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고 유혹이 많았던 국세공무원 시절

‘부동산 투기(Real estate speculation)’라는 ‘투기(投機)’의 사전적 의미는 ‘기회를 틈타 큰 이익을 보려고 함’이라고 되어 있다.

속물근성이 가득한 이 ‘부동산 투기’가 일생일대의 큰 위기에서 나를 건져냈다. 만약 내가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지금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1976년, 영문도 모른 채 국세청 소득세과로 발령을 받고 본청으로 들어갔다. 본청으로 출근을 하여 상관에게 전입신고를 하러 들어갔더니, 대뜸 하는 말이 부동산 투기 업무를 전담하라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나라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온 국민에게 초미의 관심사가 된 행정 분야이지만, 당시에는 전혀 생소한 분야였고 부동산 투기 업무를 전담해 맡아온 직원도 없었다.

여의도 목화아파트, 도곡동 개나리아파트, 반포아파트 등 서울 강남 요지에 잇달아 고급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투기바람을 타고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던 시절이었다. 청약률이 높아 부동산중개업자들이 큰돈을 버는 사태가 속출했다.

부동산 투기 업무에 투입되면서 모든 업무를 혼자 처리했다. 1978년부터, 서울 강남 4개 아파트 단지와 전국 158개 동(洞)을 부동산 투기지역으로 지정 고시해 실거래금액을 기준으로 양도소득세를 무겁게 부과했다.

그 업무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투기가 의심되는 지역을 확대하며 단속해갔다. 나는 한자리에서 이 업무만을 무려 12년간 담당했다.

당시에는 일 년을 기준으로 상관들이 교체되었는데, 나는 같은 자리에서 한 가지 업무만을 12년간 계속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었다. 양도소득세, 상속세, 증여세 등 재산 관련 세무업무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버린 것이다.

대한민국 부동산 투기 억제 업무에 대해 나만큼 도통(?)한 사람이 없었으니, 툭하면 국회에 불려가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자료를 직접 작성하기도 했다.

특히, 1989년 토지공개념 도입 시에는 토지초과이득세 실무준비 책임자로 발탁되기도 하고 부동산 탈세 조사와 주식거래 조사 등을 총괄하는 등 재산 관련 세무 조사 분야에서도 그동안 갈고닦은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다.

이렇게 당시 국세청에서 가장 사회적 이슈가 된 분야를 담당하다 보니, 외부로부터의 유혹도 만만치 않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전국의 부동산중개업자들이 나를 찾아와 만나 달라고 사정을 했지만, 청탁에 응할 수가 없었다.

절대로 청탁 따위는 하지 않을 테니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산하기관에 근무하는 직원들 직무교육을 비롯해 방송사 세무상담 출연, 국회 답변자료 작성 등으로 날밤을 새워야 할 정도였다.

그때 아파트 시세가 연일 고공행진을 하는 터라 소위 잘나가는 강남지역 부동산중개업자들은 당시 돈으로 하루에 100만 원이 넘는 돈을 벌어들이던 시절이었다. 그때 적당히 청탁에 응해 목이 좋은 아파트에 특혜 분양이라도 받았다면 아마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사실 그때 나에게 주어진 업무가 너무 많다 보니 만나고 싶어도  시간이 없었다. 당시 내 직속 상사인 과장은 국장으로 승진하기 위해 없는 일도 만들어낼 정도로 열정이 넘치던 시기여서 매일 쏟아지는 업무에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당시 통금이 있던 시절이었는데, 늘 밤늦게까지 남아 일을 하다가 항상 아슬아슬하게 검문에 걸리지 않고 집에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밥도 제대로 못 먹어가면서 매일매일 쏟아지는 서류 뭉치와 국회자료를 처리하느라 12년을 하루같이 보냈다는 생각을 하면 지금도 숨이 ‘턱’ 하고 막힌다.

무엇보다도 이 바쁜 와중에 나는 ‘세무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틈틈이 시험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운이 좋아 1982년 제19회 세무사자격시험에도 합격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 바쁜 시기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었고, 그 아찔한 유혹들을 피해갈 수 있었다.

이 일로 인해 남들이 틈틈이 즐기는 골프운동도 2004년 말 공무원 명예퇴임 때까지 전혀 배우지 못했다. 그러나 비록 공무원 재직 시 골프운동도 배우지 못했지만  나는 이런 나를, 가슴 뿌듯하게 여기고 있다.

또 부동산 투기 업무에 투입되기 전인 1976년 5월경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당시 나는 마포세무서 법인세과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당시 세금부과제도가 전면적인 종합소득세제로 바뀌면서 모든 개인사업자들은 1년간의 모든 소득을 종합하여 누진과세하게 되었다.

그 제도로 바뀌면서 나는 법인세과에서 개인세과로 몇 달간 차출이 되었는데 그 사이에 법인세과 직원들의 금품수수 관련 대형비리사건이 터졌다. 내가 개인세과로 잠시 자리를 옮기고 얼마 안 있어 대부분의 법인세과 직원들이 검찰에 송치된 어마어마한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나는 그 무시무시한 칼날을 피해갔고, 그러다가 넉 달 후 국세청 본청으로 발령이 났다. 그 덕분으로 나는 당시 법인세과 직원 중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다.
 
또 1997년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일명 ‘세풍사건’ 때도, 초임 서장 자리인 의성세무서장 자리에서 보통의 경우 6개월 정도인 전례를 깨고 나는 1년 6개월 동안이나 머문 덕분에 그 광풍을 피해갈 수 있었다.

또 2001년에는 김대중 정권의 23개 중앙언론사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 파동도 있었다.

그 시기에 나는 국세청 공보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말이 파동이지 정권 대 신문, 신문 대 신문, 신문 대 방송이 서로 전쟁을 벌이는 시기였고, 그 중간에 언론사의 ‘탈세’를 조사하려는 국세청이 있었으며, 기자들에게 양식(기삿거리)을 제공하거나 비판기사를 ‘막으려는’ 공보관인 내가 그 한가운데 자리에 있었다.

말 그대로 혹독한 전쟁 시절이었다. 언론에 대해 아마추어인 나는 죽을 각오를 하고 1년 8개월 동안을 몸으로 때울 수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기자들은 단순한 면이 있어서 자존심 하나로 살아가는 존재이다 보니, 인간적으로 가까이 접근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 그들을 대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먹지 못하는 술을 억지로 마시면서 서로 몸으로 부대낄 수밖에 없었다.

당시 안정남(安正男) 국세청장께서는 영등포세무서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나를 공보관으로 발탁하여, 잘 해보라고 했다. 간첩 노릇 하지 말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 한쪽에는 언론사의 편을 들 수밖에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안 청장께 ‘원래 공보관이란 어떤 면에서 이중첩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하기도 하고, ‘국세청과 언론사가 서로 싸우면 공보관인 저만 등이 터진다’라고도 말씀드렸다.

그러한 나의 솔직함이 통해서일까? 안 청장께서도 나를 굉장히 좋아했었다.

그 전쟁터에서 공보관 노릇을 하면서도 그나마 기자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내 나름대로 세운 공보관으로서의 직무원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직무원칙이란 다름 아닌 ‘진실’이다.

즉, ‘있는 모습을 그대로 이해해 주자’는 것으로 기자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자 했다.

기사가 잘됐다, 못됐다 반박하는 것 자체가 기자들이 질색하는 것 중에 하나였다.

대부분 고위공직자들은 자기 분야에 대한 사실과 다른 기사가 언론에 나가면 막무가내로 엉터리 기사라고 불평하지만, 나는 이유야 어찌 됐건 기사를 쓴 기자에게 잘 썼다고 일단 격려해 주면서 기자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김 기자, 기사 쓴다고 고생했다. 참 잘 썼다. 내가 봐도 그렇게 쓸 수밖에 없었겠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 기사가 나갈 경우 내가 참 어렵게 된다.

이해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런 다음 데스크(부장급 간부)한테 가서 “저 김 기자 정말 기사 잘 쓴다”고 말해 주기도 하며 기사를 쓴 기자의 위상을 세워준다.

그다음에는 기사 제목을 뽑는 편집부에 가서 양해를 구하기도 하고 이도 저도 안 되면 편집국장도 찾아가고······.

나름대로 절차와 계통을 밟아 가되 진정성을 가지고 호소해보니 웬만하면 내가 의도하는 대로 기사내용이 고쳐진다. 즉시 나는 그들에게 고맙다고 전화로 인사를 했다.

또한, 공보관의 업무 성격상 항상 젊은 기자들과 부대껴야 하고 복잡한 기사를 다듬고 조율하는 역할을 하는 자리였던 만큼, 회식자리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기자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잘 맺어야 기사도 좋게 나가는데 회식자리가 큰 부담이 되었다.

그런데도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지혜를 주셨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모자도 깨끗이 쓰고 교복도 깨끗이 쓰다 물려주고 책도 그렇게 물려줬다. 나도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내 몸도 깨끗이 쓰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물려주어야 하기 때문에 안 마시는 것이니 이해해 달라.”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지갑에 가지고 다니던 「장기기증등록증」을 꺼내 보여 주면, “어 이거 진짜네!” 하면서 술 권하기를 자제해 주었다.

그리고 나중에 다른 기자들에게도 “이 형님은 원래 술 잘 마시는데 몸에 있는 장기들을 깨끗이 쓰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며 내 앞의 술잔을 치우곤 했다.

그 당시 언론사와의 전쟁 중에도 이처럼 기자들과 끈끈한 교분을 쌓을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원칙과 서로의 마음을 공유했기 때문이었다.

젊은 기자들은 나를 형님이라 불렀고 핏발선 기사를 쓰면서도 나와 마음을 주고받았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언론사 핵심간부가 된 그들과 자주 만나고 서로 사랑하고 교제하고 있음에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

나는 드디어 2004년 12월 대전지방국세청장을 끝으로 반평생을 바쳐 일했던 어렵고 유혹이 많았던 국세청에서 큰 잘못 없이 명예롭게 퇴임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보살펴 주셨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무엇보다 지난 40년간 ‘세금’이라는 광야에서 부족하기 짝이 없는 나를 지속적으로 연단시켜 주셔서 지금의 나를 있게 해주심에 무릎 꿇어 깊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