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이별의 슬픔

이렇게 믿음의 생활을 뒤로하고 방황하고 있던 차에 대구에 있는 우리 집에서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사고가 일어났다.

나보다 다섯 살 위인 형은 당시 안동시에서 교육청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형이 술을 무척 좋아했는데 군대에서 술을 잘못 배워 주사가 심한 편이라 항상 가족들의 걱정거리 중 하나였다. 그런데 날씨가 더운 어느 날, 형은 술을 마시고 의식을 잃어 그만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말았다.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듣고 급히 대구 집으로 내려갔다. 병원에 도착하자 이미 형은 싸늘한 주검이 되어 영안실에 누워 있었다. 어린 시절 형과 함께 보냈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눈에 눈물이 고이며 시야가 흐려졌다. 나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은 것처럼 선 채 울고 또 울었다.

갑작스런 사고로 장남을 잃은 어머니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형의 주검을 흔들며 일어나라고 고함을 질렀다. 이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나는 몹시 혼란스러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의 안부를 묻던 형과 나는 다시는 대화조차 나눌 수 없다는 현실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상실감이 찾아왔다.

그때 형에게는 이미 결혼을 약속한 여자가 있었고, 얼마 후면 약혼식을 치르게 되어 있었다. 형의 주검을 내려다보며, 인간의 삶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나는 형을 화장해 그 유골을 인근 금호강에 뿌렸다. 한 줌의 가루가 되어버린 형은, 가볍게 부는 바람에도 쉽게 흩날렸다. 그렇게 바람에 날리고 강물과 함께 흘러가는 형을 보면서 나는 입술을 질근 씹었다.

‘인간의 삶이란 이렇듯 허망한 것인가.

그동안 짧은 세월이었지만 세상의 온갖 유혹에 푹 빠져 내 영혼과 육체가 점점 썩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나는 지금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잊고 있구나.’

그날 밤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렸다.

그동안 세상 재미에 빠져 하나님을 멀리하고, 주일을 지키지 못한 나 자신을 책망했다. 그럼에도 늘 내 곁에 계셔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다시는 이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장남을 잃은 어머님의 슬픔은 생각보다 지독했다. 끼니를 거르시면서 날이 갈수록 몸이 야위어갔다. 이대로 있다가는 어머니마저 잃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급히 대구 집을 처분하고 은행에서 대출받아 서울 마포구 신수동에 작은 집 한 칸을 마련해 부모님과 동생들의 거처를 옮겨 드렸다.

계속 대구에 있다가는 형을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에 환경을 바꾸고 새로운 삶을 사실 수 있게 도와드리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다시 서울에 터를 잡은 우리 가족은 형에 대한 기억을 지우기 위해 지독하게 노력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형을 잃은 슬픔은 조금씩 지워져 갔다. 그리고 우리는 조금씩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구병무청 직원이 밤기차를 타고 급히 상경해 나를 찾아왔다. 그 직원은 나를 만나자마자, 지난 3년간 입영을 연기한 것이 자칫 비리로 오인될 수 있는 소지가 있으니 지금 당장 입대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나님을 잊고, 세상의 재미에 푹 빠져 살아온 지난 몇 년간 생활의 결과가 이렇게 막을 내리다니······.

결국 나는 가족을 떠나 1970년 4월 20일, 논산훈련소로 가는 기차를 탔다.

“아이고, 용근아. 내 아들······.”

큰절을 올리고 방문을 나서려는 나를 어머니가 끌어안으며 서럽게 울었다.

“걱정하지 마이소. 몸 건강히 있다가 반드시 엄마 곁으로 돌아올게.”

아버지는 연방 헛기침을 하며 남자라면 누구나 다 가는 곳인데 왜 호들갑이냐며 어머니를 나무랐지만, 눈가에는 눈물이 촉촉이 고여 있었다.

나는 부모님을 뒤로하고 입영 통지서에 적혀 있는 집결지인 대구 칠성종합운동장으로 가서 거기서 바로 논산훈련소로 향했다.

입대할 당시 군의 분위기는 매우 살벌했다. 1968년 1월 21일 김신조를 비롯한 무장공비들이 청와대 근처까지 침투했다가 우리 군에게 발각되는 사건이 벌어진 직후였기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 사건을 계기로 군(軍) 기강의 해이를 지적했고, 전(全) 군은 엄청난 긴장상태에 있었다.

나는 행정병과 주특기를 받았지만, 6주간의 전반기 기본훈련을 거쳐 김해공병학교에서 후반기 8주 교육을 마친 후, 안양에 있는 건설공병단에 배치됐다.

훈련은 고됐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내무반 생활이었다. 직장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생활했던 내게는 딱딱한 군대 문화와 거기에 따른 단체생활이 무척 힘든 일이었다.

더군다나 또래에 비해 다소 몇 년 늦게 입대한 터라 서너 살 어린 선임들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해야 하고 선임 고참병들의 갖은 폭언과 깊은 밤에 집합하여 기합 받는 것도 힘들었다. 그럴 때마다 이 시간을 통해 내가 좀 더 성숙한 신앙인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사고 없이 무사히 제대할 수 있도록 매사 참고 인내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좀 더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로 선임과 후임들에게 모범이 되게 하시고, 무사히 제대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나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몰래 기도하며 하나님을 찾았다. 그러자 점점 힘들었던 일상에 새로움이 더해졌고, 하루하루가 기쁨으로 충만했다. 그렇게 하여 나의 군대생활도 어느덧 일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조용근 병장, 어디 있나?”

“네. 여기 있습니다.”

“어머님이 위독하신 모양이다.”

선임하사의 말을 전해 듣고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마음 한구석에 늘 걱정거리로 자리 잡고 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에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휴가를 나갈 때마다 고혈압으로 늘 병상에 누워 있는 어머니를 보며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 그런 어머니가 이제 하나님을 만나러 가실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무학자이지만 평생을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면서 아버지의 고압적인 행동을 온몸으로 견디셨던 분이었다. 오직 예수님을 믿고 지극정성으로 그분에게 기도하시면서 어려움을 극복하신 분이셨다.

결국 어머니는 내가 군에 입대한 지 1년 8개월 만에 하나님 곁으로 가셨다. 52세라는 짧은 생을 살면서 하루도 몸을 쉬게 하지 않고 오직 자식들만을 위해 헌신하셨던 불쌍한 여인이었다. 만일 어머니의 그 기도가 없었다면 오늘날 내가 교회 장로로 봉사하는 일도, 늘 주위를 돌보고 세상에 진 빚을 갚으려 노력 봉사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늘 곁에 계시기 때문에 부모님의 소중함을 잊고 산다. 그러나 부모님이 우리의 곁을 떠나고 난 뒤에야 후회하며 눈물을 흘린다.

만일 당신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당장 부모님에게 달려가서 사랑한다고 말하라. 그리고 먼 훗날 절대로 나처럼 후회하지 말고 소중히 모셔라. 당신이 나와 같은 후회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힘주어 권면한다.

나는 부모님의 기도는 자식들에게 반드시 응답이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님이 없는 것처럼, 자식에 대한 부모님의 사랑 또한 간절하고 뜨겁다. 이런 마음이 끊임없는 기도로 이어질 때, 반드시 하늘 보좌가 움직인다고 확신한다.