40% 이상이나 포진되어 있는 서울지역 세무사회 회장직을 무려 4년이나 지낸 사람도 있었다. 내 경력은 무엇으로 보나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세무사경륜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었다.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무슨 생각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언제나 나를 돌보시고 내 편이 되어 나를 이끌어주시는 하나님이 계셨다. 국회의원 경력도, 서울지역 세무사회 회장 경력도, 세무사 계에서 내로라하던 자도 평생을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나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이상한 자신감이 마음속에서 샘솟았다. 하루하루 기도하며 선거를 준비했고, 주위 참모진들을 독려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온갖 부정과 부패가 난무하는 세상적인 선거 운동은 절대 하지 않겠노라고. 상대 후보를 깎아내리는 것만큼 쉽고 효과적인 유세가 없다는 걸 그동안의 사회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나는 흑색선전만큼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말도 안 됩니다. 지금 우리는 다른 후보들에 비해 누가 봐도 열세의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를 비방하기는커녕 칭찬하다니요. 회장에 당선되려는 생각이 없으신 거 아닙니까? 이번에는 연습이고, 다음을 노리시는 겁니까?”

선거 캠프에 있는 참모진들은 이런 나의 결정을 강하게 반대했다.

“아닙니다. 전 지금 그 누구보다 이 선거에서 이겨야겠다는 열망이 강합니다. 반드시 선거에서 승리해 우리 세무사들의 권익을 높일 것입니다.”

선거 운동을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내가 떨어질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저 자리는 나를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자리라고 생각하고, 모든 일정을 자신감 있게 소화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 상대 후보로 하여금 위축되게 하지 않았나 싶다.

본격적인 선거철에 돌입하자, 나와 상대 후보들은 서울을 비롯한 전국 6개 도시를 돌며 경합을 벌였다. 후보 공약 연설을 하는 내내 나는 단 한 번도 상대 후보를 비방하지 않았다.

순회하는 도시가 늘어날수록 캠프 내에서는 불만이 높아졌다. 그래도 나는 처음 하나님과 한 약속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007년 2월 28일,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3천여 명의 서울지역 세무사 회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후보 공약 연설을 하고 최종 투표에 들어갔다.

모든 투표가 끝나고, 결과를 기다리기 위해 선거캠프 안으로 들어갔다. 캠프 안을 둘러본 나는 적잖이 실망했다. 내가 낙선할 거라고 예상한 회원들은 대부분 캠프를 떠났고, 안에는 불과 10여 명 정도만이 남아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충분히 그들을 이해했다.

나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지만, 그들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만이 유일한 믿음이었기 때문이다.

개표 시간이 다가오자 초조함이 밀려들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예정된 발표 시간이 한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내가 궁금해하고 있던 찰나, 회원 하나가 들어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생각보다 투표 결과가 박빙이라, 지금 다시 투표지를 재검표하고 있답니다. 근데 결과가······.”

그때까지 눈치를 보며 남아 있던 캠프 안 회원들은 결과가 박빙이라는 말에 희망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하나둘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캠프를 빠져나갔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이젠 정말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떨어지는 것도 그렇지만, 지금까지 애써 나와 함께 뛰어준 캠프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화장실로 가는 척하며 자리를 떴다. 그때 선거관리위원장으로부터 휴대폰 전화가 왔다. 비공식집계지만 당선을 축하한다는 메시지였다. 나는 시치미를 떼고 다시 진을 치고 있던 자리로 와서 앉아있었다. 10여 분이 지난 후 흩어졌던 캠프동료들이 다시 돌아왔다. 낌새를 알아차린 것 같았다.

“이거 정말 예상 밖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조 회장님. 이제 우리 세무사들의 미래는 조 회장님 손에 달렸습니다.”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기쁜 마음에 가슴이 뛰었지만 최대한 태연하게 행동했다.

“세무사 회원분들께서 참 욕심이 많으신 거 같습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을 바라고 저를 뽑아주신 거 아니겠습니까. 걱정 마십시오. 제겐 여러분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거대한 후원자가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의 미래는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캠프 안으로 밀려들었다. 일반 정치판과 다를 바 없는 이 행태를 보고 마음이 씁쓸해지는 것을 느꼈다. 불과 몇 사람만 남아 있던 조금 전과 달리 어느새 캠프 안은 나를 축하해주기 위해, 그리고 어떻게든 한 자리라도 감투를 써 보려하는 사람들로 인해 북새통을 이루었다.

당선 소감을 묻는 많은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나눔과 섬김’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한국세무사회의 오래된 폐습과 지형을 바꾸겠노라 천명했다.

“우리 강한 자는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스스로 담당하고 본인을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은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롬15:1~2).”

4년간 세무사회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세무사의 권익을 높이고 입장을 대변하는 책임자로서 열심히 그리고 소신껏 일했다. 특히 지난 2008년 5월 독일세리사협회(회원 8만4천명) 초청을 받고 건너가 독일 대표 1,3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연설을 했다.

또 한국세무사회가 모은 성금 7천여 만 원을 중국 쓰촨성 지진 피해지역과 미얀마 태풍 피해지역 학교 신축비로 나누어 전달했다. 모든 것이 그저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첫 작품인 서민들에 대한 생활지원책의 일환으로 지급된 3조 4천억 원의 유가환급금 제도를 적극 지지하며, 우리 세무사들이 수수료 한 푼도 받지 않고 무료로 업무를 대행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한 건당 신고수수료를 계산하면 4만 원이 채 안 되는 돈이지만, 세무사들이 제대로 받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전체 금액으로 따져 수백억 원이나 되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이 엄청난 수입을 포기하겠다고 하자 소속회원들의 반발이 크게 일었다. 나는 단호하게 대처했고, 유가환급금이 모두 지급된 후 정부 관계자를 찾아가 담판을 지었다.

“이번 일로 인해 우리 세무사들이 국민들을 위해 적지 않은 희생을 감내했다는 걸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러니 정부에서도 우리 세무사들을 위해 뭔가를 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정부 관계자와 협의를 통해 그때까지 전산으로 세금을 신고하면 1건당 1만 원을 세금으로 공제해주던 혜택을 늘려서 1건당 2만 원으로,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다시 건당 2만 원에서 건당 4만 원까지 세금공제가 가능하도록 올려놓았다.

한때 수백억 원이라는 막대한 수입을 포기하며 희생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세무사들의 권익과 수입을 더 높이는 계기가 된 것이다.

내 평소 지론인 ‘주어라, 그리하면 더 많이 주어질 것이다(give, and more will be given to you)’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전국의 모든 세무사들에게 각인시켰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국민들로부터 큰 인기가 없었던 세무사들은 나눔과 섬김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세무사가 바뀌자 자연히 관계 당국인 국세청의 반응도 바뀌어갔다. 이 모든 게 결국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이 땅의 납세서비스 문화를 바꾸시려는 의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런 연유로 2년의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1차례 연임할 수 있는 2009년 세무사회장 선거에서는 투표 없이 전국의 모든 세무사회원들의 추대형식으로 세무사회장을 연임하게 되었다. 50년 세무사회 역사에서 보기 드문 기적 같은 일이었다.

훗날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지만, 이참에 크리스천이 자주 겪고 있는 ‘십일조와 세금’과 관련해서 나의 신앙적 소신 중 하나를 꼭 밝히고 싶다.

세무공무원으로 36년간 일했고, 세법에 관해서는 그 누구보다 많은 지식과 철학을 지니고 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교회에 십일조 및 감사헌금을 바친 후, 단 한 번도 연말정산 때 기부금 공제를 받은 적이 없다. 이것은 물론 내 개인적인 견해와 행동임을 밝혀 둔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만물의 주관자이시자 우리의 주인이시다. 우리가 교회에 헌금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헌금 생활을 하도록 명령하셨고, 또 수확과 소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표하려는 믿음의 행위이다.

즉 우리가 하나님께 기부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세상 모든 것들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무엇이 부족하여 우리에게 기부를 받는단 말인가.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연말정산 기부금 세금 혜택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소신이다.

어떤 지인들은 혜택을 받은 만큼 다시 하나님께 드리면 된다고 말씀하셨지만, 그 헌금은 하나님께 올리는 순간 그분이 받으시는 것으로 끝나야 한다. 감사함에 대한 마음의 표현이 보상을 바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